경제

[박상현의 디지털 읽기] 모바일 독점 구글·애플에 먼저 칼 든 한국

최만섭 2021. 8. 27. 04:58

[박상현의 디지털 읽기] 모바일 독점 구글·애플에 먼저 칼 든 한국

세계 인터넷 트래픽 중 모바일 비율 70% 돼 가는데
두 회사, 사용자가 개발사에 치른 돈 15~30% 걷어가
애플은 작년 한 해 수수료 수익만 130조원 달해
바이든·민주당, 빅테크 규제 법안 준비 중이었는데
美가 칼 뽑기 전, 한국이 먼저 ‘구글 갑질 방지법’…
워싱턴서 “美기업 차별 아닌지 살펴봐야” 말 나와
“자국 기업 보호” 강조해온 미국 정부 입장도 난감
독점 규제 의지에 더해 국제적 공감대 필요한 때

박상현 ‘오터레터’발행인

입력 2021.08.27 03:00

 

 

 

 

 

지난 6월 미국 연방의회 의원들이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의 독점적 시장 지배를 제한하기 위한 몇 개의 법안을 제출했다. 아직은 법안 단계이기 때문에 실제로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미국 의회가 디지털 테크, 특히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다시 설계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끈 것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상원의원 세 명이 함께 만든 ‘오픈 앱마켓 법(Open App Markets Act)’이었다. 이 법은 사실상 애플과 구글 두 기업을 겨냥한 것이다.

전 세계 모바일 기기 시장은 사실상 구글과 애플 두 기업이 양분하고 있고 다른 기업들의 진입은 사실상 막혀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 모바일 플랫폼에서 앱을 통해서 사업을 하려는 개발자나 기업들은 이 기업이 정한 수수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그 수수료는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앱 개발사에 지불하는 금액의 15~30%에 달하고, 애플의 경우 지난 2020년 한 해에만 111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30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미국 의회는 두 기업이 모바일 생태계를 조성한 공이 크지만 이런 수수료는 지나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 중 모바일이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다가가고 있는 상황에서 두 기업이 자사의 인앱(in-app) 결제를 의무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독점 기업의 횡포라는 것이 많은 개발사와 각국 정부의 판단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빅테크의 독점을 깨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는 중이다.

그런데 워싱턴이 칼을 뽑기도 전에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먼저 관련 입법을 추진하며 선두를 치고 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소위 ‘구글 갑질 방지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여당의 주도로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구글코리아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고, 애플은 반대 입장을 내놓았지만 사실 가장 난감한 입장에 놓인 것은 백악관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의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타국 정부로부터 미국에서 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을 경우 적극적으로 나서서 미국의 기업을 보호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 기업에 대한 규제를 다른 어느 나라보다 적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국의 규제를 나무랄 수 있었다. 심지어 빅테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도 유럽연합이 사용자의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일반 데이터 보호 규칙(GDPR)’을 만들어 미국의 빅테크에 적용하자 이에 반발, 비판의 목소리를 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어떻게 해서는 빅테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작정했고,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플랫폼 기업과 대립각을 세운 공화당도 이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자식이 잘못을 했다면 내가 야단쳐야지 다른 부모가 뭐라고 하는 건 볼 수 없다”는 심리다. 한국 국회가 너무 서두른 건 아닌지, 법안의 목표가 공정 경쟁이 아닌 미국 기업들에 대한 차별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 미국 측에서 나오는 이유다. 블룸버그 뉴스는 “한국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에 시장을 완전히 장악 당하지 않은 소수의 국가 중 하나”라며 “이 법안이 구글과 애플의 정책을 바꿀 수 있다면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한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의 말을 전했다. 한국 법안의 목표가 우리 기업의 보호라고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백악관에서는 한국 국회의 움직임에 즉각적인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한국인들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웬디 커틀러 전 미국무역대표부 부대표의 말을 인용해서 “미국 정부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기업의 관행을 다른 나라가 문제 삼는다고 해서 지적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한국의 법안을 비판하면 나중에 미국에서 똑같은 법을 통과시킬 명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구글과 애플은 인앱 결제를 강제하기 힘들어지고 상당한 손해를 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이 비록 작은 시장은 아니어도 그렇다고 두 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만큼 큰 시장도 아니다. 빅테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진행되는 플랫폼 독점 규제다. 한국의 법안은 이런 흐름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 대해 두 기업은 앱스토어를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우회로를 만들어서 누구나 앱을 설치할 수 있게 되면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오래전부터 개인용 컴퓨터에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특정 앱스토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다운로드해서 설치해왔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오픈 앱마켓의 등장이 사용자들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느냐일 것이다. 구글과 애플에 가던 수수료가 단지 또 다른 테크 기업으로 넘어가기만 할 뿐이라면 결국 앱 시장의 싸움은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빅테크가 논의의 핵심을 사용자, 소비자의 보호로 맞추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런 논리에 맞서서 미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가 독점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려면 강력한 의지와 함께 국제적인 공감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여의도의 움직임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박상현 ‘오터레터’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