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13] 꽃길만 걷자는 말
입력 2021.08.14 00:00
선물로 받은 선인장이 죽었다. 긴 시간 관심을 쏟았지만 결국 뿌리가 썩어버렸다. 식물을 오래 키워왔지만 잘 키우는 식물이 있는 반면 내게 오면 시들어 말라버리는 것들도 있다. 율마, 로즈마리가 그랬고, 선인장도 그렇다. 기온이 37도까지 오르던 날,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다가 햇빛이 쏟아지는 창가 곁의 선인장을 보았다. 선인장은 물을 적게 주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한여름 태양이 선인장에게도 가혹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평소보다 물을 더 주었다. 얼마 후, 선인장은 쓰러지고 말았다.
명문대에 입학해 졸업반인 선배의 딸 이야기를 들었다. 취업을 앞둔 아이가 방황 중이라는 것이다. 사춘기랄 것 없이 부모의 완벽한 방향타에 따라 성실히 움직였던 아이의 진로가 갑자기 안갯속에 빠졌다. “내가 너무 과잉 보호하며 키웠나?” 선배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못될까 걱정돼 아이의 매 순간에 개입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걸었던 걸림돌 많은 진창을 피해, 꽃길만 걷게 해주고 싶은 간절한 엄마의 마음이었다.
‘스포일러’라는 말이 있다. 영화를 볼 때 방해가 될 만큼 지나치게 친절한 사전 정보를 뜻하는 단어로, 본래 의미는 ‘망치다’ ‘훼방하다’라는 의미이다. 사실 스포일러를 안다는 건 영화 보기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지름길이 편하고 빠른 것 같아도, 모든 갈림길에 부모가 나타나 내비게이션이 될 수는 없다. 겪을 만큼 겪고, 아플 만큼 아파야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모든 것을 알려주고 결정해주는 건 타인의 인생 스포일러이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어야 하는 기쁨과 고통은 아이 몫이다. 가시 없는 선인장이 없는 것처럼 성장통 없는 성장도 없다.
내가 키우던 창가의 선인장은 필요 이상의 물을 먹고 뿌리가 썩었다. 아끼는 친구의 선물이라 가시며 잎을 자주 만진 탓도 있다. 무작정 주는 것이 사랑인 걸까. 정말 필요할 때 상대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주는 게 사랑일까. 사랑도 때로 아껴 써야 한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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