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서 염소 몰던 오주한, 70만 회원이 구해준 신발 신고 뛴다
마라톤 - 귀화 마라토너의 도쿄 도전
입력 2021.08.07 03:40
내 이름은 吳走韓… 내일 한국을 위해 달린다 - 오주한은 한국 국적을 얻은 지 1년여 만인 2019년 10월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그해 11월엔 손기정 기념관을 찾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해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던 고(故) 손기정 선생의 사진 앞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오주한(吳走韓)은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뜻이다. 자신을 발굴한 스승이자 ‘한국 아버지’였던 고(故) 오창석 감독이 지어줬다. 그는 8일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다. /오임석 청양군청 트레이너 제공
“반드시 메달을 따오겠습니다. 저의 감독이었고, 대리인이었던 아버지를 위해서요.”
2007년 여름,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작은 마을 투르카나에서 염소를 몰던 19살 청년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가 햇빛을 피해 움막 밑에 누워 있었다. 멀리서 어떤 중년의 동양인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 동양인은 에루페에게 이리저리 뛰어보도록 시켰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훗날 그의 아들이 되는 오주한과 고(故) 오창석 전 한국마라톤 국가대표팀 감독의 첫 만남이었다.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
케냐에서 귀화한 마라토너 오주한(33·청양군청)이 8일 삿포로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오주한은 본인을 발탁하고 한국 귀화를 도왔던 오창석 감독을 지난 5월 하늘로 떠나보냈다. 오주한은 올림픽 출전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전 본지에 “아버지와 함께한 14년 전부가 늘 행복했다. 염소몰이였던 내 삶을 완전히 바꿔줬다. 하늘에서 보고 계실 아버지에게 올림픽 메달을 선물로 드리겠다”고 했다.
오주한은 마라토너의 인생을 시작한 뒤 14년 동안 오 감독과 동고동락했다. 친아버지가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아 사실상 어머니 밑에서 자란 오주한은 오 감독 진짜 아버지처럼 대했다. 틈만 나면 품에 안겼고, 훈련 중 실없는 농담에도 입 벌려 웃었다. 오주한은 14년 마라토너 경력을 쌓는 동안 오 감독의 훈련 방식에 한 번도 반대하지 않고 따랐다.
필승 머리띠 두르고 - 한국 마라톤 대표팀 오주한(오른쪽부터)과 김재룡 감독, 케냐 출신 엘리자 무타이 코치가 6일 삿포로 숙소에서 선전을 다짐하며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고(故) 오창석 감독은 병세가 깊어지던 지난 4월 김 감독을 후임 사령탑으로 추천했다. /대한육상연맹
오주한은 첫 만남으로부터 4년 뒤인 2011년, 국제대회 경주마라톤에서 2시간9분23초로 우승했다. 염소를 몰며 한 달에 20달러(약 2만3000원)를 받던 청년이 상금으로 5500만원을 받았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형제, 자매에게 소와 염소 100마리 살 돈을 보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총 8차례 국제대회에서 우승했다. 2016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개인 최고 기록인 2시간5분13초로 가장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당시 귀화 전이었기 때문에 한국 신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2000년 이봉주가 세운 한국 기록 2시간7분20초보다 2분여 앞선다.
오창석 감독은 오주한이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로서 메달을 따길 바랐다. 2015년 귀화 추진 중 육상계 내부 중 일부가 반대했고, 약물복용 논란으로 막혔다.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복용했다는 해명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리우올림픽이 지나간 2018년에 한 번 더 추진해 그해 7월 한국 국적을 얻었다. 오 감독과 글자만 같은 ‘청양 오(吳)씨’ 시조가 됐다. 이름은 주한(走韓).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뜻이다.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오주한과 오 감독은 2019년 초부터 케냐에서 도쿄올림픽을 준비했다. 평평한 흙바닥이 넓게 펼쳐진 케냐 앨도레트는 마라톤 훈련에 최적화된 곳이다. 도쿄올림픽이 연기되고도 다음 해를 바라보며 계속 훈련했다. 지난해 10월, 오 감독이 기침을 자주하고 피곤해하기 시작했다. 6개월을 참다가 올해 4월 11일에 치료차 한국에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전날 오주한과 저녁을 먹으며 ‘케냐 비자도 갱신할 겸 기침만 치료하고 오겠다. 금방 올 테니깐 신경 쓰지 말고 올림픽에만 집중해라’고 했다.
그게 둘의 마지막 대화였다. 입국한 지 이틀 만에 오창석 감독은 의식을 잃을 정도로 증세가 악화했다. 코로나 자가 격리 기간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지 못했고, 18일에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해 치료했으나 5월 5일 60세로 눈을 감았다. 사망진단서에는 ‘다발성 장기부전’이라고 써 있다. 오 감독의 동생 오임석 청양군청 트레이너는 “물에 있던 병균에 의해서 감염된 게 아닌가 생각만 한다”고 했다.
오주한은 별세 소식을 갑작스레 들었다.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어요. 슬프고 혼란스러웠죠. 아버지 없이는 훈련을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올림픽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아버지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죠.”
오주한은 삿포로로 가기 직전 한국 마라톤계에 도움을 받았다. 그가 즐겨 신던 유명 브랜드 초록빛 신발이 있었는데, 전 세계에서 단종돼 구할 수 없었다. 오창석 감독과 절친했던 장영기 전국마라톤협회장이 돕기 위해 나섰다. 협회 회원 70만명이 전국 매장에 수소문했고, 대전에 있는 한 창고에 숨어있던 그 신발을 찾아냈다. 오주한은 이 신발을 신고 8일 마라톤에 나선다.
오주한은 가장 최근 대회였던 2019년 10월 경주마라톤에서 2시간08분42초로 통과했다. 가벼운 몸의 다른 마라토너와 달리 오주한은 탄탄한 근육질 몸을 가졌다. 근육질 몸은 쉽게 지치지 않기 때문에 삿포로의 덥고 습한 날씨에서 유리해 국내 마라톤계는 메달을 노려볼 만하다고 얘기한다.
“아버지는 저에게 늘 올림픽 메달로 동기 부여를 해줬습니다. 반드시 목에 걸고 돌아가겠습니다.”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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