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평생 모은 3억원 날리자, 사장님이 1억원 주며 건넨 말

최만섭 2021. 6. 24. 04:34

평생 모은 3억원 날리자, 사장님이 1억원 주며 건넨 말

[스타트업 취중잡담] 홈쇼핑에서 140만개 대박냈지만 사기로 실패, 재기 창업 성공기

진은혜 더비비드 기자

입력 2021.06.23 06:00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황정호 도우엔 대표. /더비비드

‘생명의 은인’ 같은 ‘사업의 은인’도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비즈니스 정글에서 정말 몇 안 되는 행운이다. 헤어용품 전문 브랜드 아우라아듀라의 황정호 대표를 만나 ‘운칠기삼’ 사업 이야기를 들었다.+

 

◇무역왕 꿈꾸며 일본 도쿄로

아우라아듀라는 여름철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머리카락을 보호하는 트리트먼트와 샴푸가 주력 제품이다. 손상이나 탈모 예방을 위해 모발도 피부처럼 자외선 등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한데, 손상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없애는 백금과 시스틴을 함유해 온라인몰(https://bit.ly/3iX1b3x) 등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황정호 대표는 어릴 적부터 무역왕을 꿈꿨다. “경기 동두천의 미군 부대 근처에서 성장했어요. 군장 멘 군인들에게 ‘기브 미 초콜릿’(give me chocolate)을 외치며 유년기를 보냈죠. 외국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막연히 ‘어른이 된다면 해외를 무대로 삼고 싶다’ 다짐했던 것 같아요. 무역왕을 꿈꾸며 1993년 강원대 무역학과에 입학했어요.”

황 대표는 대학생 시절 건너간 일본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도우엔

군 복무를 마치고 졸업을 앞둔 시기, 대학 동기들이 우르르 어학연수를 떠났다. 외환위기(IMF) 여파로 취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환율은 어느 정도 안정되자 기피성 유학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제게 서구권 유학은 그림의 떡 같은 일이었어요. 일본에서는 돈을 벌며 공부할 수 있다는 친구 말에 1999년 11월 일본 도쿄로 넘어갔습니다.”

도쿄에서의 1년 3개월은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꿔 놨다. “아침에는 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오후부터 새벽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하루에 1, 2시간만 눈 붙이며 호텔 청소, 패밀리 레스토랑, 고깃집 세 군데에서 일한 적도 있어요. 6개월간 이 생활을 하니 1000만원이 모이더군요. 당시로써는 큰 돈이죠. 그때부터 일을 줄이고 여행을 다녔어요. 일본어 공부도 하면서 자신감도 얻은, 20대 시절의 소중한 경험입니다.”

2001년 귀국 후 구직활동을 했다. 연이은 탈락에 지쳤을 무렵 인천에 있는 한 회사로부터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매출 300억원 규모의 화장품 용기 회사였어요. 해외영업팀의 일본 담당자로 합격했죠. 화장품이 낯설고 연봉도 낮았지만 일단 다니기로 했습니다. 동두천 집에서 인천까지, 편도 3시간 거리를 매일 비둘기호로 오갔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일본 회사 재직 시절 사진. /도우엔

일본 회사 재직 시절 사진. /도우엔

2006년 신혼여행으로 떠난 호주 시드니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매일 7시 출근해서 12시에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다 여유로운 삶을 접하니 너무 좋았어요. 맑은 하늘과 바다도 아름다웠죠. 한 5개월을 고민하다 사표를 쓰고 시드니행 비행기에 다시 올랐습니다. 이번엔 이민행 비행기였죠.”

호주에서의 삶은 예상과 달랐다. 자연만 아름다울 뿐 인종차별이 심했고 비즈니스로 성공하기에 제약이 많았다. “이민자로서 한계가 확실했어요. 호주는 문화권이나 인종이 같은 집단끼리만 비즈니스를 해요. 배타성이 매우 강한 거죠. 당시 곧 태어날 첫째가 호주의 주류인 백인과 경쟁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습니다. 비전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귀국과 완전 정착의 갈림길에 섰을 때 옛 일본 거래처 사장에게 연락했다. “첫 직장에서 일하며 만난 분인데 평소 저를 좋게 보셨어요. 1년 만에 그 분에게 전화해서 ‘저를 써줄 수 있냐’ 물었더니 흔쾌히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화장품 용기 영업 담당자가 필요했다면서요. 화장품 용기 수입, 화장품 제조까지 하는 회사였거든요. 그길로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넘어가 일본 가나자와 시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업 파트너이자 은인과 만남

황 대표는 "황상은 독립 못할 것 같으니 그냥 회사 열심히 다녀라"는 나카카와 사장의 도발에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고 회고했다. 사진은 나카가와 사장의 호의로 다녀온 뉴욕 여행 당시 사진. /도우엔

나카카와 사장의 호의로 다녀온 뉴욕 여행에서 촬영한 사진. /도우엔

일본에서 7년 머무는 동안 평생 은인을 만났다. 헤어 케어 브랜드 ‘르미네상스’를 운영하는 나카가와 사의 나카가와 사장이었다. “나이 차이가 2살밖에 나지 않는 제가 편했는지 술을 자주 사줬어요. 함께 술을 마실 때마다 저는 ‘마흔되기 전에 내 사업할 거야’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래놓고 사장님이 ‘도대체 언제 사업 시작하는거냐’ 물으면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며 피했어요.”

마흔이 된 2015년의 어느 날, 늘 타던 지하철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머리 하얀 세일즈맨들이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된 것. ‘계속 이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눈앞이 깜깜해졌다. 며칠 고민하다 사표를 냈다. 그리고 곧바로 한국 화장품 용기를 일본에 파는 무역상사를 차렸다.

회사 차리고 나카가와 사장님께 연락했어요. 그때 평생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뉴욕행 비행기 티켓과 호텔 숙박권이었죠. 자신과 함께 가자더군요. 제가 평소 미국을 동경해왔다는 걸 기억하고는 준 선물이었어요. 숙소는 센트럴파크가 훤히 보이는 유명 호텔의 47층 객실이었습니다. 뉴욕에서 머물던 3박 5일 동안 고급 레스토랑만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러면서 말하더군요. ‘이런 곳에서 자고 식사한 경험이 일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고요. ‘황상도 본인과 가족을 위해 한국에서 열심히 일했으면 좋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첫 사업 처참히 실패, 도우엔으로 재기

도우엔에서 취급하는 화장품 용기들. /더비비드

사업은 예측 불가능성의 연속이었다. 인간 관계도, 업무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었다. “일감을 주기로 약속했던 일본의 한 거래처 사장님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주문을 단 한 건도 하지 않더라고요. 다른 업체에서 주문이 들어와도 고객 불만 사항이 터져서 반품하고, 보상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7년간 일하며 모은 3억을 순식간에 다 써버렸어요. 결국 1년 만에 폐업해야 했죠.”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며 내 집 마련에도 성공한 친구들과 비교하니 마음만 초조해졌다. 월급쟁이 생활로는 이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 재도전을 결심했다. 문제는 자금 마련이었다. “해외 체류 기간이 길어서 대출길이 꽉 막혔습니다. 이자율 18%, 한도 1000만원의 신용대출밖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었죠.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친하게 지냈던 거래처 사장 네 분에게 사업계획서를 보여주고, 1억원을 투자해달라고 했습니다. 두 분은 정중히 거절하고 한 분은 ‘빌려주는 대신, 돈 관리는 일본에서 하겠다’고 해서 고사했습니다. 그 중 마지막 한 분만 아무 조건 없이 1억을 내줬어요. 그분이 바로 모셨던 나카가와 사장입니다.”

도우엔 공장 현장. /더비비드

2016년 무역상사 도우엔을 설립했다. 첫 사업과 마찬가지로 일본 기업에 화장품 용기를 납품했다. 우연한 일로 사업 확장 기회가 왔다. “르미네상스의 국내 총판사가 방만 경영을 한 바람에 본사에 거래대금을 못 주고 있었어요. 나카가와 사장이 한국에 와서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죠. 결국 한국 총판사는 파산했어요.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저는 나카가와 사장에게 용기내서 말했어요. 제가 하고 싶다고요.”

3~4개월 전국 미용용품 대리점을 돌며 동향을 살폈다. “이전 총판사가 저가로 제품을 뿌린 탓에 떨이 상품 인식이 강했습니다. 이때 첫 직장 동료였던 현 우리 회사 전무님이 큰 역할을 해줬어요. 미용에 미자도 모르던 사람이 4년간 대리점과 미용실을 돌더니 고객에게 클리닉 시술을 직접 시연하는 수준에 이르렀거든요. 이 분 덕에 바닥난 이미지도 복원하고 현재 50개 대리점에 르미네상스 제품을 납품하고 있어요.”

 

◇헤어 케어 제품 브랜드 론칭…홈쇼핑서 대박

아우라아듀라의 바르는 트리트먼트(왼쪽)와 히트작인 묽은 트리트먼트(오른쪽). /도우엔

지인들에게 제품 샘플을 나눠주다 신사업 아이디어도 떠올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샴푸, 트리트먼트, 오일 등의 샘플을 줬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미용실에서 쓰는 수준의 제품을 집에서도 쓸 수 있는 거니까요. 반응 보니 되겠다 싶어 본격적으로 헤어 케어 용품 브랜드 ‘아우라아듀라’를 론칭했습니다.”

2018년 ‘묽은 트리트먼트’를 가장 먼저 출시했다. 홈쇼핑에서 대박이 났다. 1년 동안 홈쇼핑에서만 140만 개 팔렸다. 여름철 햇빛으로부터 모발 보호 효과가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순탄했던 성공이 곧 독이 됐다. “벤더사가 결제대금 중 10억원을 안주는 거예요.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저희 제품에서 번 돈을 타사 제품 홈쇼핑 론칭비로 썼더라고요. 벤더사를 상대로 소송했는데 10억원 중 절반은 받고 나머지는 받지 못했어요.”

고생 끝에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제품 포장을 바꾸고 바르는 트리트먼트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저희 제품의 핵심은 손상된 모발을 복구하는 것입니다. 모발은 노화의 원인인 활성산소 때문에 손상됩니다.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게 모발 보호의 핵심이죠. 아우라아듀라의 묽은 트리트먼트에는 활성산소를 없애는 백금과 시스틴이 들어갔습니다. 바르는 트리트먼트엔 적당한 유분이 들어가서 여름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겨울엔 극심한 건조함으로부터 모발을 보호합니다.” 온라인몰(https://bit.ly/3iX1b3x)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연 매출 50억원, 배짱이 최고 무기

황 대표는 '퇴직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것'을 창업의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더비비드

산전수전 다 겪은 후 회사는 안정궤도를 향해 가고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독일, 스웨덴,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지로 화장품 용기를 수출하고 있다. 작년 연매출은 50억원. “사업 초기 ‘돈도 없는 게 무슨 사업이냐’는 핀잔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돈이든, 사람이든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더라고요. 두려움과 걱정은 도전하지 않은 사람들의 몫인 거죠.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물건 팔 수 있는 시대잖아요. 젊은 분들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취업이 어렵다고 주눅들지 말고 한 발만 떼 보세요.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릴 겁니다.”

남은 20~30년도 정년 없이 신나게 일 할 예정이다. “저희가 욕심만 덜 내면 미용실에서 프로들이 쓰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어요. 앞으로 이런 제품을 꾸준히 출시하고 싶습니다. 거창한 계획은 없어요. 저와 저 동료들은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하고, 소비자에겐 착한 가격에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것. 그것 만으로도 성공한 비즈니스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