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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돌고 나니] 두메산골 물처럼 흐르는 사람들

최만섭 2021. 6. 18. 05:09

[산모퉁이 돌고 나니] 두메산골 물처럼 흐르는 사람들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입력 2021.06.18 03:00

 

 

 

 

 

“목사님, 목사님이랑 인연을 끊든지 해야지, 내가 못살겠어요! 아직도 파종을 못 하고 있으니….” “아니, 인연이 끊으면 끊어지고 이으면 이어지나요! 비가 오니 어떻게 밭에서 돌을 거둬내나요?”

/일러스트=박상훈

2019년 평창에서 농사를 시작한 봄부터 트랙터로 쟁기질을 해주고 로터리를 쳐주는 평창 농부 김씨의 전화다. 그는 트랙터 다루는 기술이나 감자 농사에서는 평창 제일 가는 농부다.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유기농 미생물 농법을 한다고 퇴비도 쓰지 않으니, 그러다 망한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밭을 부쳐 먹으려면 밭도 제대로 만들고, 때맞춰 퇴비를 깔아주고, 씨 뿌리고, 비료도 제때 주라고 한다. 지난해에는 내가 비탈밭에 트랙터로 수직 이랑을 냈더니, 빗물이 가속도가 붙게 만들어 밭이 떠내려갈 판이라고 야단이었다. 그 후 어느 날 밭에 나가보니, 내게 말도 없이 자기 트랙터를 몰고 와서, 밭이랑을 다시 내고 있었다.

그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대화장터 인근에 산다. 이효석 시절엔 우리 밭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새벽부터 걸어서 반나절이나 걸린다. 그것도 구름이 닿는 덧개수재를 넘어 냇가 아랫마을이다. 40리 길이다. 그는 무슨 까닭인지 첫해를 빼고는 돈도 받지 않고 트랙터를 몰고 와 도와주고, 부탁이 없어도 때때로 나타나 살펴준다. 그는 교회 다니는 분도 아닌데, 누군가가 “뭣 하러 여기까지 오냐” 하니 “내가 좋으니까 오지 뭣 하러 여기까지 오냐!”고 했단다. 나는 그 덕분에 강원도 평창 사투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게 되었다. 툭툭 불친절한 듯이 내뱉는 말 속엔 곱게 말하는 친절함보다 더한 큰 진실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이 산골짜기에 자리하면서 처음엔 바람과 산과 하늘과 구름이 좋았는데, 이젠 골짜기의 돌들이 좋고, 사투리가 좋고, 사람이 좋다. 돌밭 밑 깊은 곳에 흐르는 맑은 지하수 같은 마음이 그 사투리에서 흘러나온다.

실은 이분보다 먼저 만났고, 자주 만나게 되는 분들이 있다. 아침마다 먼 앞산 구름 속에서 동이 트는 것을 보며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다. 어떤 이가 전기 사용이 불법이라 신고하여, 전기마저 끊어진 곳에 사신다.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왔다. 그분은 산을 올라, 댁 앞에 이른 마을 사람들에게 으레 커피 한잔 하라고 하신다. 양은 주전자에 물을 펄펄 끓여 봉지 커피를 타서 주신다. 우리가 밭일을 하고 있노라면, 때때로 밭까지 뜨거운 주전자를 들고 내려 와 커피를 타 주신다. 노숙하던 형제들이 같이 와서 일을 해도 달리 대하는 법이 없다.

 

실은 산 정상의 땅 수만 평이 젊은 날 그분 소유였다. 그분은 20대에 골짜기 입구 금광에서 노다지를 발견하여, 그 황금을 팔아 좋은 산과 농지를 산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들 사업 뒷바라지하다가 모두 팔게 되었단다. 어느 날, 홀로 먼 산을 바라보며 쓸쓸한 모습이시기에 내가 물었다. “저 산이 다 없어졌는데, 서운하시겠어요?” “뭘요! 자식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어느 집에선 부모가 돈 대주지 않았다고 글쎄…” “자식들이 중하지요. 이젠 큰아이도 잘되고 있어요.” 이 어르신은 이젠 임자가 여럿 바뀐 후, 우리 공동체의 것이 된 밭에 대해서 내 일처럼 비밀을 일러주신다. “저 밭은 감자 심으세요. 저쪽은 더덕 심어요. 퇴비 안 해도 잘될 거예요!”

농사짓는 공동체 일은 트랙터, 엔진톱, 굴착기, 4륜 트럭 사용은 물론이고 용접, 수도 공사, 집 수리, 하수도 수리, 데크 만들기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러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나타나는 분이 있다. 마을 ‘맥가이버’이시다. 상수도 반장도 하고, 노인회 총무도 하신다. 우리 공동체에서 고장이나 사고가 나면 즉시 나타나 내 일처럼 며칠씩도 도와준다. 온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리하신다. 그런데 일절 돈을 받지 않는다. 어제도 늦은 밤까지 반장님이 우리 공동체의 적자를 안타까워하며 여름 농사를 코치하고 갔다. 때때로 마을 지도자는 오가며 살피다, 웃으며 한마디씩 던진다. 그 한마디로 며칠 할 고생을 쉽게 넘기곤 했다.

산마루공동체 산골짜기엔 택배도 오지 않는다. 골짜기에 울리는 유일한 오토바이 소리가 있다. 언제나 반갑다. 우체부 아저씨다. 내가 쓴 책을 선물로 보낸 것이 주소가 바뀌어 몇 권 반송되어 왔다. 반송료를 드리는데, 잔돈이 피차 없어서 그냥 5000원, 만원을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고 만다. 그런데 산에서 일하다 집에 와 보면 며칠 후라도 어김없이 비닐봉지에 동전까지 넣은 거스름돈이 내 방 문 앞에 놓여 있다. 이 산골짜기 우체부 아저씨는 여전히 옛날 국민학교 교과서 속 그분이다. 오늘도 이 깊은 산골짜기엔 맑은 물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여전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