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어머님 백신 맞으러 가시는데 동행할 수 없다면? 절 찾으세요”

최만섭 2021. 6. 13. 16:36

“어머님 백신 맞으러 가시는데 동행할 수 없다면? 절 찾으세요”

[아무튼, 주말]
고령화 시대 신종 직업
병원 동행 매니저

백수진 기자

입력 2021.06.12 03:00

 

 

 

 

 

서울 송파구 돌봄SOS센터의 요청을 받은 병원 동행 매니저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센터로 모시고 있다. /송파구

병원 동행 매니저 김인우(26)씨는 지난달부터 노부부의 병원 가는 길을 책임지고 있다. 부부 중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한 명은 지팡이를 짚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병원을 오가기 어렵다. 타지에 살아 부모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는 자녀가 병원 동행 서비스를 신청했다. 김씨는 집에서 종합병원까지 택시로 어르신을 모시고 가 접수부터 시작해 각종 검사실·진료실·식당·약국까지 붙어 다닌다. 회사에 있는 자녀에겐 실시간 메시지로 환자 상태와 치료 계획 등을 전달한다.

김씨는 “여러 진료과를 돌아야 하는 경우, 대형 병원은 크고 복잡하다 보니 어르신이 일일이 찾아다니기 어렵다”면서 “효율적인 동선을 파악해놓고 미리 설명을 드려서 편안하게 진료받도록 돕는 것이 병원 동행 매니저의 역할”이라고 했다. “노인 돌봄 업체 광고에서 ‘내 부모처럼 모시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병원에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화를 내거나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자녀들을 보면 ‘부모처럼 모시는 게 좋은 걸까’ 싶을 때도 있지요(웃음).”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들의 병원 방문을 돕는 ‘병원 동행 매니저’가 고령화 사회의 신종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용은 시간당 2만원. 교통비·식사 비용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주로 회사에 다녀 병원에 갈 시간이 없거나, 부모와 다른 지역에 사는 자녀가 아픈 부모를 맡기려 병원 동행 서비스를 찾는다. 최근엔 고령층의 백신 접종이 늘면서 어르신을 모시고 접종 센터까지 동행하기도 한다.

약을 대신 수령한 병원 동행 매니저가 시각장애인 어르신에게 복용 방법을 설명해드리고 있다. /고위드유

직장인 김모(46)씨는 한 달에 두세 번 병원을 가야 하는 어머니를 위해 병원 동행 매니저를 찾았다. 중증 근무력증 환자인 어머니는 합병증 때문에 수시로 내분비내과·심장내과·신장내과를 들러야 했다. 김씨는 “매번 회사에 휴가를 내고 어머니를 병원에 모셨는데, 더는 휴가를 쓰기 어려워져 병원 동행 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고 했다. “아무리 딸이라도 휠체어 끌고 병원에서 장시간 기다리다 보면 짜증을 낼 때도 있는데, 매니저는 직업 정신으로 항상 친절하게 대하시더라고요. 비용은 부담되지만, 저보다 낫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병원 동행 매니저는 대부분 요양보호사나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다. 병원 동행 서비스 업체 소속으로 전문적인 교육도 받는다. 제일 신경 쓰는 점은 고령자의 낙상 위험.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거나, 휠체어에서 택시로 옮겨 탈 때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체구가 큰 환자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 때가 많다. 환자가 매니저를 상대로 폭행이나 성추행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는 매니저 보호를 위해 서비스를 중단한다.

 

가족을 대신해 환자의 상태를 전달하고, 궁금한 점을 묻는 등 의료진과 소통도 중요하다. 병원 동행 매니저 이보미(41)씨는 “의사가 질문을 쏟아내면 미처 답을 못하시거나 마냥 ‘괜찮다’고 명확히 표현을 못 하실 때도 있다”면서 “초진인 경우엔 증상이나 과거 병력, 드시는 약 등을 미리 확인해서 전달하기도 한다”고 했다.

매니저 이씨는 맡았던 환자 중 “뇌종양 수술 이후 방사선 치료를 받으려 30번 가까이 예약했던 환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편마비가 와서 차에 타거나 치료실 침대에 눕는 것도 혼자 못 할 정도였는데 마지막엔 스스로 걷는 모습을 보고 서비스를 종료했거든요. 그렇게 큰병을 이겨내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 큰 감동이죠.”

/디어라운드

매일 함께 병원을 오가다 보면 친한 말벗이 되기도 한다. 병원 동행 매니저 이재원(25)씨는 “외로운 어르신이 많은데 아들이나 손자뻘 되는 매니저가 오면 굉장히 좋아하신다”면서 “비싼 돈 들까 봐 자식한테는 숨기던 증상들도 제삼자인 매니저한테는 자세히 말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항암 치료 때문에 병원 동행을 신청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집중 항암 치료를 받으면 5주 동안 매일 병원을 왔다 갔다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속의 고민, 인생 얘기도 들려주시고 진료 끝나고 자식한테 전화해서 ‘같이 밥 한 끼 먹고 들어가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죠.”

최근 고령층의 백신 접종이 늘면서 지자체에서 병원 동행 매니저를 찾기도 한다. 서울 서초구와 송파구는 코로나 예방접종센터까지 이동이 어려운 독거 어르신에게 병원 동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김인우 매니저는 “어르신들이 백신접종센터에 가면 예진표 작성을 가장 어려워하신다”면서 “글자가 너무 작고, 점검할 사항이 많은 데다 낯선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매니저들이 동행해 도움을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튼 주말

 

백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