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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세상의 모든 훈련병 엄마들을 위하여

최만섭 2021. 5. 28. 05:33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세상의 모든 훈련병 엄마들을 위하여

코로나로 사라진 입소식… 훈련소 앞에 택배처럼 아들만 떨궈야
첫 일주일 잘 견디면 18개월이 거뜬… ‘통신보약’ 놓치지 말길
‘군화모’서 깨알 정보 얻고 하루 만보 걸으며 아들들 응원합시다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입력 2021.05.27 03:00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달 초 만 20세 아들을 대한민국 육군 현역으로 입대시킨 훈련병모(母) 김아무개입니다. 눈만 뜨면 국방부 시계가 제대로 가는지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26일 현재 전역까지 532일 하고도 9시간 14분 28초가 남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글은 쓸 줄 모르지만, 아들 입대를 앞두고 잠 못 이룰 어머니들께 작은 쓸모가 되고자 용기를 냈습니다. 입영 3주 차 훈병모가 군대에 대해 뭘 알겠느냐고요? 내무반 계급이 짬밥 순이듯 엄마의 군 정보력도 아들 입대 순임을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우선 연병장에서 거행하던 입소식은 코로나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대신 드라이브 스루! 훈련소 앞에 사랑하는 아들을 택배 떨구듯 던지고 가셔야 합니다. 포옹, 악수 그런 거 없습니다. 부모는 차에서 한 발도 내릴 수 없습니다. 미리 작별 인사 안 하시면 백미러로 황망히 멀어져 가는 아들의 빡빡머리를 보며 통곡하게 될 겁니다.

미리 해야 할 또 하나의 것은, 입소 준비물 점검입니다. 알아서 다 챙겼다는 아들만 믿었다간 욕실에 그대로 남아 있는 올인원 샴푸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눈 나쁜 아들은 여벌 안경이 필요하고, 전자시계, 편지지와 우표, 자기 물건에 이름 쓸 네임펜도 필수입니다. 생활관에 코골이 대포 병사가 한둘은 꼭 있는 법. 귀마개는 꿀팁입니다.

입소 후 첫 일주일은 끝이 안 보이는 터널입니다. 철문 안으로 사라진 아들이 밥은 먹는지, 잠은 자는지, 올인원 샴푸가 없어 씻지도 못하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지만 알 길이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엄마, 밥 줘” 하고 들어올 것 같은데 돌아보면 없습니다. 머리 냄새 찌든 아들의 베개를 끌어안고 날이 맑아서도 울고, 날이 흐려서도 웁니다. 제2차 세계대전 나간 것도 아닌데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슬픔을 견뎌내는 단 하나의 방법은 연대. 동병상련의 엄마 4만명이 모인 ‘군화모’ 카페를 아십니까. 게시판에는 ‘전선야곡’을 방불케 하는 사연들과 깨알 문답이 장관을 이룹니다. 병장모들의 위엄과 여유는 왜 그리 멋지고 부럽던지요. 전문 용어에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통신보약’은 훈련병 아들이 걸어주는 보약 같은 전화, ‘아말다말’은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의 줄임말, ‘인편’은 온라인 위문편지를 뜻합니다.

 

며칠 전 경상도 아버님이 올린 인편이 큰 위로 되더군요. ‘어느덧 입영한 지 3주. 소총도 몸에 붙고 관물대 정리도 익숙해졌나? 군가도 크게 잘 부르고 이동 중에 발도 잘 맞추나? 아무 생각 없이 밥때만 기다리다 저녁에 눈 붙이고 아침에 눈 뜨면 딱 10분 지난 것 같은 생활. 즉 머리 쓸 일 전혀 없는 그 생활이 실은 젤 편한 휴가나 다름없다. 다시 못 올 시간, 원 없이 즐겨라. 아프지만 말고, 다치지만 말고.’

그렇게 일주일을 견디면 아들의 첫 전화가 걸려옵니다. 하필 지하철에서 받아 “뭐라고?“ ”안 들려”만 외치다 끊겼지만 살아있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통신보약은 보통 주말에 걸려오고, 02 또는 070으로 뜹니다. 006 같은 국제전화는 보이스 피싱일 수 있으니 거르시고, 첫 통화는 꼭 녹음하세요. 간혹 내 아들만 전화 안 온다는 분들 있는데, 휴대전화에 컬렉트콜이 차단돼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도 아니면 여친에게 금쪽 같은 3분 다 바쳤을 가능성 큽니다.

‘더캠프’란 앱도 요긴합니다. 군복 입은 아들의 훈련 사진이 올라오고, 위문편지도 보낼 수 있습니다. 수백의 병사들 속에서도 내 아들 머리통은 3초 만에 보이니 신통방통하지요? 마침내 소포에 실려온 아들의 옷과 “잘 먹고 잘 자니 걱정 마시라”는 군기 꽉 잡힌 편지를 읽으면, 하필 분단된 나라에 태어나게 한 미안함과 대견함이 교차해 폭풍 눈물이 터집니다.

군화모들을 울린 어느 연대장의 편지가 있습니다. ‘훈련병들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부대 지휘관이기 전에 자식 둔 부모로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훈련병들을 아들처럼 생각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수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호화 급식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소 지나간 흔적만 있다는 ‘황소도강탕'이어도 좋습니다. 다만 아버지 같은 소대장, 형 같은 선임병 만나 조국의 부르심에 꽃 같은 자유를 헌납한 자신이 얼마나 강하고 멋진 남자인지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만 해주세요. 헬조선 아니고 꿀조선 지키는 자부심 갖도록 멋진 정치 해주세요. 엄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기도뿐. 18개월 뒤 무사히 품에 안기만을 빌며, 오늘도 군화모들은 가슴에 납덩이를 안은 채 만보를 걷습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