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해지고 싶다면 悲劇을 보라”
‘대학로 블루칩’ 연출가 신유청
입력 2021.04.28 03:00 | 수정 2021.04.28 03:00
고선웅 이후 약 10년 만에 ‘대학로 블루칩'이 등장했다. 지난해 백상연극상을 받은 연출가 신유청(40)에게는 러브콜이 쏟아진다. 그의 신작 ‘빈센트 리버’(7월 11일까지 충무아트센터)가 27일 개막했다. 5월 25~30일에는 LG아트센터로 건너가 ‘그을린 사랑’을 올리고, 11월에는 7시간이 넘는 국립극단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연출한다. “텍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는 평가다.
연출가 신유청에게 연극이란 무엇일까.“ 제 직업이기도 하고 저한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르다. 교만해질 때는 새 작품을 하며 나를 누르는 법도 배운다.” /남강호 기자
‘빈센트 리버’는 동성애 혐오 범죄로 아들 빈센트를 잃은 엄마 아니타가 집 앞을 서성이는 수상한 소년 데이비를 만나 펼쳐지는 2인극이다. 데이비는 사고 현장에 있던 유일한 목격자. 신유청은 “끔찍한 혐오나 살인, 동성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타인의 아픔과 조난신호(SOS)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연극”이라고 말했다. 요즘 주목받는 그는 연출가를 “우리 사회를 향해 어떤 화살을 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화살이라고?
“배우들은 훌륭하지만 경력과 배경이 다 다르다. 디렉션(연출)은 어느 자리에 멈춰서 한 방향을 바라보는 작업이다. 그래야 배우들이 그쪽으로 갈 테니까. 희곡을 깊이 읽으며 기초공사를 해놓아야 대사 한 줄 한 줄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빈센트 리버'는 어떤 연극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이 빈센트를 추모하는 이야기다. 아니타는 미혼모로 아들을 키웠는데 그의 진짜 모습을 몰랐다. 데이비에게는 빈센트가 보내는 SOS에 반응하지 못한 죄책감이 있다. 아니타와 데이비는 대화하면서 결국 이 사건의 뿌리를 만나게 된다. ‘조하리의 창’을 아는가?”
-설명이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부분,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부분, 나는 몰라도 남은 아는 부분, 그리고 나도 남도 모르는 부분 등 네 가지 영역이 있다. 아니타와 데이비는 몰랐거나 외면하던 부분을 알게 되면서 건강한 대화를 나눈다.”
-'그을린 사랑'도 그렇고 비극을 좋아하나?
“이번 연극은 비극이기는 해도 그 안에 예쁜 모습이 많다. 가족을 잃었지만 또 다른 가족을 얻는 셈이다. (비극을 보는 게 삶에 도움이 되는지 묻자) 그럴 수 있다. 남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살다보면 우리는 아니타처럼 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가해자일 수도 있다. 비극을 보면서 우리는 겸손해진다.”
연극 '그을린 사랑' /LG아트센터
이 연출가는 스킨헤드(skinhead)다. 이틀에 한 번씩 거울을 보며 머리를 민다고 했다.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인상이라고 하자 “나쁜 짓은 하지 말자는 뜻인가?”라며 웃었다. 10대 시절이 궁금해졌다.
-혹시 어떤 터닝 포인트가 있었나.
“영화를 좋아했는데 경쟁에서 도피하려고 계원예고에 입학했다. 연극영화과에 ‘빠따’가 있던 시절이다. 학교가 나를 길들이려고 했다. 내게 주인공 배역을 줬는데 연극이 끝나기도 전에 엉엉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를 묻자) 아마도 야생마가 순응으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전 세대 연출가들은 자기 극단이 있거나 누구 밑에서 성장했는데 당신은 달라 보인다.
“뮤지컬 ‘라이온 킹’ 메이킹북을 본 적이 있는데 창작자들이 자기 스타일대로 앉아 있는 게 너무 멋있었다. 연출가는 권력자가 아니다. 지시하는 게 아니라 여러 스태프가 자유롭게 제안하고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연극과 ‘그을린 사랑’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공통점이라면.
“사람한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올 때가 있는데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하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 책상에는 ‘Why me(왜 하필 나입니까)?’와 ‘Why not(왜 넌 안 되지)?’이 적혀 있다. 아내와 딸을 잃고 신을 원망한 바이든을 일으킨 두 컷 만화다.”
-코로나 시대라서 공연이 더 힘들 텐데.
“사실 코로나가 고맙다. 지난해 큰 상을 받고 오만해진 나를 눌러줬으니까.”
지난해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배우 서이숙과 전국향·우미화가 ‘빈센트 리버’에서 아니타를 번갈아 연기한다.
연극 '빈센트 리버'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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