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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미스트롯] 장윤정에게서 버림받은 노래를 국악 신동이 멋지게 살려냈다

최만섭 2021. 2. 12. 10:08

[어젯밤 미스트롯] 장윤정에게서 버림받은 노래를 국악 신동이 멋지게 살려냈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2.12 05:50

 

 

아홉살 국악 신동은 장윤정의 알려지지 않은 노래를 골랐다. “들어보니 좋았고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장윤정은 “이 노래는 전혀 활동하지 않은 노래”라고 했다. ‘활동하지 않은 노래’란 무엇인가. 음반에 발표는 했으나 방송이든 공연이든 부른 적이 없어 사장된 노래라는 뜻이다. 장윤정은 왜 이 노래를 녹음해 발표해놓고 부르지 않았을까. 히트하기 어려운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문세 노래 ‘기억이란 사랑보다’는 ‘옛사랑’을 뛰어넘는 이영훈 작사·작곡의 명곡이다. 그러나 다른 히트곡에 비해 훨씬 덜 알려졌다. 이문세가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곡이고 이문세가 잘 부를 수 있는 곡이다. 그러나 다른 노래에 비해 높낮이가 밋밋하고 강약이 도드라지지 않으며 빠르기의 변화도 별로 없다. 대중 가수는 무대에서 그런 노래를 선택하기 어렵다. 관객들의 열기가 빠르게 식는 것을 금방 체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는 발표하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뒤늦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김태연은 장윤정이 발표만 하고 부르지 않았던 노래 ‘바람길’을 불러 이날 최고 점수를 받았다. 이것은 김태연 혼자 성취한 것이 아니다. 이미 이 꼬맹이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시청자들과 심사위원들이, 그가 무슨 노래를 부르든 끝까지 경청할 준비가 돼 있었다. 역시나 이 노래는 상대적으로 구성이 밋밋했는데, 끝까지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으니 멋진 곡이었다. 이날의 1등은 김태연과 시청자가 합심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미스 트롯’에 출연한 가수들은 나름대로 활동을 해왔으나 보통의 시청자들에겐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무대에서 자신이 원하는 노래보다 관객이 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가 관객이 듣고자 하는 노래와 일치하지 않을 때, 이들은 가차없이 자신의 기호를 포기한다. 예술은 멀고 밥벌이는 항상 눈 앞에 닥쳐있다. 이날 별사랑이 무대에 나와 말했다. 윤정인이란 본명 대신 B급 정서의 이름으로 활동해 온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이 태진아의 ‘당신의 눈물’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내가 부르고 싶고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당신의 눈물’ 같은 곡인데 그런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일어나서 가더라고 했다. 그래서 “외로워도 힘들어도/ 말도 못하고/ 아 당신은 언제나/ 눈물을 감추고 있었나” 하는 가사가 자신의 얘기 같더라고 했다.

 

그녀는 예선에서 짧은 옷을 입고 나와 다리를 찢고 요가 자세로 노래했는데, 그게 바로 그녀가 10년간 B급 무대에서 노래해 온 방식이었다. 이날 별사랑은 얌전한 검정 드레스를 입고 오랫동안 보여주고 싶어 했던 무대를 보여줬다. ‘레전드’니 ‘마스터’니 하는 식으로 불리지 않는 트로트 가수의 삶은 얼마나 고단한가. 그런 가수들이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평가받게 해준 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인간적으로 고맙다.

미스트롯2 레전드 미션에서 '목포행 완행열차'를 부른 마리아./TV조선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마리아는 위태롭다. 미국에 있는 그녀 부모님의 “지금까지 잘 해온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는 응원이 감동적이었다. 마리아가 트로트 경연 준결승에 오른 것은 나훈아가 미국 최대 컨트리 무대인 ‘그랜드 올 오프리 쇼’에 오른 것과 비슷하다. 결선 진출 여부에 상관 없이 그녀의 놀라운 재능을 응원하는 이유다.

 

윤태화가 병상에 있는 어머니와 만나 눈물을 훌쩍였으니, 분명 ‘감성팔이 그만 하라’는 댓글들이 달릴 것이다. 그러나 트로트 자체가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이다. 왜 나훈아의 고향역에는 하필 코스모스가 피어있고 6.25 전쟁 때 끌려가던 남자들은 뒤돌아보고 또 돌아봤는가. 대중예술은 기본적으로 감성을 판다. 18세기 최고의 대중음악가였던 베토벤이 운명교향곡 도입부를 그렇게 쓴 것도 ‘운명은 그렇게 문을 두드린다’며 감성을 팔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트로트의 감성팔이에 조금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강혜연은 셋잇단음표가 연달아 나오는 곡을 고르는 바람에 노래 실력을 제대로 뽐내기 어려웠다. 이 노래는 경연용이라기보다는 앙코르에 더 적합했다. 그녀는 귀여운 용모와 표정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으나 노래가 묻히면서 탈락 위기에 놓였다. 그 다음으로 김다현이 나와 ‘훨훨훨’ 같은 노래로 실력을 맘껏 뽐내면서, 강혜연의 모험적 선곡은 더욱 빛이 바랬다. 사실상 노래 실력에 거의 편차가 없는 이들 열 네명에게, 결과적으로 선곡은 실력의 절반인 셈이다.

 

#미스트롯#미스터트롯

 

한현우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