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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동거 마침표 찍은 존슨… 英 내부갈등은 첩첩산중

최만섭 2020. 12. 26. 08:12

EU 동거 마침표 찍은 존슨… 英 내부갈등은 첩첩산중

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20.12.26 03:00

 

 

 

 

 

24일 EU와의 미래 관계 타결을 설명하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24일(현지 시각)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잔뜩 고무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EU(유럽연합)와의 미래 관계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존슨은 “이제 우리의 법률과 운명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아왔다”고 했다. 영국이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후 47년간 이어져온 유럽 본토와의 동거를 끝냈다고 선언한 것이다. 국민투표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결정한 지 4년 6개월 만이기도 하다. 일간 데일리메일은 “존슨이 ‘브렉스마스(Brexmas·브렉시트와 크리스마스 합성어)’를 가져왔다”고 했다.

브렉시트로 달라지는 상황

존슨은 브렉시트를 이끌어낸 주인공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는 국민투표 가결 이후에도 실제로 유럽 본토와 결별을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7만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와 코로나 사태로 코너에 몰린 그가 정치적으로 회생하는 계기를 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 조사에서 지난 4월 66%였던 존슨의 지지율은 이달 37%로 하락했는데, 브렉시트 성사로 반등의 발판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협상 타결로 영국이 앞으로도 EU와 무관세 교역을 계속할 수 있는 성과도 거뒀다. 양측의 교역 규모는 6680억파운드(약 1003조원)에 달한다.

존슨은 ‘브렉시트 구원투수’ 격으로 총리가 됐다. 전임 테리사 메이가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난맥상을 해결하지 못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나자 존슨은 보수당 경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지난해 7월 총리로 취임했다. 하지만 원내 과반수에 못 미치는 보수당 의석 탓에 뜻대로 브렉시트를 밀고 나가기 어려웠다. 존슨은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꺼내 작년 12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고, 이를 바탕으로 EU와의 미래 관계 협상까지 마무리하게 됐다.

“브렉시트 완수하자” 작년엔 불도저 퍼포먼스 - 보리스 존슨(가운데 오른쪽) 영국 총리가 작년 12월 ‘브렉시트를 완수하자’란 문구가 적힌 불도저를 몰고 벽을 돌파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러나 아직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독립국가로 떨어져나가겠다는 스코틀랜드를 달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로 꼽힌다. 잉글랜드보다 경제적으로 EU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 스코틀랜드는 줄곧 브렉시트에 반대해왔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24일 “합의 내용이 브렉시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가는 부분을 보상해주지 못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스터전은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내년에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브렉시트 달성이 영국이라는 연합 왕국의 붕괴로 이어지는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합 왕국의 또 다른 일원인 웨일스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마크 드레이크퍼드 웨일스 자치정부 수반도 “우리가 원한 합의가 아니며 웨일스 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브렉시트에 따른 이동·무역·거주 등에 관련한 번거로움을 영국인들이 얼마나 인내해 주느냐도 존슨에게는 숙제다. 존슨은 어업권 협상에 공을 들였지만 어민들로부터도 강한 불만을 사고 있다. 양측은 영국 해역에서 EU 어획량 쿼터를 5년 6개월간 지금보다 25% 줄이기로 합의했다. 영국이 당초 3년간 60%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양보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존슨은 작은 물고기들이 새겨진 감색 넥타이를 매고 나와 어업권을 중시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영국 수산업계는 너무 많이 물러섰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의 물고기 무늬 넥타이. /AP 연합뉴스

일간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마틴 케틀은 “이번 합의는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다. 브렉시트에 반대해온 절반가량 국민의 불만이 커질 것이고,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이들도 EU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며 반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번 합의에서 존슨은 무관세로 EU와 교역하되, EU와 동일한 노동·환경 규제와 보조금 정책을 준수하기로 약속했다. 강경한 브렉시트 찬성파는 “제대로 된 브렉시트가 아니다”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존슨은 내년부터 미국, 중국 등 주요국과 개별적인 무역 협정 체결을 서두를 예정이다. 브렉시트로 독자적인 무역 정책을 행사하는 자유가 생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둘 예정이다. 하지만 수많은 나라와 개별 협상을 체결하는 것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파리에 상주하며 유럽 소식을 전하는 유럽특파원입니다. 유럽에 관심 있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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