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아랍의 봄’ 10년… 더 멀어진 민주주의, 유럽까지 흔든다
10년전 튀니지發 반체제 시위 리비아·이집트 등 독재체제 붕괴
아랍 難民 유럽 밀려들어 외국인 혐오·극우파 득세 ‘나비 효과’
독재 대체할 민주주의 未성숙… 안정 대신 갈등 확산 다시 위기
입력 2020.12.14 03:00
꼭 10년 전이다. 2010년 12월 17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작은 도시에서 26세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채소 행상을 하며 번 한 달 140달러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는 단속반원들에게 물건을 다 빼앗겼다. 자릿세 뇌물을 주지 못한 탓이다. 저울이라도 돌려달라고 담당 공무원에게 간청했지만 무시당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무기력한 한 개인의 불행으로만 보였다. 당국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배우지 못했고, 재산도 없고, 권력의 작은 끈도 없는 청년의 죽음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듯했다.
분신 자살한 무함마드 부아지지/인터넷 캡처
‘아랍의 봄’ 10년 그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인터넷을 통해 전파된 그의 비극적 사진이 청년들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새벽부터 일하던 20대 한 청년 가장의 비참한 죽음이 곧 자신들의 불행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섰다. 저항의 불길은 거셌고 금세 국경을 넘었다. 아랍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중 튀니지를 비롯하여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바레인, 예멘 등 6국에서 대중 봉기는 임계점에 이르렀다. 정부의 발포로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신이 거리에 쌓여갔지만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몇 달 만에 철옹성과 같은 아랍의 수십 년 독재 정권이 차례로 무너졌고 시리아는 내전으로 접어들었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다. 바레인 왕정만 간신히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형제 국가 사우디 등 걸프 왕정국가들의 전폭적 지원 때문이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 온 독재의 종언인가. 그러나 독재의 빈자리를 민주주의가 바로 채우지 못하면서 뒤틀렸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만 한 지도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랜 독재의 탄압으로 대부분 씨가 마른 상황이었다. 극도의 혼란으로 접어들었다. 42년 카다피 철권통치가 붕괴된 리비아, 34년 독재가 종식된 예멘, 그리고 세습 후 11년째 아들이 통치해온 시리아에서 차례로 내전이 일어났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좀처럼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 단순히 특정 국가 내의 권력싸움이 아니라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국제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혼란 국면에서 이집트는 군부가 복귀하며 간신히 내전은 피했다. 하지만 이전 무바라크 때보다 더욱 강고한 권위주의로 회귀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독재가 물러난 후 민주주의의 경로를 밟고 있는 나라는 튀니지가 유일하다. 그러나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여전히 위태위태하다.
다들 말한다. 아랍의 봄은 도래하지 않았고 결국 2010년은 혹독한 겨울의 초입이었다고. 이 사건은 민주주의를 통한 평화와 안정은커녕 오히려 분쟁과 갈등을 양산하는 기폭제였다는 견해가 더 많다. 단순히 특정 국가의 정치제도화 실패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아랍 민주화의 실패는 중동 전역을 거쳐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일종의 나비효과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막화로 인해 더 이상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사하라 이남의 주민들이 리비아를 거쳐 지중해를 건너기 시작했다. 어차피 삶의 희망이 없다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유럽을 향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난민들을 가득 실은 보트가 지중해 이곳저곳에서 유럽을 향했다. 내전 중인 리비아의 공권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 카다피의 잔인한 독재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내전을 견디다 못한 시리아 660만 난민 역시 중동 전역으로 흩어졌고, 일부는 터키를 통해 발칸 반도를 거쳐 중부 유럽을 향했다. 역시 내전을 피하려는 예멘의 난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주의 대신 권위주의 득세
유럽은 아연 긴장했다. 지중해 루트로, 발칸 루트로 밀려들어오는 난민들을 수용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리비아와 가까운 지중해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은 밀려드는 난민들로 인사인해다. 여기에 IS 등 중동 현지 테러리스트들이 난민 사이에 섞여 들어올 수 있다는 공포감이 덧대어졌다. 난민 반대를 시작으로 외국인 혐오의 정서가 더욱 증폭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말은 대놓고 못해도 중동에 차라리 독재정권이 그래도 남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 스멀스멀 일어났을 것이다.
언필칭 인권과 보편적 가치를 주장하며 연합을 주장해 온 유럽의 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통합을 포기하고 각자도생을 주장하는 국가주의 극우파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아가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다. 유럽의 반이민, 반난민 정서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고립주의로도 이어졌다. 트럼프의 미국제일주의 역시 유럽의 이러한 정서로부터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초연결망의 사회에서 공포와 혐오 그리고 배타주의는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결국 튀니지 청년의 10년 전 분신 사건이 오늘 세계가 목도하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위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쉽사리 부인할 수 없다.
작년부터 또다시 아랍이 흔들리고 있다. 알제리와 수단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이라크, 요르단, 모로코 및 레바논 등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제2의 아랍의 봄이 일어나는 징후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섣불리 새 세상의 도래를 기대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이행은 정말 어려우며, 언제든 내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공포를 이미 목도했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10년은 이처럼 깊은 족적을 남겼다. 사람들은 끝 간 데 없는 갈등과 분열에 좌절했다. 그러나 더 아픈 부분은 따로 있다. 불안한 민주주의보다는 안정된 권위주의를 원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중동에서는 아직 민주주의 체제보다 차라리 독재자가 더 필요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금세 꺾인 아랍의 봄이 가져온 비극은 물리적인 고통뿐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비관주의, 염세주의다.
인남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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