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만남과 이별 그리고 영원한 흔적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입력 2020.11.13 03:00
주일 새벽 노숙인을 위한 예배 준비를 위해 기도 중이었다. “자비로우신 주님, 머리 둘 곳도 마음 둘 곳도 없는 형제자매들이 오늘 예배를 통하여 마음과 육신의 쉼을 얻게 하소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순간 전화가 왔다. “목사님, 어머님께서 위독하십니다. 의료진이 임종 기도를 드리라고 합니다. 오늘 오전을 넘기시기 어렵다고 합니다.” 나는 노숙인 예배를 드리고, 인천 I대학병원으로 출발했다. 다시 돌아와 11시 예배를 집례해야 하기에, 경인고속도로 체증이 걱정됐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잠깐 만에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운전 중에 나는 “이것이 김 장로님과 마지막인가? 주님께 봉헌할 일이 있는데 어찌하나! 생을 온전히 완결하시고, 주께 가셔야 하는데, 이렇게 떠나실 분이 아니신데!” 병실에 가 뵈니, 암으로 여전히 고통 중에 계셨다. 요청받은 대로, 임종 기도를 올렸다.
/일러스트=박상훈
그러나 기도 중에, 아직 떠나지 않으시리라 확신이 들었다. 너무 심한 고통이 남아 있었다. 육신의 남은 고통은 때로, 이생의 모든 것을 씻고 거룩하게 되는 유예의 은총이기도 하다. 고통은 육신을 초월하는 은혜의 통로다. 또한 김 장로님과 그 가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상’을 브론즈로 만들어 일주일 후면 봉헌하게 된다. 그런데 이를 두고 떠나시다니, 그럴 분이 아니시며, 데려가실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자녀들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상’은 2004년 김 장로님의 남편이신 하동철 화백(전 서울미대 학장)과 함께 구상했던 작품이다. 21세기는 영성의 시대이고, 기독교 영성의 중심이며 극점은 주님의 십자가다. 그래서, 개신교회 ‘십자가의 길’(비아돌로 로사)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 중에 ‘십자가의 뜰’을 구상하고 주님의 가시면류관과 못 박힌 손과 발을 크게 브론즈로 만들어 배치하기로 했다. 그 조형물 사이에서 성찬식을 하며, 손발을 만지며, 묵상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개신교 최초의 신학대학교인 K신학교에 세우기로 했다. K신학교 당국과 함께 진행시켰다. 그런데 3개월 후, 대학 측에서 설치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하 선생님은 심각했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예술가로서, 그리고 한 신앙인으로서 깊은 상처도 입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인도하심이 있었다. “선생님, 우리 보고 만들라는 것입니다. 개신교 수도원을 만들면, 그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죠.”
이 일이 있은 후, 3년이 지난 2006년 봄, 하 선생님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주께로 가셨다. 교수 은퇴도 하기 전이었다. 선생님은 평생 빛을 주제로 작품을 하셨던 추상미술 화가셨다. 그러나 떠나시기 5년여 전, 산마루교회를 출석하셨다. 그 어느 날, 말씀하셨다. “인생의 날이 더하니, 이젠 추상적인 것보다 손으로 만져지는 사물들이 그립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오래된 나무 농기구들을 탁본하셨다. 탁본은 나이테로 물질의 세계와 그 흐르는 시간을 절절히 드러냈다. 그리고 쌀 됫박을 해체해서, 탁본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내게도 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받은 머리와 손과 발을 형상화하셨다. 물질세계의 절대적 존재인 빛과 영성 세계의 극점인 십자가 사랑의 고난! 그 사랑을 손으로 교감하며 작품화하셨다. 인생이란 누구나 왔지만, 누구나 이 물질의 세계를 떠나야 하는 여정, 그리고 만나지만 헤어져야 하는 여정에서 남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선생님과 나는 진실의 흔적을 함께 나누었다. 영원의 흔적으로 주 안에서!
그리고 15년이 지난 오늘, 하 선생님의 아내이신 김 장로(전 S여대 대학원장)님에게서 갑자기 말기 암이 발견되었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산마루예수공동체가 세워졌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상”을 어머니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주께 봉헌하도록 하자. 그리고 어머님께서 천국에 이르러 아버님을 뵙고 말씀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온 가족들과 함께 평창 산골짜기 산마루예수공동체에서는 10월 9일 작품을 봉헌했다. 산골짜기 작은 음악회와 함께. 그리고 며칠 후 김 장로님은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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