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廢寺를 땅끝의 명소로… 이젠 떠날 때가 됐네요”
주지 금강 스님, 20년 만에 해남 미황사 떠난다
입력 2020.12.04 03:00
금강 스님이 미황사를 떠난다. 스님은 2000년부터 주지를 맡아 외국인들까지 찾아오는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로 가꿔왔다. /불광출판사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전남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54) 스님이 미황사를 떠난다. 주지를 맡은 지 20년 만이다. 금강 스님은 최근 본지 통화에서 “본사(本寺·대흥사)에서 내년 2월 초 새 주지가 온다는 통보를 받았다. 20년 동안 하고 싶은 일 원 없이 했다. 이젠 떠날 때가 됐다”고 담담히 말했다.
미황사는 ’21세기형 불사(佛事)의 모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 사찰이다. 금강 스님이 처음 미황사를 찾은 것은 1989년. 은사인 지운 스님을 모시고 찾아간 절은 사실상 버려진 상태였다. 절 뒤편 달마산 풍광이 아무리 빼어나도 스님이 제대로 살지 않는 절은 폐사(廢寺)나 다름없었다.
매년 10월 높이 12미터짜리 괘불을 걸고 드리는 미황사 괘불재. 대웅보전 뒤로 달마산 연봉이 보인다. /미황사 제공
금강 스님은 대흥사 선배인 현공 스님에게 간청해 1992년 주지로 모셨다. 이후 현공 스님은 전국 목재상을 찾아다니며 재료를 구하고 손수 지게를 지어가며 대웅보전(보물 947호) 주변 석축 보수를 시작으로 여러 전각을 복원했다.
현공 스님에게 절을 부탁하고 전국의 선원(禪院)을 다니며 수행하던 금강 스님이 미황사로 돌아온 건 2000년. 그 사이 사찰은 몰라보게 틀을 갖췄다. “잠깐 다녀가라”던 현공 스님의 전갈은 “이젠 네가 주지 맡으라”는 얘기였다. 두 스님의 ‘행복한 릴레이’였다. 이후로도 현공은 집을 짓고, 금강은 콘텐츠를 채워 넣었다. 지난 30년간 화장실까지 포함하면 집 27채가 새로 들어섰다. 금강 스님은 “산중 사찰의 장점을 살려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21세기 사찰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미황사 대웅보전 천장 문양. 금강 스님은 사찰 구석구석에 새겨진 작은 문양까지 그 의미를 새겨서 널리 알려왔다. /불광출판사
금강 스님은 2000년 어린이 한문 학당을 시작으로 2002년엔 템플스테이, 2005년 참선 집중 수행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매년 10월이면 높이 12m짜리 괘불을 대웅보전 앞마당에 걸고 마을 축제를 열었다. 이 잔치엔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농사 지은 온갖 곡식을 비롯해 학위 논문까지 부처님께 올렸다. 절에 콘텐츠가 채워지자 땅끝마을 미황사까지 도시 사람들과 외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템플스테이는 연평균 4000명씩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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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아래 마을 서정 분교(分校)를 살려낸 공로도 빠질 수 없다. 여느 시골 사정이 다 비슷하듯 서정 분교도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직전인 상황에서 미황사가 나섰다. 뜻있는 이들의 도움으로 스쿨버스를 마련해 마을을 돌면서 학생을 실어 날랐다. 이제 서정 분교는 초등학교로 다시 승격됐다. 주민들은 “고마운 절”이라며 미황사 벌초와 청소까지 도와준다.
문화 예술인들도 땅끝까지 달려왔다. 노영심씨는 산사 음악회에서 연주한 곡을 CD로 발매해 서정 분교 돕기에 나섰고, 미황사를 주제로 한 미술가들의 작품전도 열렸다. 펜화로 유명한 김영택씨도 지난해 암 투병 중 미황사에 머물며 작품전을 열었다. 금강 스님은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로 선정돼 오는 12월 8일 대통령상도 받는다.
금강 스님이 미황사를 떠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걱정 반 기대 반의 반응이 나온다. 한 불교계 인사는 “사찰도 결국 사람 문제”라며 “금강 스님이 만든 콘텐츠가 어떻게 계승 발전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금강 스님으로서도 20년 동안 최선을 다해 미황사를 가꿔왔기 때문에 이제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놓아드려야 할 때”라고 했다.
금강 스님은 “앞으로도 어디서든 제 할 일을 할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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