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청년실업·빈부격차·갈라지는 사회… 공동체 회복이 답이다

최만섭 2020. 11. 21. 17:05

청년실업·빈부격차·갈라지는 사회… 공동체 회복이 답이다

도시·지방 격차, 이념 갈등 심화… 세계 곳곳에서 공동체 균열 초래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입력 2020.11.21 03:00

 

 

 

 

 

자본주의의 미래

폴 콜리어 지음|김홍식 옮김|까치|383쪽|2만원

이 책이 출간되던 2018년 이탈리아는 극심한 청년 실업으로 신음했다. 청년 셋 중 한 명이 일을 찾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했다. 미국에선 가난한 백인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고학력 화이트칼라와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백인 노동자들이 4년 전 대선에서 좌절과 분노를 트럼프에 대한 지지로 폭발시켰다. 세계 곳곳에서 번영하는 대도시와 낙후한 지방 사이의 격차도 날로 벌어졌다. 이 모든 현상이 가리키는 의미는 분명했다. ‘공동체의 균열’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공정책을 가르치는 저자 콜리어 교수는 이 균열을 해결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좌파는 ‘국가가 나서는 것이 해법’이라 외치고 우파는 ‘규제를 철폐하면 다 풀린다’고 주장하지만 이념은 갈등을 증폭할 뿐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를 풀 실용적 해법을 찾자며 그가 제시한 것은 공동체 윤리의 회복이다.

유럽에서 공동체 윤리가 가장 빛을 발한 시기는 2차 대전 이후 복구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가 득세하던 20여년이다. 전쟁 극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던 시절이었다. 중심에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와 결별하고 시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자본주의를 꽃피웠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가부장적 정치 문화가 득세하며 공동체를 해체한 것이 사회민주주의 퇴보와 자본주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에서 지난해 3월 열린 빈곤 퇴치 캠페인에 참석한 시민단체 ‘도덕성 회복을 위한 국가적 외침’ 소속 회원들이 ‘가난한 사람 말고 가난과 싸워라’라고 쓴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공동체 윤리의 회복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주의적 인간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다’는 전제부터 틀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리·공정·자유·위계·배려·경험의 6대 윤리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국가 지도자는 이런 인간의 윤리적 특성을 활용해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의무를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를 위하는 호혜주의도 공동체라는 든든한 바탕이 있어야 발휘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민주주의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국가의 통치 스타일도 바뀌어야 한다. 사회문제 해결에 능동적으로 나서되 사회주의자들처럼 오만한 가부장이 되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야 한다. 가격의 조정 능력을 존중하되 자본의 논리가 공동체를 깰 정도로 폭주해선 안 된다. 저자는 이를 ‘사회적 모성주의’라고 명명한다. 사회적 모성주의가 뿌리내린 국가는 부자들의 승자 독식을 막지만 동시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자의 소득을 함부로 빼앗지 않는다. 한계기업을 퇴출시키되 해당 분야 종사자들에게 재활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자본주의의 장점인 창조적 파괴가 순탄하게 진행되도록 한다. 과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저소득층이 복지에 의지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부자에게서 가난한 이로 소득을 단순 이전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체의 반목과 갈등을 초래한 불평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제 개편의 필요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핵심은 대도시에서 창출되는 막대한 경제적 지대(地代·rent)를 소외된 지역과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이전·배분할 것이냐로 귀결된다. 대도시 인프라에서 혜택을 보는 이는 땅이나 건물 소유자만이 아니다. 이들의 땅과 집을 임차해 살면서 교통·교육·정보·소비의 편의를 누리는 의사·변호사·숙련노동자 등도 지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간주해 과세하자고 제안한다. 대도시 밖에 살면서 도시로 출근하는 이들에게도 같은 논리로 가산세를 부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조성된 돈을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 이전보다 낙후된 지역의 기업 생태계 조성이나 복원에 쓰자고 한다.

 

과세가 윤리적 정당성을 갖는 것도 중요한데, 세금을 기꺼이 내게 하려면 자신이 사는 장소에 애착을 가져야 한다. 소속감을 높이려면 임대주택보다 자가 소유를 늘려야 한다. 정부·지자체는 주택 공급을 늘리고 이를 가로막는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다만, 공동체 가치를 강조하다 보니 자유주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도 한다. 임차인이 집주인을 상대로 주택매입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대표적이다.

좋은 리더의 조건을 역설한 대목에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국가·기업·가정에서 좋은 리더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을 구성원들에게 성공적으로 심는 사람이다. 가장 나쁜 리더로 저자는 편 가르는 사람을 꼽는다. 정치인의 기본 임무는 사회 통합이며 여기에 기여할 공약을 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표만 얻을 수 있으면 국민 분열도 서슴지 않는 우리 정치인들 행태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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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출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