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강, 강, 강’ 스파이크··· 강소휘 “배구는 ‘깡’입니다”
[아무튼, 주말] 김연경 이긴 ‘김연경 키드’ 강소휘
입력 2020.09.19 03:00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배구공을 향해 강소휘(23·GS칼텍스)가 솟구쳤다. 공중에서 몸을 활처럼 당겼다. 힘껏 스파이크. 손을 떠난 공이 코트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환호했다. 25대23. GS칼텍스가 지난 5일 KOVO컵 결승전 3세트에서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을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방송 해설자는 “충격적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우승을 이끈 강소휘는 이날 몇 겹의 벽을 넘었다. ‘전설이자 우상’ 김연경과 싸워 이긴 경기였다. 네트 건너편에는 국가대표 레프트 이재영도 있었다. 대회 MVP는 강소휘 차지였다. 그녀는 “마지막 공격 땐 제가 좋아하는 볼이라서 ‘때리면 100% 득점’이라는 느낌이 왔다”며 “배구 인생에서 가장 기쁜 하루였다”고 했다.
지난 8일 경기 가평에 있는 GS칼텍스 체육관. 선수들에겐 ‘때 빼고 광 내는’ 날이었다. 오는 10월 중순 2020~2021 시즌 정규리그 개막을 앞두고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느라 공기가 들떠 있었다. 강소휘는 발랄하고 장난기가 많았다. 차상현 감독에게 셀카를 다시 찍자고 조르다 꾸지람을 들었다. “그만 좀 해라!” 그러거나 말거나 MVP는 싱글벙글이었다.
◇작전명 ‘미친개’
–2015년 프로로 데뷔해 신인상을 받는 시상식에선 ‘다시는 화장하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그땐 안 하던 화장을 해서 얼굴이 너무 가려웠어요. 인생에서 가장 답답한 하루였지요. 그런데 이젠 화장 안 하면 못 나가요(웃음). 오늘은 메이크업 전문가들이 오셔서 엄청 진하게 한 거예요. 신인 때랑은 얼굴이 다르지 않나요?”
–칼을 댔습니까.
“예? 안 댔어요. 볼살이 빠진 거예요. 고친 얼굴이 이 정도면 그 성형외과 문 닫아야죠. 하하하.”
–우승과 MVP 수상 축하합니다.
“결승전에서 저희는 잃을 게 없었어요. 득점이 안 돼도 즐겁게 하자고 마음먹었지요. (안혜진 세터에게 인상 쓰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고 하자) 아, 그건 장난이에요. 진짜 화가 나면 쳐다도 안 봐요.”
–흥국생명은 김연경까지 돌아와 절대 1강이었는데.
“다들 ‘어우흥’을 점쳐 사실 기분이 안 좋았어요. ‘우리 팀을 무시하나?’ 싶고. 배구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 몇 명보다 팀워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저희가 증명한 셈입니다.”
–그날 작전명이 ‘미친개’였다고요?
“선수들끼리 ‘지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미친 듯이 뛰어다니자’고 했어요. 저희 팀은 젊고 분위기가 워낙 좋아요. 경기에 투입되지 않는 선수들도 응원을 열심히 하고요. (KOVO컵에서 가장 큰 수확을 묻자) 정규시즌 앞두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강소휘 개인으로는 국가대표 레프트 원투 펀치(김연경과 이재영)를 꺾은 셈입니다.
“목적타 서브를 넣었는데 평소와 달리 그날 재영 언니가 좀 흔들렸어요. 제가 언니들을 넘어섰다고는 생각 안 해요. 배구는 한두 경기로 평가할 수 없고요. 그날 흥국생명 컨디션이 안 좋았고 저희한테 운도 따른 거예요.”
강소휘(180cm)는 "김연경 선수가 가진 것 가운데 키(192cm)와 볼을 다루는 감각이 가장 탐난다"고 했다. 스파이크를 때릴 때 등이 활처럼 뒤로 많이 휘는 그녀는 "홍초를 즐겨 마신다"며 웃었다.
◇김연경을 ‘털’ 수 있다면
강소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다. 경북 경산에 살다 부모가 별거하면서 경기 수원으로 전학을 간 직후였다. 또래보다 키가 큰 그녀에게 배구부 감독은 “수요일마다 간식도 주고 에버랜드에 자주 데려가겠다”고 했다. ‘손해 볼 것 없다’며 시작한 배구에 점점 재미가 붙었단다.
–깡소주, 강소위, 휘중닭, 강심장, 힘소휘 등 별명 부자더군요.
“팬들이 지어주신 ‘귀염둥휘’가 제일 좋아요. 무관중 경기는 솔직히 흥이 안 나요. 팬과 응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어요.”
–김연경이 안산 원곡중학교 10년 선배지요.
“초등학교 때부터 언니가 경기하는 모습을 TV로 많이 봤어요. ‘와, 잘한다’고 감탄만 하다 중학교 때부터 영상을 찾아보고 흉내도 내며 언니를 존경하게 됐어요. 지금 코트에서 함께 뛰는 게 꿈만 같아요.”
–왜 그녀를 존경하나요.
“연경 언니는 배구의 신이죠. 아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공격과 수비, 리시브와 승부욕 등 단점이 없으니까요. 또 해외에서 10년 넘게 뛰었잖아요. 보통 멘털이 아니면 힘들 텐데 그 강인한 정신력도 부러워요. 저는 낯선 곳에 가면 스트레스를 받곤 해요.”
–이번 시즌 끝나면 FA라 팀을 옮길 수도 있는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과 낯가림 걱정 사이에서 고민이 많이 돼요. (코트 안에서는 명랑해 보인다고 하자) 배구는 제 직업이잖아요. 기분을 업(up)시키지 않으면 경기력이 처지니까 그 일을 할 때만 그래요. 밖에 나가면 무표정하고 말도 잘 안 해요.”
–2009년 ‘김연경 배구 꿈나무 장학생 1기’였지요. 김연경이 가진 배구 능력 중 하나를 훔칠 수 있다면.
“키요(김연경은 192㎝, 강소휘는 180㎝다). 키를 빼고 선택하라면 볼을 다루는 감각입니다. 연경 언니는 배구공을 이렇게 때리면 어떻게 간다는 감각을 타고난 것 같아요.”
–김연경이 때린 앵글샷을 어떤 것은 받아내고 어떤 것은 손도 대지 못하던데.
“그게 보통 선수들은 수비가 자리 잡은 곳으로 볼이 와요. 그런데 언니는 각도를 더 깎아 네트 쪽으로 붙어서 날아옵니다. 솔직히 그럼 못 받아요. 감독님도 ‘그건 잘 때린 거니까 버려’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받아 올려도 이길 수 있어요.”
–차상현 감독은 ‘강소휘는 수비와 리시브가 부족하다’고 하더군요. 김연경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기술은.
“그래요? 저는 옛날보다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부족하지 않은 줄 알았어요. 앞으로 잘할 날만 남았으니 괜찮아요. 감독님 별명이 ‘차노스(차상현+타노스)’인데, 곰처럼 생겼지만 머리 쓰는 건 여우 같아요(웃음). 지금의 강소휘를 만드는 데 지분이 가장 큰 분이에요. 연경 언니보다 제가 낫다고 생각하는 건 서브 하나예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저만의 영역이지요.”
–지분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말인데, ‘도쿄올림픽 티켓을 확보하는 데 강소휘 지분이 20~30%’라고 말한 적 있지요?
“솔직히 그땐 지분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욕 많이 먹었고요.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주세요. 제 지분은 1~2%밖에 안 됩니다.”
강소휘는 데뷔 시즌에 받은 연봉을 어머니 아파트 사는 데 보탰다. 현재 연봉은 3억5000만원. FA를 앞둔 그녀는 "선수 생명은 짧다"며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배구도 인생도 롤러코스터
강소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점프 서브를 때렸다. 국가대표팀에서 서브로 가장 많이 득점하는 선수다. “감아 때리지 않고 밀어 때리지도 않는데 마지막에 무회전으로 날아가서 받기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의 무회전 킥과 비슷하군요.
“축구는 안 봐서 몰라요. 혼자 연습하다가 저만의 서브가 탄생했어요. 처음엔 실패한 적이 많지만 감독님이 나무라지 않아서 계속 연구한 거예요.”
–이른바 '깡'이 있지요.
“깡이 없으면 배구 오래 못해요. 공격이 블로킹에 막혀도 위축되면 안 됩니다. 저는 공을 달래는 법이 없는 파워히터예요. 강약 조절보다는 오로지 일직선으로 ‘강, 강, 강’으로 갑니다. 그런 스타일을 팬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조선족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하얼빈이 고향이래요. 힘은 엄마한테 물려받았어요. 오락실에서 펀치를 치면 9000점이 넘게 나와요. ‘애먼 데서 재능 낭비하지 마라’는 소릴 듣지요(웃음). 어머니도 저도 의리파예요.”
–어떤 딸인가요.
“완전 무뚝뚝한 큰딸입니다. 여기서는 늘 밝게 있으려고 하는데 집에만 가면 말도 안 해요. ‘엄마한테 잘해야지’ 하는데 막상 만나면 그 모양이 돼요. 그렇게 쌀쌀맞아 보여도 엄마가 필요한 물건은 펑펑 잘 사주는 ‘츤데레’ 스타일입니다(웃음).”
–배구가 마음먹은 대로 안 돼 꼴 보기 싫을 때도 있었을 텐데.
“고등학교 때 그랬어요. 시합 나가면 진주 선명여고(이재영·이다영 모교)에 늘 막히는 겁니다. 사춘기가 늦게 오는 바람에 운동하기도 싫어져 숙소에서 두세 번 도망쳤지요.”
–왜 돌아왔나요.
“배구가 스트레스를 주는 만큼 또 배구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요. 참 이상하죠. 어제는 배구가 원수 같다가도 오늘은 좋아요. 팬들과 응원하는 팀도 그런 애증의 관계 아닐까요.”
–여자 배구의 인기가 상당한데 여자 배구만이 가진 매력은?
“일단 선수들이 저마다 개성과 매력이 있어요. 남자 배구와 다른 건 랠리가 많고 역전도 곧잘 됩니다. 5점쯤은 쉽게 따라잡아요. 그런 재미겠지요. 예측불허라서 끌리는.”
–지금 여기 초등학교 배구선수가 있다고 칩시다. 배구를 좋아하긴 하는데 재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인 그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골똘히 생각하다) ‘음, 네가 진정으로 즐기지 못한다면 그만둬라. 그러나 배구가 좋아서 즐기는 거라면 계속했으면 한다.’ 프로팀에 와서 보니 진짜 배구가 좋아서 한눈 팔지 않은 사람만 남더라고요.”
이 거침없는 파워히터에게 배구와 인생의 닮은 점을 물었다. “롤러코스터”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옵니다. 굴곡이 심해요. 올라갈 때 너무 기뻐할 일도 아니고 내려올 때 너무 체념할 일도 아닙니다.”
국가대표 경기 중인 강소휘. 소속팀에서는 10번을 달고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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