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163] 질투와 시기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0.08.22 03:14
백영옥 소설가
사람은 이웃의 기쁨과 슬픔 중 어느 것에 더 잘 동화될까. 슬픔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타인의 슬픔은 아무리 나눠도 마음이 무거울 뿐 진짜 내 것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이웃의 기쁨을 진심으로 나누는 경우는 좀 더 힘들다. 가족이나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니고서는 대개 그렇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오랜 속담은 이런 인간 심리를 잘 드러낸다. 독일어에도 비슷한 단어가 있다. 샤덴프로이데가 그것인데, 고통을 뜻하는 Schaden과 기쁨을 뜻하는 Freude의 합성어이다. 사람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은밀히 즐기는 심리가 있다.
러시아 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운 좋게 마술램프를 발견한 농부가 있었다. 램프를 문지르자 램프 속 지니가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농부는 옆집에 젖소가 있는데 온 가족을 다 먹이고도 남아서 그들이 우유를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농부의 얘길 듣던 지니가 "옆집처럼 우유가 잘 나오는 젖소를 구해드릴까요?"라고 물으니 농부가 대답했다. "아니, 옆집 젖소를 죽여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속 깊은 질투와 시기심을 말해 버린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고어 비달은 "친구가 성공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는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처럼 축구에서 골을 넣은 선수는 기쁨에 환호하지만 상대편의 골키퍼는 고통으로 얼굴을 감싼다.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시기와 질투는 존재한다. 기회와 과정이 공정하다면 입시와 승진, 사업의 성공을 보며 사람들이 느끼는 샤덴프로이데의 심리를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다. 그러나 모두가 합격하고 성공해서 행복해지는 건 그저 동화의 세계일 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인간이 야박하고 세상이 비정해 보인다. 그러니 이쯤에서 불교의 무디타(Mudita)의 지혜를 말하고 싶다. 무디타는 타인의 행복을 즐기는 기쁨을 뜻한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이런 글을 남겼다. "누가 내 등잔의 심지에서 불을 붙여가도 불은 줄어들지 않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1/20200821043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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