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또 땜질 도시계획에… "성냥갑 아파트만 지으면 누가 좋아하겠냐"

최만섭 2020. 8. 7. 05:43

또 땜질 도시계획에… "성냥갑 아파트만 지으면 누가 좋아하겠냐"

조선일보

\이해인 기자

 

 

입력 2020.08.07 03:00

[부동산시장 대혼란] 님비 비난받는 마포·노원·과천 주민… "임대주택 싫다는게 아니다"

"'님비(Not In My BackYard·내 뒷마당은 안 된다)'라뇨? 이미 주변에 임대주택이 많고, 아무 문제 없이 잘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 20여 명이 ‘자국민 역차별 매국(賣國) 부동산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자국민 홀대 매국 부동산정책 NO!’ ‘세금은 임대인 몫, 권리는 임차인 몫’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외국인을 우대해 자국민을 역차별했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서울 등 수도권 추가 주택 공급 대책이 나온 지난 4일 마포구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정부가 노원구 태릉골프장, 마포구 DMC 부지, 강서구 SH 마곡부지 등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해당 지역 주민들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 부지들은 정부나 서울시가 원래 첨단 업무 시설이나 문화 공간 등을 짓겠다고 약속한 곳인데, 왜 말을 바꾸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다. 주민들은 "단순히 임대주택이 싫다는 게 아니다"라며 "빈 땅마다 교통·학교 대책 없이 집만 때려넣겠다는데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주택 수를 늘리는 데에만 급급해 교통 대책 등 장기적 계획 없이 접근하면 도시 경쟁력과 지역 주민들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사전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자리·교통·학교 대책 없이 무조건 주택 공급?

8·4 부동산 공급 대책 발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지자체,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 등에는 이에 반대하는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서울에선 상암동 DMC 부지와 서부면허시험장 등 부지에 총 6200가구 공급이 계획된 마포구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상암 DMC 부지는 서울시가 133층 초고층 빌딩을 세워 DMC(디지털미디어시티) 랜드마크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던 곳이고, 서부면허시험장 부지는 문화 시설이나 IT 업무 관련 시설을 염두에 둔 곳이다. 주민들은 "이 일대는 지금도 학교가 부족한데 6200가구를 더 지으면 학교도 지어주겠다는 건지, 그럴 만한 땅은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고 있다.

 

 

 

과천 주민들 역시 대규모 시위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정부가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한 과천 청사 일대는 현재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과천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주민들이 이 일대를 주민 공간으로 쓰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정부는 일부를 주민 체육시설 등으로 바꾸겠다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과천 주민들은 "당초 약속을 뒤엎으니 화가 나는 것"이라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4000가구 아파트를 넣는다면 어떻겠냐"고 했다.

노원구는 "이미 전체 가구 중 83%가 아파트인 과밀 지역인데 교통 대책도 없이 여기에 또 주택을 짓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조달청·국립외교원 부지에 1600가구가 들어오는 서초구와 용산 캠프킴 부지가 개발되는 용산구 등에서도 일대 교통난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강남·강북 양극화 심화 우려

이번 대책으로 강남과 강북의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공공 재건축과 공공 재개발을 통해 7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공공 재개발은 대상 지역의 80% 이상이 강북이고, 공공 재건축 역시 강남보단 강북 위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정부 공공 재건축 방안에 대해 은마아파트 등 강남권 단지들은 이미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반면, 강북에서는 일부 재건축 단지 주민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공 재개발의 경우, 정부가 밝힌 공공 재개발 후보지 176곳 중 145개가 노원·도봉·강북 등 강북 지역에 있다. 성북구 성북1재개발 구역 등은 "임대주택을 더 지어도 괜찮으니 어서 새집으로 바뀌면 좋겠다"는 분위기다. 정부는 공공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늘어나는 가구 수의 절반은 공공분양·임대로 공급한다는 계획이어서 지금도 임대주택 비율이 높은 강북권에서 임대주택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질적인 측면을 생각 하지 않고 무조건 주택 공급만 늘리는 게 정책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수요가 많은 도심에 공급을 늘리는 것 자체는 맞는 방향이지만, 일조권 침해와 교통난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양적 증가가 질적 악화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할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07/20200807000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