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양해원의 말글 탐험] [121] 누가 정말 천박한가

최만섭 2020. 7. 31. 05:47

[양해원의 말글 탐험] [121] 누가 정말 천박한가

조선일보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2020.07.31 03:14

 

양해원 글지기 대표

 

 

호수(號數)는 까먹었지, 마흔여섯 채 다 똑같지…. 이사한 날 방과 후 집을 못 찾았다. 맥없이 아파트 뒤로 가 보니 베란다에 빨래 너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 한강변 그 동네에서 보석 같은 소년기를 보냈다. 크고 작은 웅덩이에 풀도 변변히 자라지 않아 황량했던 둔치, 그나마 괜찮은 놀이터였다. 그런 아쉬움 말고는 중년이 돼 둘러보는 강변이 뿌듯하다. 녹음(綠陰) 속 숱한 공원, 쉼터만으로도 기적 아닌가. 달리 보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한강을 배를 타고 지나다 보면 무슨 아파트는 한 평에 얼마라는 설명을 쭉 해야 한다." "한강변에 아파트만 들어서 가지고…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 부동산 사업자들 선상 연찬회(硏鑽會)라도 끼었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배에서 아파트 값 얘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로 그런다 한들, 함부로 낮잡아도 되는지 궁금해졌다.

대체 '천박(淺薄)'이 뭐기에. 새삼 사전을 들췄다. '학문이나 생각 따위가 얕거나, 말이나 행동 따위가 상스러움.' 딱 떨어지지는 않지만, 혹시 집이나 재산 욕심을 말하나? 그런 거라면 천박 운운한 이가 대표인 집권당도 만만치 않다.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88명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다주택 보유자로 (중략) 민주당이 43명으로 가장 많았고 통합당은 41명이었다.' 빠질 수 없는 곳이 있다. '비서관급 이상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실거주 목적 주택 한 채 외에는 모두 처분하라는 6개월 전 노 실장의 권고를 따른 경우는 단 2명에 불과했다.'(7월 8일) 행정부라 고 질쏘냐. '경제부총리가 한 채만 빼고 처분하라 권고한 뒤 6개월 동안 이를 이행한 국무위원은 1명으로 확인됐다.'(7월 9일)

사실상 나라님이 으르다시피 한 다주택 처분령에 팔짱 끼었다. 이들부터 나무랐다면 어땠을까. 한 나라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이 집은 집대로 자리는 자리대로 탐욕 부리는데. 그런 탐욕을 권력으로 누르려 하는데. '천박'이 주인을 잃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31/20200731000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