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1.18 03:00
[아무튼, 주말-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말만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경멸합니다. 그러나 말이라도 곱게 해주는 사람에게는 스르르 넘어가지요. 진심이 가득한 순간엔 말이 필요 없습니다. 말 한마디가 빛을 내는 건 2% 부족한 진심을 메울 때입니다. 메우고 감싸고 어루만지는 말.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것도 분명히 귀한 재능이겠지요. 홍여사
사람이 늙으면 도로 아이가 되나 봅니다. 저희 시어머니는 생신이 설날 일주일 전이라, 언제나 당신 생일은 따로 챙길 것 없이 명절에 얹자고 하셨었죠. 그러던 양반이 여든 넘으시고 갑자기 달라지셨습니다. 한 달 전쯤부터 맏며느리인 저에게 날짜를 상기시키시며, 꼭 그 날짜에 생신상을 받고 싶어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게 치매 초기 증세였지요. 십 년 전, 아버님 돌아가시고 저희 집으로 오실 때에 이미 마음의 병이 싹트셨던가 봅니다. 다행히 아직 중증은 아니셔서, 멀쩡하신 날은 멀쩡하십니다. 하지만 한 번씩 증세가 도지시면 식구도 몰라보세요. 그런 분이 당신 생일은 기가 막히게 기억하십니다. 얼굴도 못 알아보실 손자며느리와 증손주까지 불러 케이크에 촛불을 불고 싶어하세요.
"미안하다. 바쁜 너를…."
"아니에요, 어머니."
큰며느리가 손자와 함께 케이크를 사 들고 들어섭니다. 너는 그냥 모른 척 있다가 명절에나 오라고 해도, 불과 15분 거리에 살면서 가만있지는 못하겠던가 봅니다. 안방에 있던 남편이 슬그머니 나오더니 며느리 인사를 받습니다. 고맙고 미안한 얼굴이지만, 별말은 없지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건 역시 동서입니다. 한달음에 달려나가 조카며느리를 얼싸안으며 등을 쓰다듬습니다. "우리 질부 왔는가? 그새 더 예뻐졌네. 참 우리 형님은 복도 많아. 요새 어디 이런 며느리가 있나요? 질부가 이렇게 착하니까 조카 일도 잘되고, 애도 잘 크는가 봐. 점심상 잘 차려놨으니까 한술 뜨고 일어서. 설거지는 내가 할게. 어디 보자, 우리 장손! 나 누군지 기억나? 네 작은 할머니야~."
동서의 한바탕 수선에 며느리는 넋이 나간 표정입니다. 아마 속으로 그러겠지요. 이 어른은 늘 좀 부담스럽다! 저는 혼자 웃습니다. 40여 년 전,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저보다 먼저 시집와서 이미 딸 하나를 낳아놓은 손아랫동서가 저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첫 대면 때부터 사람 혼이 쏙 빠지게 수선을 떨더니 만날 때마다 얼싸안고 쓰다듬으며 우리 형님, 우리 형님, 세상 듣기 좋은 말은 다 쏟아부어 주니까요. 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시부모님, 시숙 등 집안의 누구에게나 호호거리고 하하거리며 가려운 데를 긁어주듯, 듣고 싶은 말을 척척 해주는 겁니다. 너무 그러니까, 저는 오히려 좀 반대로 나가게 되더군요. 자연히 우린 극과 극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동서는 애교에 재롱 담당, 저는 부엌일과 돈 봉투 담당.
억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내가 동동거리며 상 차려놓으면 동서는 어른들께 이것 좀 드셔 보시라, 저것 좀 맛보시라 하며 살갑게 대접합니다. 수술받고 마취에서 깨는 어머님 뺨에 제 뺨을 비비며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지만, 돌아서서 병원비를 정산할 때는 뒷걸음질을 치지요. 그나마 맘껏 욕도 못하는 건, 우리 형님 최고라고 한껏 치켜세워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말로 짓고, 말로 갚는 우리 동서. 그 청산유수의 말 잔치만큼 상대방을 마음에 깊이 담아 두지는 않더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동서를 경계하고, 조금은 경멸했더랍니다.
동시에 둘째 며느리의 실체를 모르고 끔뻑 넘어가는 어머님 아버님을 서운하게도 생각했었지요. 옥석을 구분 못 하시다니, 늙으면 바보가 되나 보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장남이자 효자인 남편이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올 때도 내 맏며느리 십자가를 한탄하는 한편 통쾌한 기분도 들었답니다. 거보세요. 결국 어머님을 책임지는 사람은 저잖아요. 입으로 백날 천날 찧고 까불어봐야 다 가짜라고요.
동서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건, 제가 시어머니 입장이 돼보고 나서입니다. 며느리 둘을 연이어 들였는데, 그 둘이 거짓말처럼 저와 동서를 똑 닮았지 않겠어요. 큰아이는 말이 없고 우직했지만, 둘째 요것은 방정맞도록 말이 많고 웃음도 눈물도 많습니다. 만나면 손부터 붙잡고 흔드는 둘째에 비해, 큰애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겉돕니다. 그러나 돌아서 집에 갈 때면 큰애의 문자가 오지요. 어머니 가방 속에 제가 용돈 조금 넣어놓았어요~. 저는 큰애의 마음에 억울함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쓴답니다. 칭찬도 많이 하고, 용돈이라도 한 번 더 주지요. 오죽하면 동서가, 형님은 맏며느리를 더 예뻐하신다고 핀잔을 줄 정도로요. 그런데 말입니다. 진심을 말하자면, 둘째 며느리의 호들갑이 싫지가 않답니다. 그게 속 빈 강정인 줄을 알면서도,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늙어서 바보가 된 걸까요? 바보가 아니라 약해진 겁니다. 이젠 수선스러운 환대를 받지 않으면 쭈뼛거리고 되고, 내가 싫은 건가 싶어, 주눅이 들게 되는 나이. 속은 그렇지 않다 해도, 뻣뻣하게 대하는 사람에게선 냉기를 느끼는 나이가 된 거죠. 그러고 보면 말을 예쁘게 하는 것도 큰 재능이고 그 나름 진짜 효도인가 봅니다. 꼭 돈이 들고, 땀이 들어야 효도인가요? 타고난 재능으로 기쁨을 주는 것도 효도이지요.
지금 거실에서는 우리 둘째 며느리와의 영상통화로, 다들 야단법석입니다. 시할머님 생신 축하드린다고 한복 입힌 딸한테 노래를 시키고 있네요. 그 모습에 좋아서 어깨춤을 추는 우리 시어머니. 내 눈은 저절로 큰 며느리를 찾게 되더군요. 냉장고 옆에 붙어서서 거실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됩니다. 케이크에 봉투 들고 찾아온 나보다 멀리서 전화로 때우는 동서의 존재감이 더 두드러지는 이 묘한 상황이 딴에는 억울하겠지요.
나는 큰애에게 일부러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었습니다. 네가 애쓴다. 네 수고를 나는 안다. 음으로 양으로 네가 제일 고생이지. 그 말은 지난 사십년간 내가 어머님께 듣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해주셨다면 동서에 대한 미움도 한결 가벼웠을 텐데.
그때였습니다. 동서가 권하는 술을 한 잔 받아드신 어머님이 제 곁에 다가와 제 귓불을 당기며 귓속말을 하시네요.
"저기 저 여편네는 누구냐?"
"아유…. 어머님 둘째 며느리잖아요."
"며느리는 무슨, 아주 불여우구먼. 너도 조심해. 서방 안 뺏기게."
"네에?"
"쯧쯧…. 너는 어째 약지를 못해. 평~생~."
알고 보니 그게 치매 초기 증세였지요. 십 년 전, 아버님 돌아가시고 저희 집으로 오실 때에 이미 마음의 병이 싹트셨던가 봅니다. 다행히 아직 중증은 아니셔서, 멀쩡하신 날은 멀쩡하십니다. 하지만 한 번씩 증세가 도지시면 식구도 몰라보세요. 그런 분이 당신 생일은 기가 막히게 기억하십니다. 얼굴도 못 알아보실 손자며느리와 증손주까지 불러 케이크에 촛불을 불고 싶어하세요.
"미안하다. 바쁜 너를…."
"아니에요, 어머니."
큰며느리가 손자와 함께 케이크를 사 들고 들어섭니다. 너는 그냥 모른 척 있다가 명절에나 오라고 해도, 불과 15분 거리에 살면서 가만있지는 못하겠던가 봅니다. 안방에 있던 남편이 슬그머니 나오더니 며느리 인사를 받습니다. 고맙고 미안한 얼굴이지만, 별말은 없지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건 역시 동서입니다. 한달음에 달려나가 조카며느리를 얼싸안으며 등을 쓰다듬습니다. "우리 질부 왔는가? 그새 더 예뻐졌네. 참 우리 형님은 복도 많아. 요새 어디 이런 며느리가 있나요? 질부가 이렇게 착하니까 조카 일도 잘되고, 애도 잘 크는가 봐. 점심상 잘 차려놨으니까 한술 뜨고 일어서. 설거지는 내가 할게. 어디 보자, 우리 장손! 나 누군지 기억나? 네 작은 할머니야~."
동서의 한바탕 수선에 며느리는 넋이 나간 표정입니다. 아마 속으로 그러겠지요. 이 어른은 늘 좀 부담스럽다! 저는 혼자 웃습니다. 40여 년 전,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저보다 먼저 시집와서 이미 딸 하나를 낳아놓은 손아랫동서가 저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첫 대면 때부터 사람 혼이 쏙 빠지게 수선을 떨더니 만날 때마다 얼싸안고 쓰다듬으며 우리 형님, 우리 형님, 세상 듣기 좋은 말은 다 쏟아부어 주니까요. 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시부모님, 시숙 등 집안의 누구에게나 호호거리고 하하거리며 가려운 데를 긁어주듯, 듣고 싶은 말을 척척 해주는 겁니다. 너무 그러니까, 저는 오히려 좀 반대로 나가게 되더군요. 자연히 우린 극과 극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동서는 애교에 재롱 담당, 저는 부엌일과 돈 봉투 담당.
억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내가 동동거리며 상 차려놓으면 동서는 어른들께 이것 좀 드셔 보시라, 저것 좀 맛보시라 하며 살갑게 대접합니다. 수술받고 마취에서 깨는 어머님 뺨에 제 뺨을 비비며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지만, 돌아서서 병원비를 정산할 때는 뒷걸음질을 치지요. 그나마 맘껏 욕도 못하는 건, 우리 형님 최고라고 한껏 치켜세워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말로 짓고, 말로 갚는 우리 동서. 그 청산유수의 말 잔치만큼 상대방을 마음에 깊이 담아 두지는 않더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동서를 경계하고, 조금은 경멸했더랍니다.
동시에 둘째 며느리의 실체를 모르고 끔뻑 넘어가는 어머님 아버님을 서운하게도 생각했었지요. 옥석을 구분 못 하시다니, 늙으면 바보가 되나 보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장남이자 효자인 남편이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올 때도 내 맏며느리 십자가를 한탄하는 한편 통쾌한 기분도 들었답니다. 거보세요. 결국 어머님을 책임지는 사람은 저잖아요. 입으로 백날 천날 찧고 까불어봐야 다 가짜라고요.
동서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건, 제가 시어머니 입장이 돼보고 나서입니다. 며느리 둘을 연이어 들였는데, 그 둘이 거짓말처럼 저와 동서를 똑 닮았지 않겠어요. 큰아이는 말이 없고 우직했지만, 둘째 요것은 방정맞도록 말이 많고 웃음도 눈물도 많습니다. 만나면 손부터 붙잡고 흔드는 둘째에 비해, 큰애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겉돕니다. 그러나 돌아서 집에 갈 때면 큰애의 문자가 오지요. 어머니 가방 속에 제가 용돈 조금 넣어놓았어요~. 저는 큰애의 마음에 억울함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쓴답니다. 칭찬도 많이 하고, 용돈이라도 한 번 더 주지요. 오죽하면 동서가, 형님은 맏며느리를 더 예뻐하신다고 핀잔을 줄 정도로요. 그런데 말입니다. 진심을 말하자면, 둘째 며느리의 호들갑이 싫지가 않답니다. 그게 속 빈 강정인 줄을 알면서도,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늙어서 바보가 된 걸까요? 바보가 아니라 약해진 겁니다. 이젠 수선스러운 환대를 받지 않으면 쭈뼛거리고 되고, 내가 싫은 건가 싶어, 주눅이 들게 되는 나이. 속은 그렇지 않다 해도, 뻣뻣하게 대하는 사람에게선 냉기를 느끼는 나이가 된 거죠. 그러고 보면 말을 예쁘게 하는 것도 큰 재능이고 그 나름 진짜 효도인가 봅니다. 꼭 돈이 들고, 땀이 들어야 효도인가요? 타고난 재능으로 기쁨을 주는 것도 효도이지요.
지금 거실에서는 우리 둘째 며느리와의 영상통화로, 다들 야단법석입니다. 시할머님 생신 축하드린다고 한복 입힌 딸한테 노래를 시키고 있네요. 그 모습에 좋아서 어깨춤을 추는 우리 시어머니. 내 눈은 저절로 큰 며느리를 찾게 되더군요. 냉장고 옆에 붙어서서 거실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됩니다. 케이크에 봉투 들고 찾아온 나보다 멀리서 전화로 때우는 동서의 존재감이 더 두드러지는 이 묘한 상황이 딴에는 억울하겠지요.
나는 큰애에게 일부러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었습니다. 네가 애쓴다. 네 수고를 나는 안다. 음으로 양으로 네가 제일 고생이지. 그 말은 지난 사십년간 내가 어머님께 듣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그런
그때였습니다. 동서가 권하는 술을 한 잔 받아드신 어머님이 제 곁에 다가와 제 귓불을 당기며 귓속말을 하시네요.
"저기 저 여편네는 누구냐?"
"아유…. 어머님 둘째 며느리잖아요."
"며느리는 무슨, 아주 불여우구먼. 너도 조심해. 서방 안 뺏기게."
"네에?"
"쯧쯧…. 너는 어째 약지를 못해. 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