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朝鮮칼럼 The Column] 정년 연장보다는 폐지가 옳다

최만섭 2019. 12. 17. 20:22

[朝鮮칼럼 The Column] 정년 연장보다는 폐지가 옳다

조선일보
  •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입력 2019.12.17 03:17

육체노동자 가동연한 65세… 대법원 판단 이후 정년 연장 논의 활발
직무급·연봉제·임금피크제… 정년 연장과 묶으면 근로자에게도 이익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육체노동자의 가동 연한을 65세로 판단한 이후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로 연장하자는 논의가 힘을 받고 있다. 근로자의 가동 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끌어올린 1989년 대법원 판결이 2년 후 '정년 60세 노력'을 규정한 고령자고용촉진법과 2013년 3월 '정년 60세 의무화'를 규정한 동법 19조 개정의 촉매가 되었던 것을 감안할 때 결국은 이렇게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국민 건강 상태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고 저출산으로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도 보인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정년 연장에도 비싼 대가가 따른다. 호봉제라는 기형적 임금 제도 때문에 퇴직할 때쯤이면 취업할 때 3배 정도 임금을 받게 되는 우리나라에서 한 명의 퇴직은 청년 세 명을 고용할 여유를 의미한다. 2016년 평균 정년이 57.3세였으니 약 3년간 퇴직할 사람이 안 나가게 되면 청년 고용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것은 불문가지다.

국회의원들도 이 사실을 알았고, 19조의 2에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 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조문을 삽입했다. 우선은 연장된 기간에 30% 정도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여 청년 고용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는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성과연봉제로 바꿔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였다(국회 속기록에 나와 있다). 그런데 "하여야 한다"라고만 했지 이행 주체를 지정하지도 않았고 불이행에 대한 벌칙도 없었으니 정년 연장만 시행되고 수반되어야 할 제도 개선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정부는 근로자 동의를 받지 않고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취업규칙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 적어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촉진하려는 노력은 했다.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법에 따른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은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이므로 동의 없이 시행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지침은 이 정부 들어서 서둘러 폐지됐다.

임금체계 개편이나 임금피크제 도입을 정년 연장과 함께 묶어서 보면 불이익이 아니라 근로자에게 이익이라는 판단은 국회가 해줬어야 했다.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연봉제로 가라는 것과 정년이 연장된 기간에 임금은 30% 삭감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법에 함께 규정했어야 했다. 취업규칙을 고치지 않아서 정년이 60세 미만인 경우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또 정년에 손댄다면 65세로 연장할 것이 아니라 아예 폐지해야 한다. 우리 노동법제가 유연해 일의 난도와 성과에 따라 직무급·성과급을 주고, 월급 값을 할 가능성이 영 보이지 않으면 해고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면 정년은 필요가 없다. 대부분 나라에서는 있지도 않은 정년이라는 제도는 해고도 임금 조정도 거의 불가능한 딱딱한 법제 아래에서 '아무 이유 없이 해고해도 되는 나이'를 정해준 것이기도 하다. 정년이 근로자를 위한 것인 동시에 사용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정년 폐지 대가로는 해고의 자유가 정당한 '가격'이고, 고용은 기업의 경쟁력이 보장해 주는 것이지 노동법이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고의 자유라는 것은 노조 측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니 당장은 임금 체계 개편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또 기취업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어려우면 신규 취업자에 한해서 새로운 임금 체계를 적용하는 방식으로라도 정년을 폐지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영자들도 정부나 국회가 우리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각자가 조금씩 세상을 바꿔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경직된 임금 체계의 대명사와 같은 호봉제를 폐지한 기업이 30%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아직도 호봉제를 가지고 있는 나태한 기업의 경영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연 1회 대규모 공개 채용하는 관행을 버리고 수시로 개별 채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경직된 임금 체계를 버리고 개별 근로계약 시대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사기업 대표가 채용 비리라는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처벌받는 일이 없게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6/20191216034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