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염산폭탄 vs 저격수… 전쟁터 된 홍콩이공대

최만섭 2019. 11. 19. 05:12

염산폭탄 vs 저격수… 전쟁터 된 홍콩이공대

조선일보

경찰, 장갑차·실탄동원 진압작전
시위대 "최후의 보루 지켜낼 것"

홍콩=박수찬 특파원
홍콩=박수찬 특파원
홍콩 시위가 최후 혈전을 치르는 전쟁처럼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경찰이 시위 현장 봉쇄에 나서자 시위대 수백명은 결사 항전 태세로 맞서고 있다. 홍콩 야권은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홍콩 경찰은 18일 시위대 '최후의 보루'인 홍콩이공대를 포위했다. 시위대가 투항할 때까지 며칠이고 포위하겠다는 입장이다. 홍콩이공대를 점거하고 있는 일부 시위대는 유서까지 써놓고 경찰에 맞섰다. 실험실에 있던 화학물질이 시위대에게 탈취됐고 시위대로 추정되는 인물은 "경찰이 들어오면 염산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했다.

전날 14시간 이상 진행된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전은 이날도 계속됐다. 홍콩 경찰은 새벽 5시 30분 특공대를 투입, 교문 부근에 있던 시위대 수십 명을 연행했다. 이에 맞서 시위대는 진입로에 쌓아둔 의자와 책상에 불을 지르고, 화염병과 인화성 물질을 터뜨려 저항했다. 이날 하루 캠퍼스 곳곳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과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홍콩 현지 TV는 이 장면을 중계하며 "불바다(火海)"라고 했다.

현재 홍콩이공대 캠퍼스 안에는 600여명의 시위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해산 시도에도 용무파(勇武派)라고 하는 강성 시위대는 이날 밤도 "홍콩인 복수하자"를 외치며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경찰은 장갑차 등 중무장 진압 장비를 동원하고, 실탄 대응 방침까지 밝히며 시위대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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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겨눈 경찰… 질질 끌려가는 시위 학생 - 홍콩 시위가 전쟁의 마지막 결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18일 최후의 격전지가 된 홍콩이공대 인근에서 경찰이 총을 겨누자 놀란 시위대와 취재진이 몸을 움츠리고 있다(왼쪽 사진). 또 한쪽에선 방독면을 쓴 여성 시위자가 경찰에게 잡혀 질질 끌려가고 있다(오른쪽 사진). /AP·AFP 연합뉴스
18일 경찰이 사방을 봉쇄한 홍콩이공대 주변에서는 '염산 폭탄' '저격수' '엔드 게임(end game·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치르는 최후 결전)' '도살' 같은 전쟁 상황에서나 나올 법한 용어들이 난무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점거한 홍콩이공대 캠퍼스 둘레 1.5㎞를 봉쇄하고, 채텀로드 등 학교로 들어가는 도로도 학교 밖 수백m 지점까지 주황색 테이프를 쳐 일반인의 진·출입을 막았다. 지금까지는 시위대 지지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학교로 음식과 생필품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이제는 '보급로'가 완전히 차단됐다. 현장을 방문한 야당 의원들은 "학생과 시위대가 많이 지쳐 있다. 음식과 식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전날 밤 화염병을 던져 경찰 장갑차를 불태우는 등 격렬히 저항했다. 경찰도 이에 맞서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실탄을 최소 4발 발사했다. 17일 밤 번호판 없는 차량이 홍콩이공대 주변에 있던 경찰 쪽으로 돌진하자 경찰이 실탄 1발을 발사했고, 18일 새벽엔 경찰이 홍콩이공대 인근 지역에서 시위 참가자를 연행하는 과정에 다른 시위대가 돌로 공격하자 실탄 3발을 쐈다. 그러나 실탄에 맞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앞서 "시위대가 경찰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경우 실탄 발사를 포함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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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대, 불바다 된 캠퍼스 탈출 - 홍콩 시위가 전쟁의 최후 결전 같은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다. 마지막 격전지가 된 홍콩이공대에서 18일 방독면과 파이프로 무장한 시위대가 불길이 치솟는 캠퍼스를 탈출하려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이날 새벽 경찰 특공대는 캠퍼스에 진입하려다 시위대의 격렬한 저항으로 실패했으며, 캠퍼스 내 식량·식수 보급을 차단하며 압박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이공대 텅진광(滕錦光) 총장은 18일 아침 "캠퍼스에서 나온다면 내가 함께 경찰서까지 가서 공정한 처리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시위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홍콩 명보에 "과격한 용무파가 교내에 남아 있고, 위험 물질을 쓸 수도 있어 교내 진입 대신 이들을 격리하기로 했다"며 "투항할 때까지 8~10일간 포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돌격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도 현장에 배치됐다. "경찰이 저격수를 배치했다"는 보도(CNN)도 있었고, 실제 총을 조준하는 경찰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홍콩이공대와 인접한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막사에서 한 병사가 총에 대검을 꽂은 채 경계를 서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경찰의 압박에 맞서 시위대도 극단적 행동을 예고했다. 17일 밤에는 홍콩 시위대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시위대로 추정되는 인물이 투명한 병 사진을 올렸다. 이 사람은 '최후통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염산 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경찰은 즉시 이공대에서 철수하라"며 "그러지 않으면 경찰 막사나 경찰서에서 한바탕 도살이 이뤄질 것"이라고 썼다. 앞서 16일 홍콩이공대 대변인은 "다수 실험실이 파괴됐고, 실험실 안의 위험한 화학물질이 탈취됐다"고 발표했다. 교내에는 압축가스 용기에 볼트 수십 개를 묶어 놓은 형태의 사제폭탄 추정 물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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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홍콩이공대로 진입하는 경찰차 창밖으로 총구가 겨눠진 모습.
경찰차에서 겨눈 총구 - 18일 홍콩이공대로 진입하는 경찰차 창밖으로 총구가 겨눠진 모습. /EPA 연합뉴스
다른 시위대가 모여들면서 캠퍼스 밖 시위도 홍콩이공대 주변으로 집중되는 양상이다. 18일 정오 시위대는 대학과 가까운 침사추이 일대 도로를 대나무, 쓰레기 등으로 막았다. 침사추이 인근 지하철 조든역 주변에서도 시위대가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이들을 해산했다. 홍콩이공대 학생 대표인 오완 리는 "17일에만 최소한 3명이 최루탄 등에 눈을 다쳤고, 40여 명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심각한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등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까지 홍콩 시위를 이끌었던 야권 단체 '민간인권전선'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홍콩이 지금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해 있다"며 "홍콩 경찰이 지금까지 거의 1만 발의 최루탄을 발사했고 이 중 5분의 1이 지난주 홍콩 대학에 떨어졌다"고 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경찰을 인용해 17일 밤부터 만 하루 동안 이공대 인근에서 400명이 넘는 시위대가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시위대가 쏜 화살에 맞은 경찰을 위문하고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공대 안에 있는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며 경찰 지시에 따르라고 촉구했다. 홍콩 교육국은 지난 14일부터 시작된 초·중·고 휴교령을 19일까지 연장하고, 유치원은 24일까지 휴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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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19/20191119002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