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논설실의 뉴스 읽기] 멀쩡히 걸어 들어간 정경심, 뇌졸중·뇌경색 환자로 보기엔…

최만섭 2019. 10. 24. 05:34

[논설실의 뉴스 읽기] 멀쩡히 걸어 들어간 정경심, 뇌졸중·뇌경색 환자로 보기엔…

조선일보

조국 가족으로 본 '꾀병 세상'

김철중 논설위원
김철중 논설위원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뇌졸중과 뇌종양을 앓고 있다며 병원 입원 확인서를 검찰에 냈다. 이 확인서는 정형외과 병원에서 발급됐고, 병원과 의사 이름도 명시되지 않았으며, 검찰 조사를 받는 데 별문제가 없었기에 정 교수가 구속을 피하려 '꾀병'을 부리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조국 전 장관 동생 조권씨도 평소에 거리를 활보하다가, 검찰 구속 영장 청구를 앞두고서는 '목·허리 디스크'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이것도 칭병(稱病)으로 구속을 피하려 한다는 의혹을 낳았다.

꾀병 논란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회사 가기 싫어 감기 환자 행세하는 애교 수준부터 교통사고 보상이나 장애 판정, 병역 기피 목적으로 저지르는 범죄 수준의 꾀병까지 다양하다. 때론 실제로 병이 있음에도 꾀병 의심을 받아 처치가 늦어지기도 한다. 꾀병 세상을 들여다봤다.

◇뇌졸중·뇌종양은 꾀병?

지난주 열린 대한정형외과학회 100세 건강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정형외과 의사가 근골격계 질환만 치료하는 줄 알았는데, 요새는 뇌종양도 진단한다며 칭찬을 늘어놨다. 정경심 교수의 뇌종양 입원 확인서가 정형외과병원에서 발급된 것을 빗댄 풍자였다. 그럼 정 교수의 뇌졸중과 뇌종양은 사실일까 꾀병일까.

병이 없는 걸 있다고 허위 확인서를 낸 것이 아니라면 여러 상황을 추정할 수 있다. 일단 뇌혈관이 막혀 생기는 급성 뇌경색이나 뇌출혈은 아니다. 이 상태는 응급으로 중환자실 처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부위에 뇌경색이 최근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때도 재발이나 확산을 막기 위해 중환자에 준하는 치료를 한다. 대개 신경학적 이상 증세가 생긴다. 정 교수가 구속영장 심사에 큰 불편 없이 걸어 들어간 것으로 보아 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면 뇌 조직에 퇴행성 또는 노화성 변화로 수 밀리미터(㎜) 크기 작은 점 모양의 뇌졸중 흔적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점상(點狀) 뇌졸중이라 부른다. 고령자에게 거의 다 있다. 개수가 많을 때는 어지럼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신경학적인 증상이 없다. 치료하지 않고 경과만 살핀다.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정 교수에게 뇌졸중이 있다면 점상 뇌졸중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뇌종양은 위치와 크기에 따라 위중도가 다르다. 악성 종양인 뇌암이라면 당장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암은 아니더라도 뇌조직 안에 생긴 종양도 정밀 검사와 처치를 받는다. 뇌를 감싸는 막에도 종양이 생긴다. 뇌수막종이다. 이것으로 두통이 생기기도 하지만 뇌 MRI를 찍다 증상 없이 발견되기도 한다. 크기가 작은 경우 더 자라는지 경과만 살핀다. 호르몬 분비를 관할하는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길 수 있는데, 각종 내분비 호르몬 검사를 해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정형외과 병원에서 다룰 질병이 아니다.

◇꾀병에 흔히 동원되는 질병들


꾀병은 없는 병을 만들거나, 병이 있어도 증세를 과장하여 2차적 이득을 취하는 경우를 말한다. 두통, 현기증, 어지럼증, 시력 약화, 경추부 염좌 등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고, 주관적인 증상에 따라 병세가 좌우되는 분야에 꾀병이 주로 쓰인다. 심신 쇠약, 히스테리, 정신착란 등과 같이 환자 호소만으로 증상이 확정되는 분야에도 꾀병이 많다.

정치인들의 꾀병 풍자한 연극 ‘청문회 전야’ 올해 3월 극단 동양레퍼토리가 공연한 연극 ‘청문회 전야’ 장면.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청력, 시력 장애 등의 꾀병을 부려 청문화 추궁을 피해가는 정치 풍자극이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조중환 극작가의 희곡 ‘병자삼인’을 각색한 연극으로, 꾀병의 역사가 깊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치인들의 꾀병 풍자한 연극 ‘청문회 전야’ - 올해 3월 극단 동양레퍼토리가 공연한 연극 ‘청문회 전야’ 장면.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청력, 시력 장애 등의 꾀병을 부려 청문화 추궁을 피해가는 정치 풍자극이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조중환 극작가의 희곡 ‘병자삼인’을 각색한 연극으로, 꾀병의 역사가 깊다는 점을 보여준다. /극단 동양레퍼토리

해외 언론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병역 기피 수법이 고의적으로 환자가 되려고 작정한 꾀병 사례로 소개된다. 소변 검사 과정에서 자기 소변에 설탕 액을 뿌려 당뇨병이 있는 것처럼 하거나,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소변에 핏방울을 떨어뜨린 뒤 혈뇨를 만드는 수법 등이다. 일부러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약물을 복용해 신장병 환자 되기도 하고, 혈압을 올리는 약을 먹어서 중증 고혈압 환자로 둔갑하기도 한다. 종합병원 응급실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예전에 생긴 상처를 갖고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맞으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는 꾀병 환자들이다.

꾀병의 극단은 '뮌 하우젠 증후군'이다. 2차 이득이 없는데도, 병을 만들어 관심을 끌려는 정신질환이다. 질병 허위성 또는 질병 인위성 장애다. '허풍쟁이 남작'으로 불리는 소설 속 인물 '뮌 하우젠'에서 질병 이름을 따왔다. 이들은 질병을 새로 만들고, 이미 앓고 있는 질병도 일부러 중증인 것처럼 과장하여 입원을 반복한다. 허위로 간파당하면 또 다른 질병을 만들거나 병원을 옮겨 다시 환자 행세를 한다. 일반적인 꾀병은 고통이 따르는 검사나 시술을 꺼리지만, 이들은 심각한 환자로 보이기 위해 수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해도 한다.

◇꾀병으로 얕봤다가 질병 놓치기도

꾀병처럼 보이지만, 진짜 병이 그 안에 숨어 있을 수 있다. 월요일 아침마다 복통을 호소하는 초등학생 아이가 있다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꾀병일 수 있지만, 학교 적응장애 상태이거나, 왕따에 시달리는 경우일 수 있다. 이럴 때는 복통을 단순 꾀병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내적 갈등이 신체 증상으로 전환되는 '신체증상 장애'는 종종 꾀병으로 오인된다. 예를 들어 자식과 따로 살며 소원한 관계에 섭섭함을 느끼는 어머니가 관절통을 자식에게 자주 호소하는 경우, 흔히 자식 관심을 끌기 위한 꾀병으로 비친다. 하지만 섭섭함이 신체 증상으로 옮겨가 실제로 통증을 느끼는 경우다. 본인은 정말로 아프니 답답할 노릇이다. 대개 이런 환자들은 내과나 정형외과를 돌다가 결국 정신과를 찾아 증상 개선에 도움을 받는다.

꾀병으로 여겼다가 '진짜 질병'으로 나오면, 진단 부주의로 의료인이 역공을 당한다. 때론 의료인이 꾀병에 협조하여 보험 재정이나 공공 의료비를 축낸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과 손승현 임상교수는 "의사로서 환자 처지를 헤아리고 입장을 대변해야 하지만 사회 곳곳에 꾀병이 만연한다면, 이를 감별하느라 소모적인 의료 행위가 늘어나고, 의료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의적인 꾀병 행세로 2차적 이득을 얻을 경우 징벌을 강화하고, 꾀병을 부렸다가는 되레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감, 배탈, 디스크… 인터넷에 질병 따라 꾀병 연기 요령 줄줄이]

'꾀병 검사법' 논문도 있지만 실제로 감별해 내긴 어려워

꾀병으로 의심되는 증상이나 질병의 특징 정리 표

정황적으로 꾀병으로 보이지만, 아픈 척하는 것인지, 실제로 아픈지 의학적으로 명확히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상에는 독감·배탈 등 각종 질병에 대한 환자 연기 요령을 알려주는 꾀병 부리는 법도 나와 있다. 조국씨의 동생도 디스크 수술을 받기 위한 '모범 답안'대로 자신의 허리 통증을 설명했다가 실제 허리 상태와 큰 차이가 드러나 들통이 났다. 거액의 장애 보상금 판정이 걸린 경우, 전문가 도움을 받아 기능 장애 흉내를 내는 환자도 있다. 그러니 꾀병 감별 기술을 개발하면 노벨의학상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대개 꾀병은 ▲질병 상태나 충격 강도에 비해 증상이 과장돼 있고 ▲통증 호소가 일관되지 않고 ▲아픈 부위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를 수 있으며 ▲장애 정도가 들쭉날쭉하며 ▲의사나 판정요원과 같이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근육 움직임이 좋고 ▲경미한 범퍼 접촉 사고에 피해자가 뒷목 잡으며 차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먼저 피해 상황을 가누기보다는 통증 호소를 즉각적으로 하는 경우 등이다.

의학 학술지에는 종종 꾀병 찾아내는 검사법에 대한 연구 논문이 나온다. 이른바 꾀병 의학이다. 통증 호소의 경우 통증 차단제를 투여하여 증상 변화 여부를 체크하기
도 한다. 의사가 통증 차단제를 주사할지, 생리식염수를 주사할지를 환자가 모르게 하고, 통증 차단제 투여에 따른 환자의 통증 호소 변화나 일관성 여부를 보고 가짜 통증을 잡아내는 식이다. 기능 장애의 경우 근육신경전도 검사, 근력 측정 검사, 체열 측정 등이 이용된다.

가짜 통증이나 꾀병 증세가 오래가면 실제로 자기가 그렇게 아픈 것으로 믿는 경우도 생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4/20191024000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