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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 없는 전쟁 벌여 초토화된 일본… "인간 본성은 반복된다"

최만섭 2019. 8. 10. 09:34

승산 없는 전쟁 벌여 초토화된 일본… "인간 본성은 반복된다"

입력 2019.08.10 03:00

진주만 공격·美의 원자폭탄 투하… 日지휘부 논쟁부터 전투 상황까지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 바탕으로 일본 제국 패망 과정 상세히 서술

일본 제국 패망사

일본 제국 패망사

존 톨런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글항아리|1400쪽|5만8000원

'캘리포니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이 물음에 미국 전쟁사학자인 존 톨런드(1912~2004)는 14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로 답한다. 일본 외무성과 방위청 자료, 어전회의 및 연락회의 기록, 태평양전쟁 이전 내각을 이끈 고노에 총리의 일기, 1940년부터 4년간 일본제국 육군을 이끈 스기야마 원수의 1000쪽에 달하는 메모 등 관련 자료를 섭렵했다. 글로 적힌 기록 말고도 관계자 500여명을 인터뷰했다. 천황의 수석 고문인 궁내대신 기도 고이치 후작을 비롯한 일본 고위 관계자, 트루먼 대통령과 니미츠 해군제독을 비롯한 미국 지도자, 전쟁에 참여한 두 나라 군인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생존자 등이다. 1972년 퓰리처상을 받은 오래된 저작이지만, 일본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태평양전쟁에 대한 책 한 권을 고르라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일본 지휘부도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일이 무모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진주만 공격 넉 달 전인 1941년 8월 마지막 주 연락회의에 참석한 육군성 이와쿠로 대좌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보고했다. 철강 생산 20대1, 석유 100대1, 석탄 10대1, 비행기 5대1, 전함 2대1, 노동력 5대1의 격차였다. 종합 잠재력 격차는 10대1이라고 했다.

이 같은 경고는 기습 공격으로 짧은 기간에 전쟁을 마무리하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 사고'에 묻혀버렸다. 나가노 해군 군령부 총장은 천황을 알현한 자리에서 "일본의 석유 비축량은 2년밖에 안 되며 일단 전쟁이 나면 18개월밖에 견디지 못한다"면서도 "우리가 선수를 치는 게 좋습니다. 우리는 이길 것입니다. 지금이라면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기회가 사라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연합함대 총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도 "1년 정도면 성공할 것이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1942년 6월 6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중순양함 미쿠마가 미군 폭격기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있다. 이 해전에서 일본은 항모 4척이 침몰하고, 중순양함 2척이 침몰·손상되었으며 비행기 248대가 파괴되는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
1942년 6월 6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중순양함 미쿠마가 미군 폭격기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있다. 이 해전에서 일본은 항모 4척이 침몰하고, 중순양함 2척이 침몰·손상되었으며 비행기 248대가 파괴되는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 /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동맹국 나치 독일이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해 대승을 거둔 점도 희망 사고를 부채질했다. 나치 공군은 개전 첫 한두 시간 만에 소련 군용비행장 66곳을 폭격해 비행기 1200대를 파괴했다. 독일 지상군은 소련 진영으로 쳐들어가 대포 2000문, 전차 3000대, 화물차 2000대 분량의 탄약을 노획했다. 일본 지도부는 유럽의 동맹국이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 선제공격의 기회를 놓치면 이익을 챙기지 못할 것이란 욕심에 눈이 멀었다.

책은 태평양전쟁의 전사(前史)로서 2·26사건부터 서술한다. 1936년 2월 26일 새벽 일본 육군 초급 장교들이 이끄는 1000여명 병력이 주요 관공서를 장악하고 총리대신, 대장대신, 내대신, 시종장 등을 살해하는 쿠데타를 벌인 사건이다. '황도파' 장교들은 천황에 대한 절대 충성을 내걸고 국가를 개조하는 '쇼와 유신'을 주장했다. 반란은 곧 진압됐지만 이 사건은 천황 숭배와 군국주의적 팽창 정책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과 싱가포르 함락, 미군의 미드웨이 해전 승리와 이오섬 전투, 가미카제 특공대 출격, 오키나와 공격과 도쿄 공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와 천황의 항복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이 패망하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다. 1936년부터 1945년까지 10년간 일본 지휘부에서 벌어진 논쟁과 실제 전장(戰場)의 모습을 마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듯 생생하게 풀어냈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대화는 지어낸 것이 아니라 각종 기록, 속기록, 관계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 지휘부는 승산 없는 전쟁을 벌인 오판으로 300만명 넘는 군인과 민간인을 죽게 했고, 대대적 공습과 원폭 피해를 입으며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전후 70여년이 지나 일본은 지금 참담했던 옛 기억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반복된다 했나. 저자는 "(이 책의) 결론은 역사에서 단순한 교훈은 없으며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원제 'The Rising Sun'.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조선의 아이들

[日 광산서 일한 9세 소녀]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조선의 아이들

정혜경 지음|섬앤섬368쪽|2만원


11년간 정부 위원회에서 강제동원 피해 진상 규명 업무를 담당했던 저자는 일본에서 발표할 논문을 위해 관련 통계를 찾다가 한동안 먹먹해진 적이 있다고 한다. 강제동원 피해자로 판정한 21만여 건 가운데 최저 연령의 사망자가 일본 홋카이도 광산에서 일하다 숨졌던 만 아홉 살 소녀였기 때문이다.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 창설 당시부터 가입국이었던 일본은 자국의 아동 노동 금지 조항은 엄격하게 지켰다. 반면 조선의 아이들은 마구잡이로 동원해서 근대적 인권에 위배되는 일을 자행했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책임에 대하여

[우경화 침묵하는 日지식인]

책임에 대하여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한승동 옮김
돌베개|320쪽|1만8000원


재일(在日) 조선인 2세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東京經濟大學) 교수와 프랑스 철학을 전공한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가 진행한 대담을 묶은 책. 최근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두 저자는 "역사 수정주의라고 해야 할 반동적 캠페인이 일본 사회의 여론을 크게 바꾸었다"고 매섭게 질타한다.

냉전 붕괴 이후 한국·필리핀·인도네시아 등에서 전쟁 피해자들의 증언이 쏟아졌지만, 정작 일본 사회는 '권력적 침묵'에 빠져들었다고 자성(自省)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0/20190810001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