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2016년 1월 6일

[최보식 칼럼] 김정은은 평양에서 '빈손 귀국'을 어떻게 설명할까

최만섭 2019. 3. 1. 14:19

[최보식 칼럼] 김정은은 평양에서 '빈손 귀국'을 어떻게 설명할까

트럼프는 기자회견 뒤 하노이를 떠났고, 김정은은 예정된 일정 때문에 남아있다. 이렇게 세계적 주목을 받고서 이렇게 결렬된 정상회담은 없었다. 실무급에서 미리 다 만들어놓은 합의문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게 관례다. 회담장에서 먼저 일어선 쪽은 트럼프가 분명하다.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려 있는 트럼프는 워싱턴으로 돌아가면 '실패한 회담'으로 더 거센 공격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가 어떻게 대처할지는 관심 없다. 김정은이 하노이의 남은 일정을 소화해낼지, 제대로 잠들 수 있을지가 궁금할 뿐이다. 북한에서 '만 사람의 심장을 억세게 틀어잡는 희세의 위인'으로 칭송받는 인물 아닌가. 아마 그는 트럼프를 요리할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국내 정치 공세에 몰려 있고 공명심에 불타는 트럼프가 결국 협상을 깨지 않기 위해 양보할 것으로 봤다. 국내외 모든 전문가도 김정은의 승리를 점쳤다.

이 때문에 과거 같았으면 하노이에 도착한 뒤에야 보도될 그의 행적은 평양을 비우는 순간부터 보도됐다. 전용 열차로 66시간 타고 가는 비정상적 퍼포먼스도 벌였다. 하노이 숙소에서 연 작전 회의 장면도 보도되게 허용했다. 노동신문은 "그처럼 일일천추로 기다리던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 소식에 접한 온 나라에 더더욱 뜨거운 격정의 파도가 일렁인다. 온 나라 인민의 마음과 마음들이 우리 원수님께로, 원수님께서 계시는 먼 이국 땅으로 끝없이 달리고 있다"고 칭송했다.

이렇게 인민의 기대를 부풀려 놓았으면 김정은은 놀라운 성과를 갖고 돌아가야 했다. 경제 제재로 북한은 목 끝으로 숨이 차오른 상황까지 가 있다.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 시설 폐쇄'를 내주고 제재 완화를 받아 올 계산이었다. 그 핵 시설은 이미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냉각탑 폭파쇼'를 한 번 벌였던 곳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저것이야말로 북핵이 검증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 냉각탑은 불능화 조치의 일환으로 내열재와 증발 장치 등이 이미 제거돼 용도 폐기된 '빈껍데기'였다. 그 뒤 북한은 1년도 안 돼 영변 핵 시설을 다시 가동했다.

그 직전에 영변 핵 시설에 들어가 본 적 있는 미국 측 협상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어두컴컴한 복도와 계단, 그리고 원자로의 작업 공간은 낡아빠진 제조업 공장 시설과 같은 이미지였다. 수년 동안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더 낡아보였다.' 1985년에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5MW(메가와트)급 원자로를 가동하기 시작했으니 지금은 35년이나 된 구조물이다. 핵무기는 이미 만들어놓고 낡아빠진 시설만 이번에 높은 가격으로 또 팔아먹으려고 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어렵게 이뤄놓은 국제 제재 완화와 맞바꾸자는 것이었다.

협상은 상대가 속일 것이라는 의심을 갖고 한다. 그러나 상대가 같은 사안으로 한 번 속이고 두 번 속이고 계속 반복하도록 하면 당하는 쪽이 문제다. 과거의 실패 사례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다.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깬 것은 그런 '바보짓'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반면에 '중재자'라는 문재인 대통령은 개인 간 친목이 아니라 국가 앞날이 걸린 사안인데 김정은의 선의(善意)를 믿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모욕적인 말도 들었다. 이번 정상회담에 기대와 함께 우려가 있었던 것은 혹시 문 대통령이 개입해 '비핵화를 적정선에서 타협하도록 만들지 모른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보수 쪽 사람들을 향해 "냉전 체제에 의존해서 음해 공작을 했던 정치 세력은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얼음이 한여름에 녹듯, 얼음장을 들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 없는 정치 환경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에게도 그런 식의 비난을 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트럼프는 왜 회담이 깨졌는지 완곡한 화법으로 기자회견에서 다 밝혔다. 김정은을 치켜올리기도 했다. 이제 김정은이 평양에서 '빈손 귀국'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북한의 수법이라면 '전쟁광·제국주의자' 트럼프에게 모든 파탄의 원인을 돌려 원색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매체들은 "조미 최고 수뇌분들을 모시고 두 나라 인사들이 원탁에 친근하게 둘러앉아 화기로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대결과 반목의 악순
환을 끝장내고 새롭게 도래한 평화 번영의 시대에 부응하려는 조미 최고 수뇌분들의 드높은 열망과 진취적인 노력, 비상한 결단"이라고 보도했는데, 표변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제야 세상 경험을 제대로 했다. 하노이 숙소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과 북한의 살길이 어디로 나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을 칭송하는 세상에서 우선 빠져나와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8/20190228034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