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비중 절대적인 반도체, 주 52시간제로 꼼짝못해
R&D 분야 예외 인정 않으면 야근하는 범법자 속출할 것
![정성진 산업2부장](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2/13/2019021303266_0.jpg)
반도체가 초호황이었던 작년 삼성전자는 16조8000억원, SK하이닉스는 5조8000억원을 세금으로 냈다. 정부가 거둔 세금의 6%를 넘는다. 지난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20.9%였다. 대중(對中) 수출에서는 3분의 1을 담당했다. 한국의 주력 업종인 자동차·조선 등이 휘청거리는 가운데 유일하게 튼튼한 '원톱'이다.
그러나 정작 업계는 걱정이 많다. 우선 올해 반도체 매출과 영업이익이 작년의 반 토막 수준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초호황기는 끝났다. 중국의 추격도 거세다. 2025년까지 약 214조원을 퍼부어 반도체 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중국 반도체 업체는 틈만 나면 한국 반도체 인력을 스카우트해가고 있다. 한국과 기술 격차가 몇 년 안 난다는 말까지 나온다.
퍼펙트 스톰이 외부에서 몰려드는데, 정작 우리 반도체 업계는 내부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주 52시간제다.
반도체 경주에서 앞서는 길은 한발 앞선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다. 그런데 기술개발의 핵심인 반도체 회사의 연구·개발(R&D)직도 요즘 주 52시간만 일한다. 원래 연구·개발 등 26개 업종은 특례로 지정돼 근로시간 규제가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작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를 강행하며 연구·개발업 특례를 없앴다. 낮밤 구분이 없던 연구원들도 이젠 하루 8시간만 일할 뿐이다.
연구·개발은 몰아쳐야만 하는 시점이 있다. 특히 막판에는 제품 설계가 맞는지 틀리는지,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 점검하느라 밤을 새우는 경우가 잦다. 마감 시간 지키기가 얼마나 피를 말리는 일인지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안다. 최대 4주간 최대 208시간 동안 연속해 일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제'는 있지만, 사전 신고를 해야 한다. 급할 땐 무용지물이다. 유연한 주 52시간제에 대해 경사노위가 논의한다지만, 노동계와 사용자 측은 평행선만 긋고 있다. 한 중견 반도체 장비 업체 대표는 "요즘 직원은 주 52시간에 맞춰 일하고, 나만 토요일·일요일 다 나와서 홀로 연구한다"며 "혁신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반도체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성공의 길과도 다르다. 한국의 반도체 신화는 1983년 삼성 반도체 진출 선언 이후 36년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며 쌓아온 '압축된 축적의 시간'에 기초하고 있다. 삼성이 반도체 제1라인을 완공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6개월18일이다. 미국, 일본에서 걸린 기간의 3분의 1이었다.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는 자서전에서 "그동안 설을 포함한 모든 공휴일에도 출근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것만으로도 자신을 얻었다"고 썼다. 반도체 성능과 공장은 진화했지만,이 성공 공식은 변하지 않았다. 2000년대 반도체 부흥기 때 삼성전자 사장을 맡았던 황창규 KT 회장은 "우리는 일치단결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근면함과 집중력으로 일본 반도체를 따라잡았다"고 했다.
우리 반도체는 해외 기업과 가장 최전선에서 맞붙고 있는 선수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도 연구·개발 직군 등은 초과 근무에 제한이 없다. 일본은 주 15시간, 연간 360시간은 더 근무해도 된다. 한
지금 한국 반도체 업체가 "앞으로 3주 안에 원하는 반도체를 만들어 달라"는 고객 주문을 받는다면 두 가지 선택만 가능하다. 밤새워 개발하면서 범법자가 되거나 납품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 아래서 기업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