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사망-2018년 11월 4일

[만물상] 男子 신성일

최만섭 2018. 11. 5. 16:55

 

[만물상] 男子 신성일

입력 2018.11.05 03:16

신성일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신성일이다'라는 자존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영화계 후배들에게 늘 "돈 없어도 폼 나게 살아라. 자존심 없는 사람은 영화 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신성일 회고전이 열렸다. 작품 상영 후 관객들과 대화하는 1시간 내내 그는 의자에 앉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끝난 뒤 그는 "신성일이 '가오'가 있지, 암 걸렸다고 앉아있을 수 있느냐"고 했다.

▶정치에 입문했던 것도 "정치인은 큰 꿈을 꾸는 장부(丈夫)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러나 "누구 편에 줄서기 해야 공천받고 간까지 다 빼줘야 하니 정말 하기 싫었다. 삼류 짓이었다"며 정계를 떠났다. 뇌물 수수죄로 감옥에 다녀온 뒤엔 "군 출신들이 별 자랑을 하면 나는 '그까짓 별 몇 개가 아니라 은하수를 가진 스타였다'고 맞받아쳤는데 이제 '감옥 별'까지 얻었다"고 했다. 

[만물상] 男子 신성일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경북고 2학년 때 어느 날 집에 들이닥친 빚쟁이들이 달아난 어머니를 찾아내라며 신성일을 집단 폭행했다. 그때 그는 '이 세상은 나 혼자이며 아무도 날 돌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어머니가 늘 들려주던 일본 속담 "기회는 앞머리털이다. 왔을 때 정면으로 움켜잡으라"를 신조로 삼고 살았다. 스물두 살에 신상옥 감독이 준 '신인 배우'란 기회를 정면으로 움켜쥔 그는 한국 영화를 대중문화 영역으로 확장한 최초의 톱스타였다.

▶2011년 펴낸 자서전에서 그는 '사랑'을 고백했다. 서른세 살 때 아나운서 출신 미국 유학생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일등석에서 사랑을 나눴다는 그의 고백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비난이 쏟아지고 광고 섭외가 끊겼다. 그는 나중에 "여자의 아름다움에 나는 속수무책이다. 남자들이 말 못 할 것을 대신한 것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나는 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작년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힘이 빠져 풀 죽은 얘기 하는 걸 들으려고 왔다면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갈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에 청바지와 더블 재킷을 입고 나타나 환하게 웃었다. 그런 그가 4일 이른 새벽 조용히 떠났다. 아프거나 힘들다고 단 한 번 말하지 않았다. 그는 '맨발의 청춘'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영화 주제가처럼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살아온 사내들의 시대였다. 그 시대가 저무는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04/20181104027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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