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아마존도 한국선 사업 절반은 못해… 우린 규제 너무 많아요"

최만섭 2018. 8. 16. 10:27

"아마존도 한국선 사업 절반은 못해… 우린 규제 너무 많아요"

  • 인터뷰=차학봉 산업1부장

  • 정리=신은진 기자
  • 입력 : 2018.04.27 03:11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 인터뷰
    "선물 받은 드론, 규제 때문에 회사 강당서 날리다가 부서져"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533개사의 평균 영업이익은 28% 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경제가 참 좋아 보이죠? 속을 들여다보면 10대 그룹만 53% 성장했어요. 10대 그룹을 빼고 나면 마이너스 성장이에요."

    지난달 연임에 성공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요즘 '우리 경제 구조의 양극화'에 꽂혀 있다. 그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10대 그룹을 제외한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을 모두 다 합친 기업 매출이 11% 줄었다는 건 많은 기업이 호황을 체감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라며 여러 차례 강조했다.

    2013년 8월부터 대한상의를 이끌고 있는 박 회장은 재계와 노동계·정치권 등을 오가며 '소통의 리더십'을 보였고, 재계 맏형인 대한상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주일에 한 번씩 쪽방촌 등에서 밥 해주는 봉사 활동을 펼치는 재벌 회장으로도 유명하다.

    "10대 그룹 빼면 -11% 성장"

    박 회장은 우리 경제의 양극화 원인으로 한계에 다다른 산업 경쟁력을 꼽았다.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이른바 한계기업은 도태되고 새로운 기업은 계속 생겨나야 하는데, 지금은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계기업 연명에만 초점을 맞춰놨기 때문에 역량 강화가 이뤄지지 않고, 규제가 많아 뭔가를 새로 성장시키기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러니 잘되는 기업만 계속 잘되는 거죠."

    “남대문 나가 보면 양극화 심각하죠” 최근 연임에 성공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20일 서울 남대문 시장을 걸으며 “전체적인 경제지표는 좋지만, 10대 그룹 등 특정 계층의 쏠림 현상이 심각해 중견·중소기업·시장 등에서는 호황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은 본지 차학봉 산업1부장.
    “남대문 나가 보면 양극화 심각하죠” - 최근 연임에 성공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20일 서울 남대문 시장을 걸으며 “전체적인 경제지표는 좋지만, 10대 그룹 등 특정 계층의 쏠림 현상이 심각해 중견·중소기업·시장 등에서는 호황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은 본지 차학봉 산업1부장. /김연정 객원기자
    그는 하루 빨리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지 않으면 경제성장률이 1%대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며 답을 피했다. 대신 "집권 2년차가 되면 경제 성적표가 나온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기업이 많이 움직여야 한다"며 "지금 정부는 '어떻게 하면 기업이 성적을 더 잘 낼 수 있을까'가 최대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7월부터 최대 주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시점상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안 올라도 되는 곳은 과감하게 제외하고 소득이 낮은 곳에 집중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산입 범위는 정치적으로 고려하지 말고 원칙적으로 적용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규제 혁파 전도사

    박 회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이슈는 규제 혁파다.

    그는 청년 실업 해소,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모든 경제 문제가 규제와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우리 사회 전반에 기득권을 없애야 한다. 그게 가진 자들만의 기득권이 아니라 영세한 업자의 기득권이라고 할지라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착화된 산업 구조에선 새로운 사업이 생길 수 없다며 아마존 사례를 들었다. 아마존 등 혁신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조사했더니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은 다양한 규제에 걸려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몇 년 전 드론을 만드는 3D로보틱스 창업자 크리스 앤더슨을 만나 드론을 선물 받았지만, 도심에서는 규제로 날릴 곳을 찾기 힘들어 회사 강당에서 날리다 고장 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박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드론 창시자(크리스 앤더슨)는 알고리즘을 무상으로 인터넷에 공개했고, 이를 보고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드론 시장을 석권했다”며 “그런데 우리는 규제 때문에 드론 날릴 수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다녀야 할 정도다. 화가 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도 규제 혁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규제 혁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고 중요한데, 현 정부는 레거시(legacy·과거의 유산)가 없기 때문에 파격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서비스 산업의 규제를 없애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서비스업 비중이 70~80%인데, 우리나라는 60%도 안 됩니다. 이게 다 규제로 막아서 그런 거죠. 우리가 언제까지 제조만 하고 있겠습니까. 중국이 우리를 따라온다? 추월한다고요? 이미 저 앞에 갔습니다.”

    그는 “우리가 중국을 허덕허덕 쫓아가는 신세가 됐다”며 “힘들게 산업화를 해놓고 이게 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알코올중독자 쪽방촌 매주 봉사 활동 다니는 회장

    박 회장은 두산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두병 회장의 5남으로 2016년까지 두산그룹 회장을 지냈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다. 과감한 사업 매각과 M&A(인수·합병)로 소비재 기업이던 두산을 중공업그룹으로 변신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박 회장은 재계에서 오너이자 전문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스로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일을 열심히 많이 했다고 자평합니다. 사내에서도 전문경영인에 가깝다는 평가를 해줬습니다. 그게 제 삶의 자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 선상에 있었을 때 아버지하고 피를 나눴기 때문에 아무리 험한 과정을 거쳤고, 아무리 제가 일을 했어도 저를 바라보는 분들의 눈에는 그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오너죠.”

    박 회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 활동을 한다. 주로 서울역 부근의 쪽방촌에서 밥 해주는 봉사 활동을 펼친다.

    “한 평 반에 창문도 없는 방에서 문을 열면 썩는 냄새가 확 납니다. 대부분 알코올중독자들인데 발이 새파랗게 썩은 사람이 수도 없어요. 바로 옆 힐튼호텔에서 나도 밥을 자주 먹는데, 100m 바깥은 그런 세상이 있는 겁니다. 이분들은 경쟁의 낙오자가 아니라 우리 미숙한 체제의 희생자로 봐야 합니다. 알코올중독자인 본인 책임이라고 치부하고 모른 척하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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