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1920~1968)
주렴珠簾-구슬 따위를 꿰어 만든 발.[비슷한 말] 구슬발ㆍ주박2(珠箔)ㆍ주장12(珠帳).
귀촉도歸蜀道-두견
정원에 밀물져 왔던 봄꽃의 전위들은 이제 다 시들었습니다. 성당 시기 맹호연(孟浩然)의 유명한 시 '춘효(春曉)'의 마지막 두 구 '야래풍우성(夜來風雨聲)/화락지다소(花落知多少)'의 심정으로 매해 꽃을 보내지요. 사육신(死六臣) 성삼문(成三問)의 서늘한 초서 글씨로 된 위의 시를 본 적 있습니다.
그리고도 수백 년 후 일제 말기 지훈(芝薰)은 낙향하여 울분을, 고요하고도 찬란하게 저렇듯 토로했습니다. 혹자는
저 낙화의 핏빛을 600여 년 전 성삼문은 역사 앞에서 되새겨 읽었을 겁니다. 그로부터도 수백 년 후 극성(極盛)의 일제강점기, 밤마다 잠들 수 없던 젊은 선비가 '낙화'를 바라보던 심정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 되새겨 보는 심정도 생생합니다. 꽃에서 꽃으로 흘러오는 역사가 저러합니다. 꽃은 늘 순방향으로 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