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friday] '설렘'이라는 통로를 지나 마주하는 고통,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최만섭 2018. 2. 2. 10:15

[friday] '설렘'이라는 통로를 지나 마주하는 고통,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 이주윤·작가 입력 : 2018.02.02 04:00

[가자, 달달술집으로]

이주윤·작가
이주윤·작가

친구가 실연당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며 웃는 낯으로 손까지 흔들어 놓고서는, 그날 밤 전화로 다짜고짜 이별 통보를 했단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왜냐고 이유를 묻는 그녀에게 남자는 "그럼 건강히 잘 지내"라는 동문서답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본인이 버려진 이유를 모르겠다며 괴로워했다. 그녀가 차인 까닭은 그녀를 차버린 남자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별 사유를 내 나름대로 추측해 보자면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든지, 아니면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겠지, 뭐. 어쨌거나 석 달간의 불같은 연애 끝에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친구는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진탕 퍼마셨단다. 쓰린 배를 연신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는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세상에 널린 게 남잔데 뭐가 걱정이냐, 나는 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딴 놈 때문에 울고불고했다는 게 부끄러울 거다, 하는 뻔한 말로 그녀를 위로해주는 일뿐이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끝마다 그러게,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야,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말 한마디를 덧붙이며 고리타분함의 정점을 찍었다. "야, 시간이 약이라잖아. 힘들어도 좀 참아 봐." 그녀는 그리 해보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엷게 웃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안다. 만병통치약이라는 그놈의 시간은 더럽게도 천천히 흘러서 약발 또한 그만큼이나 더디게 듣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 이주윤

사람들은 연애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인 양 떠들어 대지만 아니, 연애는 건강에 해로운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몇 차례의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몸소 경험하고 느낀 바이다. 돈과 시간, 몸과 마음을 몽땅 쏟아부어 순간의 설렘을 즐기고 나면 정신과 육체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만이 남는다. 병원에 간다고 해서 나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저 두고두고 후유증을 겪으며 병색이 옅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므로, 그럴 수만 있다면 애초에 연애 따위 시작하지 않는 게 좋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상처받을 일 역시 생기지 않을 테니 결국에는 아픔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연애를 기피한다. 쓸데없이 아프기 싫다. 항상 건강했으면 한다.

그러나 문제는 마냥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 마음은 어디까지나 나의 것이지만 얄궂게도 그게 영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는 깍쟁이인 척을 다 하면서 친구의 연애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지만, 친구는 연애 박사의 주옥같은 강의라도 듣는 듯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나 역시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걸. 친구와 바쁘게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흘끔흘끔 쳐다본다. 도통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검은 화면을 보니 무언가 가슴에 콱 얹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그이의 목소리만 듣는다면 체증이 싹 가실 것 같은데. 내가 싫어지기라도 한 걸까?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것 봐. 역시나 연애는 건강에 해롭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