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태기 시대] [中] 이웃이 사라진다
관태기 2030들 "이웃과 친해지면 내 생활 패턴 간섭받을 것 같아"
옆집서 이사떡 돌리면 "필요없다"… 위급 대비한 연락처 교환도 거절
본지 취재팀은 이웃 간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서울 마포구·영등포구 아파트 4곳에서 주민 25명에게 "이사를 왔다"며 떡을 돌렸다. 주민들은 몇 번이나 "왜 왔느냐"고 되물었다. 4가구는 "필요 없다" "됐다"며 거절했고 3가구는 안에 인기척이 들렸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 30대 여성은 "지금까지 이웃에서 찾아오는 경우는 집 공사 때문에 입주민 동의서가 필요할 때뿐이었다"고 했다.
◇이웃에 도움 기대 안 해
지난 6월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했다. 소리에 놀란 주민 20여 명이 1층에 모였다. 한 주민이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딱 한 사람만 손을 들었다고 한다. 이 아파트 입주민(29)은 "다들 '굳이 전화번호까지 교환해야 하나' 싶은 표정이었다"고 했다.
이웃 간의 유대감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2016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위급상황 발생 시 이웃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응답은 62.4%로 10년 전(72.7%)보다 10.3%포인트 떨어졌다.
본지가 20대 이상 성인 170명을 대상으로 '옆집 사람에게 느끼는 친밀도가 어떤 사람과의 친밀도와 비슷하냐'고 설문했다. '모르는 사람'(40.2%)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배달 아르바이트생'(11.8%), '타 부서 직원'(22.5%) 정도로 생각한다는 대답도 많았다. '옆집 이웃과 교류가 있다'는 문항에는 40%만이, '옆집 사람의 연락처를 안다'는 문항에는 2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동네 반상회도 사라지는 추세이다. 서울 송파구 A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주민들이 거의 모이지 않는 데다 반상회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집도 없어 반상회 자체가 열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본지 설문조사에서 최근 1년 안에 반상회에 참여해봤다는 응답자는 8명(4.7%)에 불과했다. 경기 부천시는 올해 초 동네 반장직을 없앴다. 하겠다는 지원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인 강은주(31)씨는 "밖에서 맺는 인간관계도 피곤한데 동네에서까지 굳이 사람을 사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자주 가던 동네 분식집도 사장님이 아는 척을 하는 게 싫어 발길을 끊었다"며 "이웃과 친해지면 내 생활 패턴에 간섭할 것 같다"고 했다. 세 살 딸을 둔 이모(31)씨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내 또래 엄마들을 많이 만났지만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딱히 이웃에게 도움받을 일이 없다 보니 더 적극적으로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이웃 도움 없어도 되는 환경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이웃 도움이 없어도 대신해 줄 수 있는 상품 서비스가 많아져 이웃과 잘 지낼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예전엔 집이 비면 옆집 사람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하고 갔지만 지금은 그 기능을 보안서비스 회사가 대신한다. 자녀 교육 관련 정보는 '옆집 엄마'가 아닌 전문진로학원에서 얻는다. 육아도 정부나 업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회사·학교에서 사람을 상대하느라 지친 젊은 세대가 동네에서까지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이웃 공동체란 개념이 거의 없다"며 '마을·동네'를 하나의 필수적 공동체로 인식해 이웃과 잘 지내야 한다고 여겼던 위 세대와는 다르다"고 했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 이웃 간 얼굴을 마주칠 기회도 줄었다.
아파트 위주의 주거 환경도 이웃과의 관계 단절을 부추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