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2.08 04:00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은혜'는 무엇이고, '호의'는 무엇이며, '선의'는 또 무엇일까요? 그 의미가 무엇이든, 선의가 호의를 낳고, 호의가 은혜로 귀결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때로는 세월과 함께 깨닫게 됩니다. 선의가 바탕이 되지 않은 호의는 서로 공치사와 반발만을 남긴다는 것을요.
진짜 선의는 호의가 아닌 '배려'의 모습으로 먼저 드러나는 법임을 오늘 다시 생각해봅니다.
홍 여사 드림
며칠 전 일입니다. 회의 중에 전화벨이 울려 퍼뜩 들여다보니 '형님3'이라고 뜨더군요. 급히 벨소리를 죽이고 표정을 정리했지만, 그 뒤로는 회의에 잘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시집 식구의 전화벨은 그 소리부터가 다릅니다. 무슨 용건인지 대충 짐작할 때조차도 제 가슴을 기타줄 튕기듯 드르릉 흔들어 놓습니다. 더구나 전화를 건 사람은 손위 시누이 셋 중 막내 형님입니다. 나이는 불과 두 살 차이지만 마음의 거리는 제일 먼….
긴장한 채로 짬을 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형님은 오히려 자기가 뜻밖이라는 듯 저한테 묻습니다. 이 시간엔 바쁜 거 아냐? 통화 가능해? 나중에 얘기해도 되는데…. 들을수록 살얼음판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밑자락을 길게 까실까? 아니라고, 지금 말씀하셔도 된다고 거듭 안심을 시켜 드리고서야 형님은 진짜 말문을 열더군요.
그런데 그 내용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처음엔 둘째 형님 험담처럼 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언니가 보기와는 달리 성격이 워낙 예민해서 자매들 사이에서도 혼자 삐칠 때가 많다고요. 무어라 대꾸하기도 조심스러워, 네네, 그렇구나만 연발했죠. 그런데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엉뚱한 쪽으로 방향을 틀어 눈덩이 굴러가듯 굴러가더군요. 그렇게 소심한 형님의 여린 마음에 올케인 제가 상처를 드렸다는 겁니다.
처음엔 언니의 예민함을 탓하며 '올케 처지'에서 전후 맥락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고, 시누 올케 관계를 떠나 일곱 살이나 위인 우리 언니가 서운할 만했다 싶더라는 겁니다. 저는 가슴이 짓눌리듯 답답해 오는 걸 느끼며 형님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로 둘째 형님이 마음 상하셨다더냐고요.
문제는 김치였습니다. 저희 집은 따로 김장을 하지 않습니다. 시부모님이 드실 김치는 맏딸인 큰 형님이 조달해드리거든요. 저희 부부 역시 김치가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각자 일이 바빠 집에서 밥 먹는 일 자체가 별로 없으니까요. 친정 언니가 나눠주는 김치 한 통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거기다 우리 둘째 형님까지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김치 명인'인 본인 시어머니한테서 전수받은 김치라며 매년 한 통을 보내주셨죠.
그런데 며칠 전, 그 둘째 형님한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올해는 김치를 못 주게 생겼다는 겁니다. 힘에도 부치고, 이런저런 집안 사정도 겹쳐서 최소한의 김장만 하기로 했다고요. 매년 주던 걸 앞으로 못 주게 생겼으니 미안해서 어쩌느냐는 겁니다.
저는 당연히 무슨 그런 말씀이시냐고 했죠. 그동안 감사했다고, 그리고 저희 김치는 걱정 마시라고 했습니다. 사실 매년 김치가 남아돌았다고요. 그러나 그렇게까지 말씀드려도 영 마음을 놓지 못하고 제 김치 걱정을 계속하시기에 제가 형님에게 그랬습니다. 정 부족하면 사서라도 먹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게 다였습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형님 심기를 건드릴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막내 형님 입을 통해 되돌아온 저의 대사는 귀를 의심케 했습니다. 김치 못 줘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제가 그랬다네요. 그깟 김치, 사 먹으면 된다고요.
제 얘기를 들어보겠다던 막내 형님은 어느새 열이 올라 저를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속이 냉해도 그렇지, 힘들게 김치 담아 갖다 바친 사람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느냐고요. 그래서 저는 설명했죠. 고맙게 생각했고 고맙다 말씀드렸다. 하도 걱정하시기에, 제 딴에는 안심시켜 드리느라 사서라도 먹겠다고 한 거라고요.
그러나 형님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실이 어찌 됐든 올케는 우리 세 자매의 선의를 몰라주고 차가운 표정과 정떨어지는 말로 마음의 거리를 넓혀온 게 사실이라는 거죠. 우리 세 자매는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는데 제가 뭐라고 답하면 좋을까요?
전화를 끊고 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억울하다고, 시누이들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저는 좀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했습니다. 나는 정말 그녀들의 호의에 고마워했던가? 답은 '아니다'였습니다. 그들 말이 맞습니다. 저는 김치를 받으면서도 고마움보다는 부담이 컸습니다. 김치 못 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컸습니다. 그러니 저한테서 싸가지 없는 차가움을 느꼈다는 형님 말도 100%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나 저도 할 말은 있습니다. 제가 선의를 선의로 받지 못하는 것은 제 성격 탓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저에게 일방적 선의를 베풀고 무한한 감사를 받기를 늘 원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 본인들의 후한 인심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것을 듬뿍 안겨주죠. 그러고는 제 반응을 살핍니다. 물론 저는 빈말이라도 고맙다, 잘 쓰겠다 인사를 합니다만 그들이 기대하는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는 모양입니다. 무덤덤한 반응에 상처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궁여지책으로 답례 선물이라도 보내죠. 하지만 그들은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합니다. 이미 제 표정부터 다른 말을 하고 있다나요.
그러나 제 어색한 표정은 그들에 대한 무시나 오만함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들과 기질 자체가 다른 겁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누리고 사는 것에 여자치고 둔감한 편입니다. 김치도 그중 하나입니다. 저는 김치를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명인의 김치라니 영광이긴 한데, 사실 제 입에는 별다르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수고를 알기에 답례 봉투라도 꼭 보냈지만 서운하다는 말은 끊이지 않고 들려왔죠.
결국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감사가 아니라 상하 관계라는 걸요. 일방적으로 베푸는 위치에 그들이 서고, 제가 그 배려에 몸 둘 바를 몰라야 했습니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말하죠. 이렇게 시누이 갑질 안 하는 시누이 봤어? 시어머니 입단속 이렇게 철저히 해주는 시누이들 봤어? 퍼주기만 하는 시누이들 봤어? 그러면 저는 기꺼이 몸을 낮추고, 형님들 팔짱을 좌우로 끼며 콧소리를 했어야 합니다. 감사해요, 행복해요, 저는 무슨 복일까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못 했습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후한 인심에서 따뜻한 진심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선물이나 봉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저를 인정해주는 배려였습니다. 저를 냉정한 사람으로 그들끼리 결론지었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베풀어 주지 말고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셋이고 저는 하나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막내 형님과 통화한 걸 또 되새겨봅니다. 형님은 저의 냉정함에 십 년째 상처 받고 있다고 하지만, 저 역시 그 십 년이 꽃길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형님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나요? 올케는 아이를 안 낳아봐서 속이 차다고요. 조카 안아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아도 내색 한번 하지 않는 시누이들이 흔하냐고요. 그쯤에서 제가 말없이 전화기를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더 무슨 말을 들을지 겁이 나고, 아무 대꾸 못 하고 버벅댈 나 자신이 싫어서요. 그때 제가 형님에게 했어야 할 말을 생각해내는 데 사흘이나 걸렸네요.
형님! 상처에 젓갈 붓는 그런 말씀은 그동안의 모든 호의를 한 번에 뒤집는 말씀이에요. 앞으로는 말씀 조심해주세요. 저는 김치보다 '말씀' 한마디에 울고 웃는답니다.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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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선의는 호의가 아닌 '배려'의 모습으로 먼저 드러나는 법임을 오늘 다시 생각해봅니다.
홍 여사 드림
며칠 전 일입니다. 회의 중에 전화벨이 울려 퍼뜩 들여다보니 '형님3'이라고 뜨더군요. 급히 벨소리를 죽이고 표정을 정리했지만, 그 뒤로는 회의에 잘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시집 식구의 전화벨은 그 소리부터가 다릅니다. 무슨 용건인지 대충 짐작할 때조차도 제 가슴을 기타줄 튕기듯 드르릉 흔들어 놓습니다. 더구나 전화를 건 사람은 손위 시누이 셋 중 막내 형님입니다. 나이는 불과 두 살 차이지만 마음의 거리는 제일 먼….
긴장한 채로 짬을 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형님은 오히려 자기가 뜻밖이라는 듯 저한테 묻습니다. 이 시간엔 바쁜 거 아냐? 통화 가능해? 나중에 얘기해도 되는데…. 들을수록 살얼음판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밑자락을 길게 까실까? 아니라고, 지금 말씀하셔도 된다고 거듭 안심을 시켜 드리고서야 형님은 진짜 말문을 열더군요.
그런데 그 내용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처음엔 둘째 형님 험담처럼 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언니가 보기와는 달리 성격이 워낙 예민해서 자매들 사이에서도 혼자 삐칠 때가 많다고요. 무어라 대꾸하기도 조심스러워, 네네, 그렇구나만 연발했죠. 그런데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엉뚱한 쪽으로 방향을 틀어 눈덩이 굴러가듯 굴러가더군요. 그렇게 소심한 형님의 여린 마음에 올케인 제가 상처를 드렸다는 겁니다.
처음엔 언니의 예민함을 탓하며 '올케 처지'에서 전후 맥락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고, 시누 올케 관계를 떠나 일곱 살이나 위인 우리 언니가 서운할 만했다 싶더라는 겁니다. 저는 가슴이 짓눌리듯 답답해 오는 걸 느끼며 형님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로 둘째 형님이 마음 상하셨다더냐고요.
문제는 김치였습니다. 저희 집은 따로 김장을 하지 않습니다. 시부모님이 드실 김치는 맏딸인 큰 형님이 조달해드리거든요. 저희 부부 역시 김치가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각자 일이 바빠 집에서 밥 먹는 일 자체가 별로 없으니까요. 친정 언니가 나눠주는 김치 한 통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거기다 우리 둘째 형님까지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김치 명인'인 본인 시어머니한테서 전수받은 김치라며 매년 한 통을 보내주셨죠.
그런데 며칠 전, 그 둘째 형님한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올해는 김치를 못 주게 생겼다는 겁니다. 힘에도 부치고, 이런저런 집안 사정도 겹쳐서 최소한의 김장만 하기로 했다고요. 매년 주던 걸 앞으로 못 주게 생겼으니 미안해서 어쩌느냐는 겁니다.
저는 당연히 무슨 그런 말씀이시냐고 했죠. 그동안 감사했다고, 그리고 저희 김치는 걱정 마시라고 했습니다. 사실 매년 김치가 남아돌았다고요. 그러나 그렇게까지 말씀드려도 영 마음을 놓지 못하고 제 김치 걱정을 계속하시기에 제가 형님에게 그랬습니다. 정 부족하면 사서라도 먹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게 다였습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형님 심기를 건드릴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막내 형님 입을 통해 되돌아온 저의 대사는 귀를 의심케 했습니다. 김치 못 줘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제가 그랬다네요. 그깟 김치, 사 먹으면 된다고요.
제 얘기를 들어보겠다던 막내 형님은 어느새 열이 올라 저를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속이 냉해도 그렇지, 힘들게 김치 담아 갖다 바친 사람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느냐고요. 그래서 저는 설명했죠. 고맙게 생각했고 고맙다 말씀드렸다. 하도 걱정하시기에, 제 딴에는 안심시켜 드리느라 사서라도 먹겠다고 한 거라고요.
그러나 형님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실이 어찌 됐든 올케는 우리 세 자매의 선의를 몰라주고 차가운 표정과 정떨어지는 말로 마음의 거리를 넓혀온 게 사실이라는 거죠. 우리 세 자매는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는데 제가 뭐라고 답하면 좋을까요?
전화를 끊고 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억울하다고, 시누이들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저는 좀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했습니다. 나는 정말 그녀들의 호의에 고마워했던가? 답은 '아니다'였습니다. 그들 말이 맞습니다. 저는 김치를 받으면서도 고마움보다는 부담이 컸습니다. 김치 못 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컸습니다. 그러니 저한테서 싸가지 없는 차가움을 느꼈다는 형님 말도 100%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러나 저도 할 말은 있습니다. 제가 선의를 선의로 받지 못하는 것은 제 성격 탓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저에게 일방적 선의를 베풀고 무한한 감사를 받기를 늘 원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 본인들의 후한 인심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것을 듬뿍 안겨주죠. 그러고는 제 반응을 살핍니다. 물론 저는 빈말이라도 고맙다, 잘 쓰겠다 인사를 합니다만 그들이 기대하는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는 모양입니다. 무덤덤한 반응에 상처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궁여지책으로 답례 선물이라도 보내죠. 하지만 그들은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합니다. 이미 제 표정부터 다른 말을 하고 있다나요.
그러나 제 어색한 표정은 그들에 대한 무시나 오만함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들과 기질 자체가 다른 겁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누리고 사는 것에 여자치고 둔감한 편입니다. 김치도 그중 하나입니다. 저는 김치를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명인의 김치라니 영광이긴 한데, 사실 제 입에는 별다르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수고를 알기에 답례 봉투라도 꼭 보냈지만 서운하다는 말은 끊이지 않고 들려왔죠.
결국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감사가 아니라 상하 관계라는 걸요. 일방적으로 베푸는 위치에 그들이 서고, 제가 그 배려에 몸 둘 바를 몰라야 했습니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말하죠. 이렇게 시누이 갑질 안 하는 시누이 봤어? 시어머니 입단속 이렇게 철저히 해주는 시누이들 봤어? 퍼주기만 하는 시누이들 봤어? 그러면 저는 기꺼이 몸을 낮추고, 형님들 팔짱을 좌우로 끼며 콧소리를 했어야 합니다. 감사해요, 행복해요, 저는 무슨 복일까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못 했습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후한 인심에서 따뜻한 진심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선물이나 봉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저를 인정해주는 배려였습니다. 저를 냉정한 사람으로 그들끼리 결론지었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베풀어 주지 말고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셋이고 저는 하나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막내 형님과 통화한 걸 또 되새겨봅니다. 형님은 저의 냉정함에 십 년째 상처 받고 있다고 하지만, 저 역시 그 십 년이 꽃길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형님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나요? 올케는 아이를 안 낳아봐서 속이 차다고요. 조카 안아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아도 내색 한번 하지 않는 시누이들이 흔하냐고요. 그쯤에서 제가 말없이 전화기를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더 무슨 말을 들을지 겁이 나고, 아무 대꾸 못 하고 버벅댈 나 자신이 싫어서요. 그때 제가 형님에게 했어야 할 말을 생각해내는 데 사흘이나 걸렸네요.
형님! 상처에 젓갈 붓는 그런 말씀은 그동안의 모든 호의를 한 번에 뒤집는 말씀이에요. 앞으로는 말씀 조심해주세요. 저는 김치보다 '말씀' 한마디에 울고 웃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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