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한국노동자 돌본 요코하마 천사, 그녀의 본명은 방정옥

최만섭 2017. 12. 7. 07:01

한국노동자 돌본 요코하마 천사, 그녀의 본명은 방정옥

[80세 히라마 마사코씨, 2017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제주도 살다 일본인 선원과 결혼, 자식들 교육 위해 귀화 선택
52세때부터 28년간 헌신 이어와

일본 첫 이주노동자 보험 만들어 돈없어 치료 못받는 부상자 돕고
통역 맡아 체불임금도 받아줘… "몸 움직일 때까지 도움 주고싶어"

히라마 마사코씨
일본 요코하마의 빈민촌 고토부키초(壽町). 1990년대 비자 없이 불법 체류하던 한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곳엔 '마리아 엄마'로 불린 여성이 있다. 건설 현장 일용직이나 항만 노동 같은 막노동을 전전하던 한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해 온 히라마 마사코(平間正子·80·사진)씨다. 지난 28년간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병원 치료를 돕고, 체불 임금과 산업 재해 보상금을 받아주며 생활 통역까지 해왔다.

지난 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요코하마의 지역노동조합 가나가와시티유니온에서 집행위원으로 일하는 그를 '2017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14명의 인권상 수상자 중 유일한 외국인이다. 마리아는 천주교 세례명. 제주도에서 태어난 그의 한국 이름은 방정옥이다. 뱃사람이던 일본인 남편과의 인연으로 1962년 일본에 갔고, 1975년 자녀 교육 문제로 귀화했다.

5일 수화기 너머 히라마씨는 "상 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하터널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철근이 떨어져 어깨부터 다리까지 관통당한 사람을 봤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돕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히라마씨는 한국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서 '어머니'로 불린다. 다쳐서 병원에 갈 때, 말이 안 통해 생활의 어려움을 겪을 때 늘 손발이 돼 주었다. 당시 막노동을 하던 한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다치는 일은 빈번했다. 그러나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하소연할 곳도, 제대로 치료받을 곳도 없었다. 히라마씨는 이들을 위해 일본인 노동법 전문가인 무라야마 사토시(68) 가나가와시티유니온 위원장과 함께 백방으로 뛰었다.

요코하마에서 한국인 이주 노동자로 26년간 살아온 한우석(63)씨는 히라마씨로부터 도움받은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이주 노동자 사이에선 '아플 땐 마리아님을 찾아가라'는 말이 있다"며 "우리에게 그분은 성모 마리아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씨는 2007년 일본에서 하수도 공사 중 왼쪽 다리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회사는 산재 처리를 거부했다. 하지만 히라마씨와 무라야마 위원장의 노력으로 한씨는 2년 만에 56만엔의 보상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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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불법 체류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주 노동자들은 다쳐도 병원에 못 갔다. 크게 다치면 귀국하는 경우도 있었다. 히라마씨는 개인적으로 돕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고민은 1991년 결실을 맺었다. 지역 민간병원인 미나토마치 진료소와 연계해 일본 최초 이주 노동자를 위한 민간 의료보험인 '건강호조회'를 만든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도 매월 의료보험금 정도의 금액만 내면 이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당시 건강호조회 대표를 맡았던 히라마씨는 "덴묘 선생님(당시 미나토마치 진료소장)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며 "병원에 찾아오는 이주 노동자가 너무 많아 반년 만에 병원 적자가 2000만엔에 달했다"고 말했다. 그를 인권상 후보로 추천한 NGO 단체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관계자는 "당시 일본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에게 산재 보험이나 장애연금을 인정하는 전례가 없었다"며 "통역을 해주고 전문가를 불러 문제를 해결해주는 히라마씨의 노력 덕분에 이런 잘못된 관행들이 깨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1994년 일본에서 그의 일대기를 담은 책(한국계 일본인 마리아 엄마의 궤적을 찾아·저자 사이토 히로코)이 나오기도 했다.

주부로 살며 아들 넷을 키우던 그가 인권 활동가로 나서게 된 건 52세 이후다. 히라마씨는 "한국수미다전기 해고 노동자들을 도우면서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다. 1989년 일본 기업 수미다전기가 한국 지사인 한국수미다전기에 팩스 한 장을 보내 450여 명의 직원을 하루 만에 해고해버린 사건이다. 당시 직원 대표로 4명의 한국인 여성 노동자들이 도쿄 본사로 찾아와 8개월간 원정 농성을 벌였다. 이들 곁엔 늘 히라마씨가 있었다. 다니던 가톨릭교회 신부의 소개로 이들을 돕게 된 히라마씨는 "잠들어 있던 일본 노동조합들도 큰 충격을 받아 깨어났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잘 싸워준
아가씨들(당시 해고 노동자들) 덕분에 저도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들은 결국 사측으로부터 체불 임금과 퇴직금을 받아내는 등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냈다.

히라마씨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리는 인권상 시상식에 초청돼 한국을 방문한다. 히라마씨는 남은 소원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07/20171207002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