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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제주살이? 1년 넘게 현장서 고생했죠"

최만섭 2017. 12. 1. 10:09

"그림같은 제주살이? 1년 넘게 현장서 고생했죠"

  • 제주=진중언 기자입력 : 2017.12.01 03:00
  • ['펜션 2막' 이정교·박동은 부부]

    '은퇴 후 바다 살자' 꿈 좇아 올해 초 서귀포에 펜션 오픈
    직접 집 지으며 지역과 동화
    "넉넉잖아도 여유로움이 좋아… 근처 숲 삼림욕에 癌도 호전, 바쁜 삶 즐긴다면 추천 안 해"

    천혜의 자연환경과 따뜻한 날씨,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제주는 도시 근로자들이 은퇴지로 가장 선호하는 지역 중 하나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은 해마다 늘고 있다. 덕분에 제주 순유입 인구는 2010년 437명에서 지난해 1만4632명으로 6년 사이 33배 이상 늘었다.

    이정교(76)·박동은(71) 부부도 '은퇴하면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꿈을 좇아 제주에 왔다. 두 사람은 오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2016년 6월 제주에 정착, 올해 초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바닷가에 '오로제주'라는 펜션을 열었다. 10m만 걸어 나가면 서귀포 앞바다가 펼쳐지고, 올레길 5코스가 바로 연결되는 '그림 같은' 입지이다. 부부는 건물 2개 동(棟)을 지어 한 동에 손님용 객실 7개를 마련했다. 객실 타입은 3종류로 2명부터 최대 17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나머지 건물에서 부부와 둘째 딸이 함께 살면서 펜션을 관리·운영한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지난해 제주로 이주해 ‘오로제주’ 펜션을 운영하는 이정교(오른쪽), 박동은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일찌감치 시장조사를 해서 맞춤형 은퇴 설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지난해 제주로 이주해 ‘오로제주’ 펜션을 운영하는 이정교(오른쪽), 박동은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일찌감치 시장조사를 해서 맞춤형 은퇴 설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이씨는 "집이나 땅을 사서 정착할 생각이라면 적어도 2~3개월은 현장에서 살면서 철저한 시장조사를 해야 한다"며 "특히 교통이 중요한데, 자가운전을 하거나 대중교통의 불편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씨 부부는 본격적인 제주 정착에 앞서 1년 넘게 직접 집을 지으며 제주 생활에 녹아들었다. 2015년 초 박씨와 딸이 먼저 제주에 내려와 서귀포 인근에 임시 숙소를 마련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설계를 맡기고,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드나들고, 시공까지 모든 작업을 손수 처리했다. 박씨는 "제주가 섬이다 보니 집 짓기가 내륙보다 훨씬 품이 들더라"며 "주요 자재는 서울에서 공수해야 했고, 건설 근로자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집을 지을 때 가장 신경 쓴 것은 조망이었다. 오로제주 어느 방에서든 제주 바다를 막힘 없이 볼 수 있다. 천장을 일반 아파트보다 훨씬 높은 2.9m로 설계해 개방감이 좋다. 학창시절 연극배우나 화가가 되고 싶었다는 박씨는 "내 꿈을 물려받은 딸들과 노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가족이 펜션 운영에 힘을 보태고 있다. SBS 탤런트로 드라마 '달콤한 원수'에 출연 중인 큰딸(이진아씨)이 틈나는 대로 제주를 찾아 부모를 돕고 있다. 건물 곳곳엔 서양화가인 둘째 딸(이단비씨)의 작품이 걸려 있어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로제주 펜션의 ‘슈페리어 스튜디오’ 객실. 드넓은 제주 바다가 막힘 없이 보인다.
    오로제주 펜션의 ‘슈페리어 스튜디오’ 객실. 드넓은 제주 바다가 막힘 없이 보인다.
    올해 초 문을 연 오로제주엔 국내는 물론 해외 여행객도 많이 찾았다. 개별 여행을 온 중국 관광객을 포함해 독일·프랑스·핀란드 등 유럽 손님도 심심찮게 찾는다. 여행객이 남긴 후기(後記)엔 "경치가 환상적이다", "깨끗하고 친절하다"는 소감이 빠지지 않는다. 박씨는 "다른 서비스는 잘 모르겠고, '잠자리가 깨끗한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에 집에서 이불도 직접 만들고, 청소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펜션 운영으로 수입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제주 생활은 대만족"이라고 했다.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게 이유다. 박씨는 "제주에 집 지으러 내려오기 전에 췌장에 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올해 2월 췌장암(2기) 수술을 했다"며 "아직 항암치료 중인데 (제주) 공기가 맑고 음식이 좋아서인지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1주일에 한 번씩 서울 대형병원으로 통원 치료 중인 박씨는 "남편이 통 환자 대접을 안 해준다"며 웃었다. 남편인 이씨도 "집 주변에 소나무숲이 있어 저절로 삼림욕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약을 먹긴 하지만, 제주 생활 후 혈압이 정상 수치가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제주에서의 전원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즐겁고 행복한 일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도시생활과 다른 제주의 '여유'를 즐기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박씨는 "은퇴 후에도 친구와 어울리는 게 좋고, 분주하게 나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주 생활을 추천하지 않는다"라며 "무료하다고 생각하면 전원생활이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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