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내 처지가 짐이 될까 다가갈 수 없네요

최만섭 2017. 8. 18. 06:47

내 처지가 짐이 될까 다가갈 수 없네요

입력 : 2017.08.18 04:00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일러스트=안병현
우리는 대개 인생의 오르막길에서 동반자를 만납니다. 끌어주고 잡아주며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올라가는 게 연분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인생의 내리막에서야 짝을 찾기도 합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어두운 산길을 내려가던 두 사람. 잡아주고 끌어줄 힘이 그들에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남자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자 사이, 그들만의 작은 쉼터가 평화롭길…. 홍여사 드림

그 친구와 제가 다시 만난 건 한밤의 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저는 아픈 동생 때문에 달려들어 온 참이었죠. 선천적 장애에 지병도 있는 터라 한밤의 소동이 드물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번 가슴을 졸이며 복도를 서성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저보다 더 당황하여 쩔쩔매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70대 노인 한 분이 주사기를 뽑아 던지고 간호사에게 욕하며 소란을 피우는 통에 그 보호자가 진땀을 빼고 있더군요.

치매 노인인가 싶어 예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은 저도 치매 초기 노모를 집에 홀로 남겨두고 온 상황이었으니까요. 나도 조만간 저런 일을 겪게 될지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환자보다 보호자에게 눈길이 가더군요. 체구도 자그마한 여자분인데, 집에 다른 식구가 없나?

그러다 순간 저는 그녀 얼굴을 알아보았습니다. 제 초등학교 동창이더군요. 나고 자란 지방 도시를 떠나지 않고 살다 보니 오가다 동창들을 마주치곤 합니다. 하지만 하필 이런 상황이라니. 대리운전하러 갔다가 동창을 만났을 때의 민망함보다 마음이 더 안 좋더군요.

저는 그날 그녀를 못 본 체했습니다. 하긴 말을 건네봐야 저를 기억할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공부도 잘 못 했고, 집안 사정 때문에 기가 죽어 구석으로만 숨던 남학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비슷한 일로 두어 번 더 스친 뒤, 그녀가 먼저 알은체를 하더군요. "너, 누구누구 맞지? 어쩜, 그때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 그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온 그녀는 자기 얘기 또한 스스럼없이 털어놓았습니다. 학원 강사와 과외 일을 하며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는데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치매가 부쩍 심해지셨다고요.

안된 마음에 제가 물었습니다. 언니 오빠들 있지 않았나? 그러자 그녀가 대답하더군요. "다들 일찌감치 결혼하고 나만 아직이네."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 응원하며 친구로 지내왔습니다. 둘 다 사는 게 고달파 따로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지만 마음의 의지가 되기엔 충분했습니다. 그 친구는 저더러 아깝다고 말합니다. 신체 건강한 남자가 평범하지 않은 가족을 돌보느라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한 것을 말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친구가 백배는 더 아깝습니다. 어릴 때 공부를 아주 잘했거든요. 1등 아니면 2등. 뒷받침만 잘 받았더라면 의사든 판사든 뭐든 됐을 사람인데…. 그런데 역시 공부 잘한 사람은 뭘 해도 잘하는 걸까요? 저는 그저 의무로, 건성으로 하는 병시중을 그 친구는 연구를 해가며, 웃으며 하는 겁니다.

존경한다고 제가 그랬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털어놓더군요. 겉으로 웃지만 속은 골병들었다고요.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운데도 밤이 되면 잠을 못 자는 불면증이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조언이랍시고, 나처럼 밤에 술을 한잔씩 하고 자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리더군요. 술은 그렇게 마시면 안 된다고, 기분 좋게 사람들과 어울려서 마시라고요.

하도 정색하기에 조심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저도 알고 그 친구도 압니다. 무슨 좋은 기분으로 누구와 어울려 술을 마실까요?

우린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친구로 십여 년을 서로 지켜봐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지요. 못해 드린 기억만 난다고 우는 친구를 보며 솔직히 저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친구가 활개를 펴고 자기 삶을 살 수 있겠다 싶어서요.

하지만 친구 말은 달랐습니다. 아버지 가시고 사는 게 더 막막하다고 합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다고요. 오죽했으면 그 친구가 저에게, 이참에 우리도 남들처럼 결혼이라는 걸 한번 해볼까 묻더군요.

하지만 저는 싫다고 했습니다. 이제 너는 너를 위해 살라고 했습니다. 예쁘게 화장이나 하고, 맛있는 거나 먹고, 세상 구경이나 하며 살라고요. 나는 아직 숙제가 남아서 친구랑 놀지를 못한다고요. 그 말에 긍정인지 이해인지 모를 아리송한 웃음을 짓던 그녀.

그런 대화가 오가고도 우리는 어색함 없이 여전히 친구로 지냅니다. 친구는 요즘 살이 찐다고 걱정합니다. 몸이 편해지니 죄스러울 정도로 입맛이 난다고요. "너도 쉬어보면 알 거야, 네 몸이 얼마나 쉬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저에게 오지랖 넓은 소리를 또 합니다. 가족들을 자기가 맡아줄 테니 며칠 여행을 다녀오랍니다. 치매 노인은 자기가 전문이라며….

그 말에 제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병시중도 중독이니? 좀 쉬니까 그리워?" 그러나 친구는 저의 모진 말에 화도 내지 않고 쿨하게 답합니다. "어, 중독인가 봐."

참으로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병원에서 다시 봤을 때만 해도 아가씬가 아줌만가 했는데, 언제 이렇게 잔주름이 퍼졌을까요? 내 모습 역시 마흔 몇일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겠지요.

마음으로 이해하고 진심으로 걱정하면서도 무엇 하나 거들 수 없는 우리 인연. 가까이 다가가면 짐만 얹어주게 되는 제 처지가 너무 싫습니다. 다음 생엔 병원 말고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로 만나 다른 얘기를 나누며 오래 벗할 수 있길….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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