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조

[경제포커스] 대기업 노조 임금협상에 중소기업이 떠는 이유

최만섭 2017. 5. 2. 08:12

[경제포커스] 대기업 노조 임금협상에 중소기업이 떠는 이유

입력 : 2017.05.02 03:07

조형래 산업2부장
조형래 산업2부장
매년 5월쯤 대기업 자동차 기업들이 임금 협상에 들어가면 중소 협력업체들이 바짝 긴장한다. 올해처럼 완성차 대기업의 실적이 부진한 때는 더 불안해한다. 대기업이 노조의 힘에 밀려 임금을 올려주고 나면 그 여파가 고스란히 중소 협력업체들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말이면 어김없이 대기업에서 원가 절감을 이유로 협력업체의 납품 단가 삭감을 요구하고 나선다. 이어 2차, 3차, 4차 협력업체로 납품 단가 깎기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다.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대기업 납품에 목을 맨 중소 제조업체들이 전체의 47%나 된다. 한 중소기업인은 "대기업들이 노조에는 꼼짝 못 하고 납품 업체만 쥐어짠다"면서 "매년 이런 식이니 중소기업은 직원들 임금을 올려주고 싶어도 올려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내부 혁신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자조(自嘲)한다.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더라도 수익을 많이 냈다는 게 알려지면 다음 해 납품 단가가 대폭 깎이기 일쑤이다. 대기업들은 경영 컨설팅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협력업체들의 경영지표를 손금 보듯 꿰뚫고 있다. 경북 지역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없는 돈을 투자해 공정 자동화를 하면 대기업이 공정 평가를 이유로 생산라인을 샅샅이 훑어보고는 다른 경쟁 협력업체에 알려준다"면서 "심지어 혁신 제품을 개발하면 다른 부품 업체들에 알려주고 비슷한 제품을 만들게 해서 입찰 경쟁을 붙이기도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대기업의 중소기업 줄 세우기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관행이다. 중소 납품 업체들은 기존 거래가 끊길 것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다른 대기업과 거래를 틀 수 없다. 반도체나 LCD·자동차 등 첨단 업종은 물론이고 땅콩 같은 견과류조차도 대기업 한 곳에만 납품해야 한다. 중소기업인들은 이런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의 보쉬 같은 세계적인 부품 업체가 절대로 나올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우리 경제의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대기업은 대규모 투자를 해도 고용이 많이 늘지 않는 장치산업 위주인 데다 그나마도 생산기지를 대거 해외로 옮겨 국내 일자리 창출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게다가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20년 전 대기업의 80% 수준에서 지금은 60%에도 못 미치니 20~30대 젊은이들은 중소기업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하나같이 중소기업 육성책을 내걸고 있지만 중소기업인들은 의외로 냉소적이다. 본지가 중소기업중앙회와 실시한 공동조사에서도 중소기업인들의 80% 이상이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왜 그럴까? 중소기업인들은 "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달라고 했지, 언제 우리가 대기업을 마구 때려서 반(反)기업 정서만 부추기라고 했느냐"라고 반문한다.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는 규제를 만들어 기업인들의 경영권을 옥죄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 강성 노조 등쌀에 밀려 임금을 올려주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협력업체에 전가하는 관행을 없애달라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1/20170501020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