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4.20 03:04
[전례없는 野野대결… 정치색 같은 사람끼리도 '전쟁']
野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文·安 지지자들 연일 비방戰
특정후보 비판 글 올리면 '신고', 곧장 강제탈퇴 시키는 등 '숙청'
"말 안 통하는 사람들 안볼래" 페이스북 친구 끊기도 빈발
동창 최모씨가 페이스북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글들을 올린 게 발단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정씨는 최씨에게 "네가 올린 문재인 지지 글이 내 페이스북을 도배하고 있다"며 "적당히 좀 해라"라고 했다.
최씨는 "내가 내 페이스북에 글 쓰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며 맞받았다. 흥분한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문베충(문재인+일베충)' '안슬림(안철수+무슬림)'이라 비하하며 욕설을 했다. 한 시간 넘게 지속된 말다툼은 다른 동창이 "오랜만에 모였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며 맥주잔을 탁자에 내리쳐 깨면서 어색하게 끝났다. 동창 한모(28)씨는 "불과 두 달 전까지 함께 어깨동무하고 촛불 집회에 나갔던 친구들끼리 대선 지지 후보를 놓고 이렇게 싸우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이 전례 없는 야야(野野) 대결 양상을 보이면서, 정치적 성향이 같았던 사람들끼리 갈등을 빚는 '대선 불화(不和)'가 나타나고 있다. 비슷한 연령대나 같은 지역 출신 등 그동안 같은 투표 성향을 보였던 사람들이 누구를 지지하느냐를 두고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 안성시에 사는 주부 김모(여·57)씨는 최근 8년간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과 갈라섰다. 모두 지난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을 지지했는데, 문재인 후보가 선출된 뒤 의견이 상충된 것이다. 김씨는 "이재명이 못 돼 아쉽지만 그래도 문재인을 찍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웃 박모(여·60)씨는 "이재명을 꺾은 문재인을 지지할 수 없다. 차라리 안철수를 찍겠다"고 맞섰다.
과거 대선에서도 지지 후보를 둘러싼 편 가르기는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달라진 것은 과거 '같은 편'이었던 집단 내에서 분화(分化)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 66%는 문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안 후보 지지자도 23%나 됐다. '보수' 응답자의 48%는 안 후보를 지지했지만, 문 후보 지지도 17%로 적지 않았다. 영남·호남에서 두 후보는 각각 지지율 25~48%를 기록했다. 어느 쪽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연령별로도 특정 후보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모든 연령·지역·계층에 각기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과거 대선에서 뚜렷한 야권 성향을 보였던 초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는 연일 문·안 후보 지지자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양쪽 지지자들이 서로 지지 후보를 치켜세우고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글을 경쟁적으로 올리면서 전체 게시물의 30% 이상이 대선 관련 글로 채워지고 있다. 한쪽이 우세하게 된 곳에서는 반대쪽에 대한 '숙청'도 벌어진다. 대학생 이모(21)씨는 평소 활동해 오던 패션 전문 커뮤니티 '디젤매니아'에 안 후보 비판 글을 올렸다가 '신고' 수백 건을 받고 쫓겨났다. 반면 문 후보 지지 성향 커뮤니티에서는 문 후보 비판 글을 쓴 회원이 강제 탈퇴를 당했다.
페이스북 친구처럼 온라인으로 친구 맺기를 한 사람들끼리도 갈라지고 있다. 이모(30)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