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인문의 향연] 행복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최만섭 2017. 3. 20. 16:40

[인문의 향연] 행복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아내는 "수집벽 남편과 못 살겠다" 남편은 "박물관 만드는 꿈 이룰 것"
버리지 못해 다투는 부부 사연에 법정 스님 '무소유' 삶 떠올려
정치권은 적폐 청산 외치지만 정말 행복하려면 뭘 버려야 하나

권지예 소설가
권지예 소설가
"이번엔 정말 정리해야겠어!"

J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나는 처음엔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그녀의 단골 푸념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 봄맞이 대청소 하면서 정리해."

"아니! 갈라설 거야."

아니 남편의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남편을 버리겠다는 소린가?

J는 흥분해서 떠들었다.

"진작 그랬어야 했는데. 신혼 때 냉장고에 빈틈없이 꽉꽉 채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가 '당신은 정신병자야'라고 했더니 길길이 날뛰더라. 저장강박증도 정신병이라잖아. 그랬더니 K가 X발, X발, 욕하면서 나더러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시발비용(홧김에 쓰는 푼돈)이라도 팍팍 쓰라'고 소리치더라. 근데 나 도무지 갖고 싶은 물건도 없고 즐기는 것도 없으니 내 인생, 정말 억울하고 분해. 새봄에 원룸 하나 얻어서 나갈 거야. 꼭 필요한 물건은 캐리어 두 개에만 넣어서 물건들로 숨 막히는 집에서 나올 거야."

J와 K는 오래된 맞벌이 부부다. 남편 K는 다정하지만 수집벽이 지나친 사람이다. 그들의 집은 방이 다섯 개나 되는 큰 아파트지만 컬렉션한 그림과 오래된 가구와 많은 책과 공예품, 도자기, 그릇, 수십 년 된 각종 버리지 못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K는 매주 황학동 벼룩시장에 나가 온갖 물건을 수집해 온다. 그래서 J는 제 손으로 찻잔 하나를 사볼 기회도 못 갖고 살았다. 남편의 DNA를 물려받은 딸이 직장을 다니며 '시발비용'으로 저지른 만행도 만만치 않았다. 시집가며 방 안 가득 옷들과 물건들을 남겨 두고 갔다.

그런데 업무 때문에 J가 몇 달간 해외에 있다 돌아오니 K는 거실 소파에서 쭈그리고 자고 있었다. K의 방과 군대 간 아들의 빈방과 부엌에 물건이 가득했다. J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아이들도 이제 다 떠나면 큰집도 필요 없으니 버릴 건 다 버리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자고 달랜 지 오래. 하지만 K의 더 오랜 꿈은 작은 박물관을 만드는 것. K는 평생 자신이 버는 돈으로 원하는 물건을 사며 행복해했고, J는 그런 남편을 보며 불안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했다. 그런 J에게 K는 땅을 사달라고 조른다고.

부부의 이야기가 심각하게 느껴진다. K가 소유한 물건들은 K를 거실 소파로 추방했다. 결국 J도 쫓아내려고 한다. J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자신에게 정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소중한 것을 위해 나머지는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미니멀리스트라고 정의한다. '미니멀리스트 붓다의 정리법'을 쓴 레기나 퇴터는 미니멀리즘의 원형을 붓다에게서 찾고 그를 비우기와 정리의 달인으로 본다. 불교의 근본 교리인 사성제(四聖諦)는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하는데, 모든 고통의 원인이 집착과 욕망에 있다고 본다. 그러니 물건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버리면 자연히 마음도 비울 수 있게 되어 홀가분한 행복이 깃든다고 한다.

이들보다 먼저 붓다의 가르침대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 작가로 7년 전 이맘때 입적(入寂)하신 법정 스님이 생각난다. 맑고 향기로운 무소유의 삶을 살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주신 분. 1972년에 쓴 수필 '무소유'에는 그가 3년간 애지중지하며 집착했던 난초 화분을 떠나보내며 얽매임에서 벗어
나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때부터 그는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다.

장미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마다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버려야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니 행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품은 몇 가지나 될까? 장미전쟁을 치르고 있는 J를 떠올리며 만약 나라면 캐리어에 무엇을 담을지 잠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