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2.22 03:17
미르·K스포츠재단과 민정수석 의혹을 들여다보던
특별감찰관실을 무력화시킨 정권 실세들이야말로
박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내몬 주범들이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 의혹이 터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줄곧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최순실은 '소소하게 심부름해주고 그냥 충실히 도와준 사람'이었을 뿐이고 최씨가 사익(私益)을 추구한 부분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주변 관리에 소홀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불찰'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매주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갖고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서 사적으로 단 한 푼이라도 챙긴 게 있느냐"며 박 대통령의 무죄(無罪)를 주장하고 있다. 얼마 전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처럼 언론의 일방적 의혹 보도로 탄핵 찬성 여론이 80%에 이르는 상황에서 헌재(憲裁)가 탄핵 결정을 내린다면 억울한 누명(陋名)의 희생자가 됐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2012년 대선 직전 박 대통령과 했던 인터뷰를 떠올리게 된다. 그날 박 대통령은 중앙선관위에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등록했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 내내 차분한 어조였다. 그런 박 대통령이 딱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집권하면 친·인척과 측근 비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서였다. 박 대통령은 이 질문 자체를 자신에 대한 불신 내지는 부당한 공격으로 여긴 듯했다. 격앙된 목소리로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누구보다 측근 비리 방지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해 대선에선 친·인척과 측근의 발호를 막기 위한 특별감찰관 신설 공약도 내놨다. 이에 따라 초대 특별감찰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지난해 여름 '국기(國基) 문란 사범'으로 내몰린 끝에 물러난 이석수 전 감찰관이다.
이 전 감찰관은 검찰 출신이다. 검사 시절부터 모나지 않은 성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특별감찰관 업무도 요란하지 않게 다뤄왔다. 야당 등으로부터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는 질책성 추궁을 받았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 그가 졸지에 반(反)국가 사범이 된 것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감찰에 착수하면서다.
이 전 감찰관은 우 전 수석과 각별한 사이다. 우 전 수석이 같은 대학, 같은 과 후배다. 둘은 검사 시절 지방 지청에서 함께 근무했다. 둘 사이가 갈라진 것은 지난해 7월이다. 조선일보가 우 전 수석 처가의 강남역 땅 거래 의혹을 처음 보도한 이후 우 전 수석과 관련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 전 수석에 대한 감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가 직무 유기이고 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정상적인 법 집행을 하는 이 전 감찰관을 쫓아냈다. 본지 취재 기자와 통화한 것을 '감찰 내용 누설'이자 '국기 문란 행위'라고 몰아붙였다. 누설이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의 내용에 이런 엄청난 죄를 갖다 붙인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전 감찰관은 그 직전에 안종범 당시 청와대 수석이 미르·K스포츠재단을 세우면서 대기업들에 출연을 요구한 것을 조사했다. 최순실 일당이 사익 추구의 놀이터로 삼았던 두 재단 설립 문제를 들여다본 것이다. 이 사실은 이 전 감찰관이 물러난 이후 드러났다.
이 정권은 이 전 감찰관을 쫓아낸 데 이어 그가 임명한 감찰담당관 6명 전원에게 사표를 요구했다. 특별감찰관실이 일체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정권 차원에서 작심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인사혁신처와 법무부까지 동원됐다. 먼저 예산을 끊었다. 월급도 안 나왔고 한때 사무실 전기까지 끊어졌다고 한다. 5개 정부기관에서 파견된 공무원 16명 중 13명이 결재권자가 없어서 원래 소속 부처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대기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젠 되돌릴 수 없게 돼 버렸지만 지난해 여름 특별감찰관실이 제대로 감찰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들로 하여금 현직 청와대 수석이 발벗고 나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을 들여다보게 했다면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는 극단적 사태는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감찰을 통해 최씨 일당의 비위를 적발하고 사법 심판에 세웠다면 또 한 번 권력형 비리가 터진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대통령이 당장의 고통과 힘든 시간을 감내하기로 작정하고 권력 주변의 의혹에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면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반대의 길을 갔다. 특별감찰관실을 공격하는 우 전 수석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렇게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