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동서남북] 5500곳 가축 무덤, '환경 부메랑' 된다

최만섭 2017. 2. 20. 07:47

[동서남북] 5500곳 가축 무덤, '환경 부메랑' 된다

입력 : 2017.02.20 03:14

박은호 사회정책부 차장
박은호 사회정책부 차장

이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오리 등 가금류 3314만 마리가 살(殺)처분됐다고 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방역 통계를 보니 2008~2017년까지 10년간 구제역과 AI 두 가축 감염병으로 살처분된 가축만 7200만 마리가 넘는다. 매일 2만 마리씩 애꿎게 죽어간 셈이다. 이 중 348만 마리 소·돼지가 2010~2011년 구제역으로, 나머지 6900만 마리 가금류가 AI로 사라졌다.

구제역과 AI는 '1급 가축 감염병'이다. AI는 사람에게까지 옮을 수 있는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이기도 하다. 철저한 방역이 최선이다. 발병하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가축 이동을 중지하고 살처분하도록 법에 규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AI와 구제역의 발생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AI는 2~3년, 구제역은 이보다 더 긴 주기로 발생하다 2014년부터는 둘 다 매년 발생한다. 사실상 토착화했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가축이 살처분되고 그에 따른 환경 부담이 커질 것에 대비해야 한다.

수백 마리 소, 수천 마리 돼지, 수만 마리 닭을 하천 주변이든 지하수 인접한 곳이든 가리지 않고 파묻는 방식이 특히 문제다. 6년 전 구제역 사태 때는 생매장 사례도 많았다. 바닥에 깐 비닐이 발톱 등에 찢겨나가면 땅과 지하수가 필연적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다. 2010~2011년 구제역 사태로 조성된 매몰지만 전국에 4500여 곳, 올해 AI 매몰지까지 합하면 최근 10년간 5500여 곳 매몰지가 전국에 산재해 있다.

이 매몰지들이 과연 안전한지 궁금해 한국원자력연구원 유승호 공학환경연구부장에게 물었더니 경악할 만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2010~2011년 구제역 사태가 끝나고 난 뒤 2012년 11월에 땅을 파고 돼지 6마리를 묻었다고 한다. 지하 5m 깊이에 사체를 묻고 비닐을 까는 등 정부 매뉴얼을 따랐다. 구제역 매몰지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증 연구에 나선 것이다.

4년 넘게 매몰지를 관찰해온 유 부장은 "(동물 사체가 썩어 땅속에 고여 있다가 흘러나오는) 침출수를 2~3주 간격으로 측정했는데 지금도 500mL~1L까지 새나온다"고 했다. 사체가 아직 분해되지 않은 것이다. 전국 4500곳 구제역 매몰지도 사정이 다를 리 없다.

4500곳 구제역 매몰지는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관리 대상에서는 벗어나 있다. 현행법에 매몰 이후 3년, 길게는 5년간만 발굴 또는 이용을 금지하고 있어서다. 그렇긴 해도 환경 당국은 당장 매몰지 주변 환경 조사에 나서야 한다. 경기도에 조성된 2227곳 매몰지 가운데 1273곳(57%)은 이미 논이나 밭 경작지로 전환(2015년 감사원 감사 결과)돼 버렸다. 사체가 채 분해되지 않 은 매몰지에서 자랐을 수 있는 농작물이 유통될 가능성이 있지만 정부 어느 기관도 이를 체크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전염병이 생기면 살처분해 땅에 파묻는 현행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6년 전 구제역 사태 당시 정부와 정치권은 멸균 분해, 소각 등 대안적 방식을 너나없이 떠들었지만 달라진 게 없다. 환경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너무 근시안적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19/20170219017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