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독일 도피 중이던 최순실씨와 127차례나 차명폰으로 통화했다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밝혔다. 15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청와대 압수수색영장 집행 불승인처분 집행정지 신청 재판에서다. 지난해 4월18일부터 10월26일까지로 기간을 넓히면 모두 570차례나 통화했다니 하루 평균 3차례 이상 통화한 셈이다.
두 사람은 특검에 의해 국정농단을 주도한 ‘공범’으로 지목된 상태다. 차명폰은 숨길 게 많은 사람들, 특히 범죄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두 사람은 국정농단을 모의하거나, 증거를 없애는 등 떳떳지 못한 일을 상의하기 위해 차명폰을 이용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최씨에 대해 “한때 도움을 줬던 ‘민간인’일 뿐”이고, 재단 등을 이용해 “사익을 취한 사실은 몰랐다”고 발뺌해왔다. 그의 이런 태도는 극우보수세력이 “최순실에게 속은 불쌍한 대통령”이라며 탄핵반대 집회에 나서는 한 동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호성 전 비서관의 녹취파일과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은 물론 관련자들의 법정 증언을 통해 대통령의 변명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두 사람이 하루에도 여러차례 차명폰으로 통화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국정농단과 비리의 공범이자 한통속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유력한 증거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마치 최씨의 심부름꾼처럼 정유라 친구네 사업을 챙겨주고, 최씨 기치료사 아들 취직까지 관여한 것도 이 때문 아니겠는가.
자기가 그간 해온 말이 새빨간 거짓이었음이 증거와 증언으로 속속 드러나자 특검의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탄핵심판도 지연시키며 막무가내로 저항하고 있다. 그러면서 장외에서는 거짓 주장을 앞세워 태극기 시위대를 부추기고 있으니 참으로 뻔뻔하고 철면피한 대통령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박근혜-최순실 일파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가며 국정농단을 모의하고 실행한 핵심적인 범행 장소다. 이들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극구 거부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청와대 내 범행 증거물의 가치와 중요성을 웅변해준다.
청와대는 군사상 비밀 운운하며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있으나 형사소송법은 분명히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아니면 거부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정당하게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되지 못하는 상황을 방치한다면 법원 스스로 형사 절차의 흠결을 인정하는 커다란 과오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