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소추-2016·12·9 표결

"惡緣이라면 그렇고… 박 대통령과 '배신'이란 말 나올 관계 아닌데"

최만섭 2017. 2. 6. 09:07

[최보식이 만난 사람] "惡緣이라면 그렇고… 박 대통령과 '배신'이란 말 나올 관계 아닌데"

입력 : 2017.02.06 03:06

['보수 비토' 받는 保守 후보… 유승민 의원 심경 토로]

"박근혜 지지층의 비토, 내게는 최고의 난관…
그 數가 많다면 정치적으로 나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 그 검찰 공소장 읽어보니
탄핵에 안 나설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확실히 '배신자' 돼"

"악연(惡緣)이라면 그렇고, 사실 박 대통령과는 '배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될 관계가 아닌데…."

말을 차분하게 이어가던 유승민(59) 의원은 이 지점에서 흔들렸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그를 막고 있는 것은 '박근혜'라는 장벽이다.

"전통 보수라는 박근혜 지지층의 비토가 내게는 최고의 난관이다. 대통령 탄핵 이후 내 휴대폰에서 안 읽은 문자가 2만7367개 쌓여 있다. 시간이 되면 다 읽어보려고 하지만, 전체 국민 중 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 많으면 나는 대선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살아남는 것도 어려울 거다."

유승민 의원은 “내게 ‘스킨십이 없다’ ‘까칠하다’고 하지만 사실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은 “내게 ‘스킨십이 없다’ ‘까칠하다’고 하지만 사실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역설적으로 유 의원을 대선주자 반열에 올려놓은 것도 박 대통령이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측면은 있다. 재작년 내가 원내대표로서 '공무원 연금개혁'을 협상했다. 야당이 '국회법 조항 수정' 요구를 들고 왔다. 위헌이 아니었다. 받아줄 수 있다고 봤다. 여야가 합의한 개혁이라면 100점짜리가 아니고 50, 70점이라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며 나를 쳤다. 여야 협상 과정에서 법 하나 통과시킨 게 배신의 정치인가. 그 박 대통령이 이제는 '공무원 연금개혁'을 자신의 최고 치적으로 꼽고 있다."

―박 대통령도 감정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청와대 얼라들'이라며 마치 대통령을 낮춰보는 듯한 발언도 했는데?

"2014년 가을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공식 간담회에서 말씀자료를 배포했다. 그 안에 '대한민국은 중국에 경도된 게 아니다'라는 구절이 들어 있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 외교의 민감한 이슈였다. 뒤늦게 문제가 될 것 같자 현장에서 이 구절을 빼고 다시 배포했다. 어떻게 일을 이렇게 하나. 국회 외통위에서 이 문제를 따진 것이다. 외교부가 아닌 청와대의 작품이었다. 내 표현이 좀 잘못됐는지 모르나 청와대 비서관들을 나무란 것이다. 그게 마치 대통령을 낮춰보는 것처럼 됐다."

―원내대표 국회 연설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지 않았나?

"두 달 전 김무성 대표가 거의 비슷한 내용의 연설을 이미 국회에서 했다. 내가 하니까 대통령을 들이받는 것처럼 보도됐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수십 년째 보수당의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보수당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안보(安保)에는 확고해야 하고, 경제나 민생 등에서는 진보적인 측면을 수용해야 한다. 이는 내 정치적 소신이다."

―형식이 문제다. 국회 연설에서 공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맞는가?

"대통령에게 대들겠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오래전부터 내가 해오던 얘기였다. 2011년 내가 전당대회에 나갔을 때의 출마선언문이나 원내대표 연설의 내용이 비슷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거수기가 아닌데, 당에서 해보려는 그 정도의 변화도 용납이 안 되는가."

―"누구 덕에 국회의원 됐나"라며 유 의원에게 인간적인 도리를 따졌는데?

"'박 대통령의 은혜를 입어 국회의원 된 사람이 배신할 수 있나'하는데…, 2004년 '대구 동구을' 재보선에 노무현의 측근인 이강철(전 정무수석)이 나오자 한나라당에서는 '대구의 심장이 뚫린다'며 비상이 걸렸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추천으로 비례대표가 된 나를 차출했다. 비례대표직을 버리고 당(黨)의 명령에 따랐다. 선거 기간 박 대표가 서너 번 내려왔다. 당대표의 의무이지만, 내가 도움을 받았다면 받은 거다. 그러나 2006년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내가 박 후보를 위해 공격의 최전선에 있었다. 내 돈 써가면서 박근혜를 후보로 만들려고 했다.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도와드렸다. 그때 스트레스로 이빨이 많이 빠졌다."

―당시에는 박근혜에 대해 '청렴' '깨끗' '원칙' 같은 단어로 칭찬했지 않나?

"그의 정책적 능력은 부족했지만 그런 덕목은 있다고 그때는 봤다. 가까이에서 3년 돕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지 않나. 경선 과정에서 특히 정치·정책적 판단력에 문제가 많다는 걸 느꼈다. 나는 할 말을 하는 성격이고 안 받아들여졌다. 불화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경선 과정이었기에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 실망해 멀어진 지가 오래됐다."

―멀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2008년 총선에서 친이계가 친박계를 공천 학살했다. 내가 '대표님께서 나서서 당신을 도왔던 의원들의 정치적 목숨을 지켜줘야 한다'고 했지만 사태를 방치했다. 그런 리더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대선 때 내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선대위 부위원장에 이름만 올려놓고는 활동하지 않았다."

―최순실씨에 대해 묻겠다.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10개월 했으니 최순실 존재를 알았을 텐데?

"전혀 몰랐다. 최태민·정윤회씨와의 관계가 담긴 '국정원 보고서'를 본 적은 있다. 정윤회씨가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만들어놓고 '3인방'과 회의를 한다는 걸 알고는, 3인방을 당사에 정위치시켰다. 당시 최순실 얘기는 없었다. 최순실 소문이 난 것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였다. 청와대에 몰래 드나든다는 말이 정가에 떠돌았다."

최보식 선임기자와 유승민 의원 사진
―'최순실 사태'가 난 뒤로 박 대통령의 처신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이 사태를 보는 두 개의 관점이 있다. 국민이 보는 관점과 법률 전문가들이 보는 관점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도 저도 아니다. 시간을 끌면서 검찰 조사는 안 받고 기자간담회와 인터넷방송 인터뷰를 통해 지지 세력을 규합해 국론 분열로 끌고 간다. 독특한 방어 기제다. 대통령이 감동을 주는 진실 고백과 사과를 했으면 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섰는데?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내가 주도했다. 흔들리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탄핵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확실히 '배신자' 낙인이 찍혔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겠지만 잘 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탄핵에 앞장선 것은 시세(時勢)에 편승한 것이 아닌가?

"언론 보도나 여론, 촛불집회를 보고 그랬던 게 아니다. '대통령이 사실상 지시 공모했다'는 검찰 공소장을 읽어보니 탄핵에 안 나설 수 없었다. 검찰총장과 검찰 수뇌부는 '대통령 사람'이다. 김기춘, 우병우가 임명에 관여했지 않나. 그런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이었다. 이런 혐의가 있다면 탄핵밖에 없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탄핵에 흔들린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판에도 '의리'라는 게 있지 않나?

"탄핵을 당할 이유가 있는 대통령을 감싸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의리다. 이 문제로 내가 정치적 피해와 불이익을 본다면 감수하겠다."

―본인이 중시하는 삶의 가치는?

"나도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다만 나는 옳고 그름의 시비를 가려왔다. 살아오면서 부당하게 압력을 가하는 사람들의 결정에는 저항했다."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것에 대해서도 '기회주의자의 처신'이라는데?

"탈당할 때 그런 비난을 예상했고 감수했다. 새누리당에 남아서 마지막까지 해보려고 했다. 알다시피 이정현 등 당 지도부는 대통령 한 명을 보호하기 위해 당은 망가져도 좋다는 식으로 버텼다. 낡고 부패한 체질을 바꾸지 않고 거수기 노릇을 계속 하는 게 옳은가. 변화와 개혁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보수의 중심'이라며 남아 있어야 했나."

―대구에서 유 의원 화형식(火刑式)이 벌어졌다. 한번 찍힌 '낙인'을 지우기란 쉽지 않은데?

"박사모가 내 사무실 앞에서 사진과 현수막을 찢고 불태운 적이 있다. 설 연휴 동대구역에서 3시간 인사를 해보니까 나이 든 분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유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에서 이렇게 박대당하면 대선은 어려운 게 아닌가?

"쉽지 않다고 본다.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지지자들은 나를 100% 비토한다. 또 내가 진보에 가깝다고 보고 불안하게 여긴다. 하지만 나는 보수를 떠날 수 없는 사람이다. 보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박 대통령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전통 보수 진영에서는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마음이 기울고 있는데?

"보수 정권 10년에 대해 민심은 싸늘하다. 최순실 사태까지 터졌으니 절대 불리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 지지층의 일부가 황 대행을 지지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본선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그가 출마할 경우 보수의 분열을 낳을 것이다."

―지지율로 보면 유 의원은 군소(群小) 후보밖에 안 된다.

"그렇다. 하지만 '보수 후보로 누가 적합하냐?'고 물으면 1, 2위로 나온다."

―지지율을 끌어올릴 방안이 있나?

"계기는 오는 거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헌재(憲裁)의 판결은 예정된 계기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소용돌이칠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이뤄지면 박 대통령 지지자들도 다음 대통령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후보 중에서 상대평가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은 '정권 교체'가 화두가 될 것이다. 유 의원은 '인물론'을 내세우는데, 다른 후보들보다 차별화되는 게 있나?

"정권 교체만 하면 되나? 국민의 분노에 올라타 정권을 바꾸기만 하면 되나? 그러면 '제2의 박근혜'를 뽑게 된다. 다음 대통령은 나라를 잘 이끌어갈 거냐,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거냐를 봐야 한다. 나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20년 전 IMF 위기를 보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경제와 안보 위기 극복에 역할을 하고 싶다. 저성장·저출산·양극화 문제에서도 그 해법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유 의원에게는 '카리스마'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라는 게 이미지가 좌우하는데, 사실 나는 강한 사람이다. 일을 해야 할 때 결단 을 내리면 밀고 나간다."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이라는 말도 하던데?

"내게 '스킨십이 없다' '까칠하다'고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친구가 많고 활달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나는 앞장서서 싸웠던 투사였다."

그는 "아픈 부분을 많이 건드려 내가 열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걸 못 느꼈다. 공정한 기회를 위해 다른 주목할 만한 대선주자들도 만나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5/20170205016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