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감자, 火星 식민지의 첫 추수감사절 음식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감자, 火星 식민지의 첫 추수감사절 음식

•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 2016.12.20 03:07

페루 티티카카서 시작된 감자 재배, 유럽 식량난 풀어 산업혁명 뒷받침
DNA 분석서 7000년 전 재배 확인… 고대 잉카 석기서 녹말 입자 나와
北美로 전해져 추수감사절 식단에… 화성 식민지용 우주 작물로 인기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하늘에서 환웅이 내려와 터를 잡은 백두산이 우리 역사의 발원지라면, 페루인에게는 해발 3812m 하늘 바로 아래 티티카카 호수가 성지(聖地)이다. 잉카 신화에서는 창조의 신 비라코차의 아들 망코 카팍과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마마 오크요가 이곳에서 태어나 잉카문명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티티카카 호수는 잉카인만이 아니라 전 지구인에게 문명의 영양분을 제공한 태반과 같은 곳일지 모른다. 전 세계 사람들을 먹여 살린 감자가 이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감자의 발원지는 먼저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2005년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과학자들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야생종을 비롯해 총 359종의 감자 DNA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생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DNA에 돌연변이가 생긴다. 그렇다면 돌연변이가 적은 생물이 시조(始祖)에 가까운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7000년 전 페루 남부에서 처음으로 감자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고고학적인 증거도 나왔다. 머시드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지난달 PNAS에 기원전 3400년 전 제작된 고대 석기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페루 남부 티티카카 분지에서 발굴한 석기를 물에 담그고 초음파를 쏘자 미세 구멍들에 박혀 있던 녹말 입자가 빠져나왔다. 연구진은 석기 14개에서 채취한 녹말 입자 141개 중 59개가 오늘날 경작되는 감자와 같았다고 밝혔다.

감자는 티티카카 호수 지역이 수렵·채집 사회에서 유목·농경 사회로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녹말 입자들이 발견된 석기가 만들어졌을 때 이 지역에서 복잡한 계급사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당시 지배계급이 썼던 것으로 보이는 금제 목걸이 같은 장신구들이 발굴됐다.

/이철원 기자

감자는 16세기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에 의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유럽으로 전해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감자는 1㎥의 물을 공급할 때 5600칼로리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는 밀보다 2.4배, 쌀보다 2.8배나 된다. 소수 지배계급을 빼고는 늘 굶주리던 유럽인은 감자 덕분에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었다. 인구가 크게 늘었다. 가축 생산량도 급증했다. 감자가 주식이 되면서 보리나 귀리를 가축 사료로 썼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겨울에 먹일 사료가 없어 늦가을이면 돼지를 모두 도축해 염장했다. 역사학자들은 감자가 식량 문제를 해결하면서 유럽의 산업혁명이 가능했다고 본다.

감자는 식민지 개척에 나선 유럽인을 따라 다시 북미(北美)로 전해졌다. 북미는 페루의 윗동네였지만 유럽 식민지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감자가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땅에 첫발을 디딘 순례자들이 1621년 첫 수확을 하고 맞은 가을 추수감사절 때만 해도 감자 요리는 없었다. 으깬 감자가 추수감사절 식단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1800년대의 일이다. 감자는 특히 미국에 아일랜드 이민자가 대거 유입된 1850년대 이후 추수감사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됐다.

유럽에 전해진 감자는 아일랜드인에게 축복이었다. 수확한 곡식 대부분을 영국인 지주에게 빼앗기고 나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감자가 배고픔을 해결해줬다. 감자 덕에 1754년 320만명이던 아일랜드 인구는 1845년 820만명으로 늘어났다. 축복과 재앙은 종종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1845~1852년 감자마름병이 아일랜드를 강타했다. 이 병으로 감자가 사라지자 100만명이 굶어 죽고 200만명이 식량을 찾아 영국과 미국으로 떠났다. 1850년대 아일랜드 인구는 대기근 이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이국(異國)에서 맞는 가난한 추수감사절에 감자만큼 아일랜드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음식이 있었을까.

이제 감자는 지구 밖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작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마션'에서는 화성에 홀로 남은 식물학자가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성 토양으로 감자를 재배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의 감자 재배에 대비해 올 1월부터 국제감자센터 페루 지부에서 현지 연구진과 공동으로 감자 1000종을 재배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40종은 페루 안데스산맥에서 자라는 자연산이고 나머지는 극한 환경에 잘 견디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종들이었다. 흙도 화성과 비슷한 페루 사막의 것을 이용했다. 지구에 이어 화성에서도 꽃필지 모를 인류 문명의 씨앗이 감자에 담겨 있는 셈이다. 화성에서 맞는 첫 추수감사절에도 감자가 오를 게 확실해 보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9/20161219028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