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제도

6년간 장애인 친구의 손발, 大入 문 열다

최만섭 2016. 12. 17. 06:58

6년간 장애인 친구의 손발, 大入 문 열다

입력 : 2016.12.17 03:02

뇌병변 친구 도운 김예환양, 내신·수능 성적 안보는 한양대 수시전형 합격

대학측 "성적없이 뽑은 학생들, 他전형 학생들보다 평점 높아"
전체 정원 37%까지 선발 늘려

지난 11월 말 경기 수원시 숙지고등학교에 한양대 입학사정관 2명이 찾아와 교사들을 면담했다. 한양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 지원한 이 학교 3학년 김예환(17)양의 '학생부' 내용이 실제로 맞는지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입학사정관들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김양에게는 통보되지 않았다. 김양의 학생부에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교 생활 내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친구를 헌신적으로 도왔고 봉사 시간이 200시간이 넘는다'고 적혀있었다. 김양의 담임교사 오은(33)씨는 입학사정관과 면담에서 "예환이는 뇌병변 장애가 있는 친구와 다른 반임에도 학교 외부 활동이 있을 때면 미리 답사를 가서 엘리베이터와 언덕 높낮이를 미리 알아봤다"며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줄 알며, 진짜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면담 10여일이 지난 6일 김양은 15.5:1의 경쟁률을 뚫고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합격 통보를 받았다.

숙지고 3학년 김예환(오른쪽·17)양이 지난 15일 교정에서 휠체어를 탄 최주희(18)양과 활짝 웃고 있다.
숙지고 3학년 김예환(오른쪽·17)양이 지난 15일 교정에서 휠체어를 탄 최주희(18)양과 활짝 웃고 있다. 김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6년간 뇌병변 장애를 가진 최양을 헌신적으로 도왔고, 이 같은 사실이 적힌 학생부 평가를 바탕으로 최근 한양대에 합격했다. /조인원 기자
사실 김양의 수능이나 내신 성적은 '인서울(서울 4년제 주요 대학에 합격하는 것)'에 도전할 만큼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양대에 지원한 것은 이 대학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신입생을 뽑을 때 교과 성적(내신)을 전혀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양대는 각 과목 교사들이 학생의 수업 태도와 성취도 등에 대해 서술한 '세부 능력 특기 사항', 담임 교사가 쓴 '행동 특성 종합 의견'같은 비교과 영역만 보고 학생을 뽑는다. 수능 성적도 보지 않고 자기소개서 같은 서류 전형과 면접·논술 시험도 없다. 서울의 주요 대학 가운데 이런 입시제도를 갖고 있는 곳은 한양대가 유일하다.

충남 예산의 삽교고에 다니는 최혜민(18)양도 이 전형으로 한양대 기계공학부에 합격했다. 최양은 예산군 청소년 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가로등 부족 문제를 제기해 지역 곳곳에 가로등이 설치되도록 만들었다. 또 작년 충남 중·고교 '학생 대표 300인 원탁토론회'에 참가해 네팔 지진 구호 성금 모금을 제안해 1억5000만원을 모으기도 했다. 국제 구호단체에서 후원자와 후원 아동의 편지를 번역하는 봉사를 475시간 하기도 했다.

최양의 담임교사는 학교를 찾아온 입학사정관들에게 "혜민이에게 고3 때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봉사 활동을 줄이라고 조언했더니 '봉사 활동 가서 함께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다시 찾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꾸준히 봉사를 했다"고 말했다. 합격 후 최양은 "'시골 학교'에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많이 했는데, 고교 생활을 충실히 했는지만을 보고 뽑아줘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한양대가 2015학년도 입시부터 이런 선발 방식을 도입할 때 일선 고교와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성적 없이 뽑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반응이 나왔다. '내신이 불리한 특목고 학생을 많이 뽑기 위한 전형'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 전형 도입 전인 2014년 수시 신입생의 17.99%였던 특목고 출신 비율은 2015년 14.34%, 2016년 13.49%로 되레 줄었다. 한양대는 매년 학생부로만 뽑는 인원을 50여명씩 늘려 이번 2017학년도 입시에서는 전체 정원(2809명)의 37%인 1061명을 이 전형으로 뽑았다.

"성적을 보지 않으면 신입생들의 학력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도 약해지고 있다. 국중대 한양대 입학총괄팀장은 "성적 없이 뽑은 학생들의 입학 후 성적을 분석했더니 지난 2015년 1 학기와 2016년 1학기 평균 평점이 여타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보다 높았다"고 말했다.

3년간 신입생 평가에 참여한 오성수 행정학과 교수는 "등수나 점수보다는 여러 교사가 오랜 기간 지켜본 결과를 학생부에 서술한 내용이 학생의 학업 능력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지표"라며 "비교과 학생부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대학들이 늘어나면 공교육도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7/20161217000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