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양적 완화 논쟁… 韓銀 위상 높일 좋은 기회
중앙은행 독립은 발권력을 국가 경제 살리기에 썼을 때 국민이 주는 선물… 정권과 싸워 얻는 전리품 아냐
한국은행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RB)의 폴 볼커 전 의장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앙은행 독립을 지켰다는 인물이다. 대통령과 당당하게 싸웠고, 국회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엔 언제쯤 그런 줏대 있고, 그래서 강한 총재가 나오겠느냐고 아쉬워한다.
고금리 정책과 통화 긴축은 정치의 적이다. 레이건 대통령이라고 볼커의 고금리 정책이 달가울 리 없었다. 금리를 내리라고 계속 압박을 넣다가 급기야 FRB 이사진을 하나둘 교체했다.
1982년 3월 어느 날 드디어 쿠데타가 발생했다. 레이건과 친한 이사들이 다수결 투표로 금리 인하를 결의했다. 볼커에 반기를 든 것이다. 볼커는 백악관에 사표를 제출하며 저항했다. 결국 오후에 다시 회의가 열린 끝에 오전의 결정을 번복했다.
한국판 양적 완화를 놓고 한국은행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볼커가 그리운 모양이다. 대통령에 사표로 맞서는 투쟁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이들은 양적 완화란 금리를 내릴 때까지 내려본 뒤에나 해보는 위험한 막장 도박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들은 볼커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볼커는 백악관과 대립하면서도 뒤로는 협상을 끊지 않았다. 쿠데타가 발생한 날도 금리 인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돌연 사퇴하면 국제금융시장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조금만 더 인내하면 레이건의 정책이 빛을 낼 것이라고 설득했다. 백악관이 스스로 쿠데타를 취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우리 경제는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다. 해운·조선 업종에선 응급 수술을 간청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판이 바뀌었다. 여소야대 국회는 '절묘한 민심 표출' '협치(協治)하라는 지엄한 명령'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치가 경제를 끌고 갈 힘을 잃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경제팀은 벌써 부실 쓰레기 처리 같은 혐오 노동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세 조각으로 갈라진 국회는 서로 책임을 미루거나 엉뚱한 합의로 정책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기에 십상일 것이다. 정치권의 지적(知的) 수준이 우리 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양적 완화 논쟁은 한국은행에는 중앙은행의 위상(位相)을 높일 좋은 기회다. 정치권과 대화하며 발언권을 얼마든지 강화할 수 있다. 정부나 국회가 경제를 끌고 가지 못하는 국면에서 한국은행이 나설 찬스를 맞은 것이다.
볼커의 고금리 정책은 인플레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고금리로 인해 좀비 기업과 한계산업이 정리됐다.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한국을 비롯 중국, 동남아로 옮겼다. 미국에는 IT·금융 등이 새로운 효자 산업으로 등장했다. 그는 대통령·의회와 다투고 타협하면서 산업을 재편하고 경제를 살렸던 것이다.
볼커는 중앙은행의 입장만 앞세우지 않고 나라 전체를 보았다. 그는 재정 지출을 늘리고 싶어 하는 정치를 꿰뚫어 보고 견제했다. 그러면서도 일본·독일 제품과 경쟁할 수 없었던 제조업에 변신하라고 압박했다. 미국 7위 은행이 도산하려 할 때는 주저 없이 구제금융을 내주며 정치권과 타협했다.
볼커와 100시간 인터뷰 끝에 나온 볼커 전기(傳記·William Silber)가 있다. 거기에는 볼커가 대통령, 정치권과 대립하면서도 타협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어가는 과정이 정리돼 있다. 그는 중앙은행도 독립적인 존재지만 대통령 역시 독립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특히 다수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과는 적대관계가 되기보다는 같은 편이 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뚜렷했다고 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고민 끝에 구조조정에 힘을 보태겠다고 나왔다. 하지만 "옜다, 이것 먹고 끝내라"며 몇 푼 던져주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산업 전체는 물론 나라 경제의 미래까지 보며 진두지휘하겠다는 포부를 펼쳐야 할 때가 왔다. 대통령·국회와 밀고 당기며 볼커식(式) 행보를 해야 할 시기를 맞은 것이다.
정계가 재편되지 않는 한 적어도 앞으로 4년의 한국 정치는 혼돈의 시대를 걸을 것이다. 대선에서 누가 이겨도 여소야대 판도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 정부는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면서도 책임질 총사령관이 나서지 않은 채 우물쭈물하고 있다. 정부 기능이 슬슬 마비돼 가는 조짐이다. 정치마저 혼선을 거듭하면 한국은행의 역할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던 시대와 결별해야 한다. 발권력은 국가 경제를 살리는 데 쓰면 누구도 시비 걸 수 없다. 중앙은행 독립은 대통령과 다투고 정권에 저항한다고 해서 확보되는 게 아니다. 나라 경제를 살려내면 바로 그때 국민이 박수 치며 주는 선물이 한국은행 독립이다.
고금리 정책과 통화 긴축은 정치의 적이다. 레이건 대통령이라고 볼커의 고금리 정책이 달가울 리 없었다. 금리를 내리라고 계속 압박을 넣다가 급기야 FRB 이사진을 하나둘 교체했다.
1982년 3월 어느 날 드디어 쿠데타가 발생했다. 레이건과 친한 이사들이 다수결 투표로 금리 인하를 결의했다. 볼커에 반기를 든 것이다. 볼커는 백악관에 사표를 제출하며 저항했다. 결국 오후에 다시 회의가 열린 끝에 오전의 결정을 번복했다.
한국판 양적 완화를 놓고 한국은행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볼커가 그리운 모양이다. 대통령에 사표로 맞서는 투쟁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이들은 양적 완화란 금리를 내릴 때까지 내려본 뒤에나 해보는 위험한 막장 도박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들은 볼커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볼커는 백악관과 대립하면서도 뒤로는 협상을 끊지 않았다. 쿠데타가 발생한 날도 금리 인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돌연 사퇴하면 국제금융시장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조금만 더 인내하면 레이건의 정책이 빛을 낼 것이라고 설득했다. 백악관이 스스로 쿠데타를 취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우리 경제는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다. 해운·조선 업종에선 응급 수술을 간청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판이 바뀌었다. 여소야대 국회는 '절묘한 민심 표출' '협치(協治)하라는 지엄한 명령'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치가 경제를 끌고 갈 힘을 잃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경제팀은 벌써 부실 쓰레기 처리 같은 혐오 노동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세 조각으로 갈라진 국회는 서로 책임을 미루거나 엉뚱한 합의로 정책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기에 십상일 것이다. 정치권의 지적(知的) 수준이 우리 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양적 완화 논쟁은 한국은행에는 중앙은행의 위상(位相)을 높일 좋은 기회다. 정치권과 대화하며 발언권을 얼마든지 강화할 수 있다. 정부나 국회가 경제를 끌고 가지 못하는 국면에서 한국은행이 나설 찬스를 맞은 것이다.
볼커의 고금리 정책은 인플레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고금리로 인해 좀비 기업과 한계산업이 정리됐다.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한국을 비롯 중국, 동남아로 옮겼다. 미국에는 IT·금융 등이 새로운 효자 산업으로 등장했다. 그는 대통령·의회와 다투고 타협하면서 산업을 재편하고 경제를 살렸던 것이다.
볼커는 중앙은행의 입장만 앞세우지 않고 나라 전체를 보았다. 그는 재정 지출을 늘리고 싶어 하는 정치를 꿰뚫어 보고 견제했다. 그러면서도 일본·독일 제품과 경쟁할 수 없었던 제조업에 변신하라고 압박했다. 미국 7위 은행이 도산하려 할 때는 주저 없이 구제금융을 내주며 정치권과 타협했다.
볼커와 100시간 인터뷰 끝에 나온 볼커 전기(傳記·William Silber)가 있다. 거기에는 볼커가 대통령, 정치권과 대립하면서도 타협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어가는 과정이 정리돼 있다. 그는 중앙은행도 독립적인 존재지만 대통령 역시 독립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특히 다수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과는 적대관계가 되기보다는 같은 편이 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뚜렷했다고 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고민 끝에 구조조정에 힘을 보태겠다고 나왔다. 하지만 "옜다, 이것 먹고 끝내라"며 몇 푼 던져주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산업 전체는 물론 나라 경제의 미래까지 보며 진두지휘하겠다는 포부를 펼쳐야 할 때가 왔다. 대통령·국회와 밀고 당기며 볼커식(式) 행보를 해야 할 시기를 맞은 것이다.
정계가 재편되지 않는 한 적어도 앞으로 4년의 한국 정치는 혼돈의 시대를 걸을 것이다. 대선에서 누가 이겨도 여소야대 판도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 정부는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면서도 책임질 총사령관이 나서지 않은 채 우물쭈물하고 있다. 정부 기능이 슬슬 마비돼 가는
한국은행은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던 시대와 결별해야 한다. 발권력은 국가 경제를 살리는 데 쓰면 누구도 시비 걸 수 없다. 중앙은행 독립은 대통령과 다투고 정권에 저항한다고 해서 확보되는 게 아니다. 나라 경제를 살려내면 바로 그때 국민이 박수 치며 주는 선물이 한국은행 독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