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이야기] '조선인 의사' 키우려… 한국어 의학서도 만들었어요
천민 계급도 교육해 의학자 만들고 세브란스 의학학교 교장 후임자로
외국인 아닌 한국인 지목했어요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5년 12월의 어느 날 오후 3시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1000여 명의 인파가 서울역으로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어요. 캐나다 귀국선을 타기 위해 서울역서 부산행 기차에 오른 올리버 R. 에비슨(1860~1956) 선교사를 송별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것뿐인데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이별을 아쉬워했을까요? 에비슨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을까요?
◇신분이나 인종 차별 없이 의학 교육했어요
1893년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의 교수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던 에비슨은 '조선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온 가족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왔어요. 아내와 세 아이,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까지 모두 6명의 가족이 다 왔지요. 서울에 온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의 4대 원장 자리를 인계받아 우리나라 환자들을 돌봤어요. 제중원이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름을 바꾼 후, 그가 조선을 떠나기까지 장장 43년간 우리나라에서 진료 활동을 이어갔지요.
- ▲ 그림=안병현
에비슨은 자기 같은 외국인 의사 몇 명만으로 조선 의료를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어요. "결국은 조선인 의사들이 동포들을 돌보아야 한다. 더 많은 의사를 교육시켜 배출하는 일이 시급하다." 에비슨은 1899년 학생들을 모아 의학 교육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해부학을 비롯해서 의학의 모든 분야에 대한 한국어 교과서를 펴냈죠.
그러나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제의 무단 통치 정책에 의해 에비슨이 힘들게 만든 한국어 의학 교과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돼요. 최근까지도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는 영어 교과서를 '원서(原書)'라고 부르며 주 교재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어느 분야건 모국어로 된 책으로 공부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답니다. 에비슨은 100년도 더 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한국어 의학 교과서를 만들었던 거예요.
에비슨이 한국어 의학 교과서로 가르친 첫 졸업생 7명은 1908년 배출됐답니다. 환자와 학생을 신분 차별 없이 대한 에비슨의 노력 덕분에, 이들 가운데는 조선 사회에서 가장 천한 계급으로 멸시받던 백정의 아들도 있었어요. 졸업식 전날 저녁이 되자, 에비슨은 졸업생들을 불러놓고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어요. 졸업생들은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지요. "선생님, 저희들끼리 서로 상의한 끝에 학교에 남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을 도와 후배들을 가르치겠어요." 이 대답을 듣고 에비슨은 자신이 단순히 의사를 길러낸 것이 아니라 인격자(人格者·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를 길러내었다고 크게 기뻐했지요. 당시 의사가 거의 없던 터라 졸업생들은 조선 어디를 가더라도 큰돈을 벌며 잘살 수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제자들은 학교에 남았고, 후일 만주·간도·중국 등지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에비슨은 나라까지도 치료하는 대의(大醫)를 길러낸 것이죠.
◇두 번째 교장으로 한국인 지명해
- ▲ 1905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올리버 에비슨이 한국인 조수 박서양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수술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종·신분 차별 없이 의학을 가르친 에비슨 덕분에 우수한 한국인 의학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됐죠. /동은의학박물관 제공
"선교사들은 언젠가 떠날 사람이고, 결국은 한국인이 이 모든 일을 맡아야 합니다. 또한 비록 불행히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으나 한국인은 충분히 우수하며, 그 모든 일을 맡는 데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런 에비슨의 철학 덕분에, 암흑의 일제강점기 동안 우수한 한국인 의학자들이 좌절하지 않고 후학을 양성할 수 있었답니다.
에비슨과 비슷한 시기,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 박사가 있어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준 슈바이처는 인도주의(人道主義·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태도)적인 의사로 존경받죠. 하지만 슈바이처 박사도 자신이 일했던 아프리카 대륙 사람들의 보건 의료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아프리카인에게 의학을 가르치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지요. 반면 에비슨은 처음부터 한국인들에게 한국 의료의 모든 것을 맡길 것을 목표로 일했어요. 그리고 그 목표가 달성되자 미련 없이 그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남을 돕는 일은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상대방이 앞으로 내 도움을 구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결책을 마련해주는 일은 더 어려워요. 에비슨은 한 차원 높은 도움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러분도 나중에 에비슨과 같은 도움을 많이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