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절망지수 한계 왔지만 혹시나 하는 맘에 투표장으로
20대 국회 최우선 소명은 정치권 신뢰 끌어올리는 일
국민에게 새 출구 보여주려면 똑똑한 비전과 정책 제시해야

난리법석 끝에 드디어 4·13 총선일이다. 한국 정치에 대한 절망지수가 임계치에 다다른 유권자 입장에서는 선거날 아침까지 고민스럽다. 투표하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면 누굴 찍긴 해야 하나.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받았는데 20대 국회는 출범 전부터 더 '스페셜'했다. 공천 파동에, 민망한 총선 정국이 대하드라마로 펼쳐졌다. 며칠 안 되는 유세 기간엔 "미워도 다시 한번" "이번만 봐주면 곧 정치 그만둘 거다" "저쪽 찍으면 나라 망한다"는 읍소 반 협박 반으로 표 구걸 다니느라 정치인들 발바닥에 불이 났다.
그 와중에 잡화점처럼 공약을 우르르 쏟아냈지만 정책 경쟁을 벌일 시간도, 의지도, 능력도 부족한 총선이었다. 민주당 출신이면서 새누리당에 '단기 용병'으로 건너간 강봉균 전 장관이 '한국판 양적 완화'란 아이디어로 막판에 경제적 논쟁거리를 던진 것 정도가 거의 유일한 신제품 공약이었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받았는데 20대 국회는 출범 전부터 더 '스페셜'했다. 공천 파동에, 민망한 총선 정국이 대하드라마로 펼쳐졌다. 며칠 안 되는 유세 기간엔 "미워도 다시 한번" "이번만 봐주면 곧 정치 그만둘 거다" "저쪽 찍으면 나라 망한다"는 읍소 반 협박 반으로 표 구걸 다니느라 정치인들 발바닥에 불이 났다.
그 와중에 잡화점처럼 공약을 우르르 쏟아냈지만 정책 경쟁을 벌일 시간도, 의지도, 능력도 부족한 총선이었다. 민주당 출신이면서 새누리당에 '단기 용병'으로 건너간 강봉균 전 장관이 '한국판 양적 완화'란 아이디어로 막판에 경제적 논쟁거리를 던진 것 정도가 거의 유일한 신제품 공약이었다.
사실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두 경제 원로가 각각 양 당의 정책 브레인으로 제대로 된 '정책 배틀'이라도 벌였으면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꽤 볼만한 정책 선거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약이 제조·유통되는 과정에서 불량률은 심각했다. 재벌 견제와 업종 전문화 등의 '경제 민주화'를 만병통치약처럼 들고 이당 저당 넘나들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광주에 삼성의 전기차 공장을 유치하겠다"고 다급하게 돌려막기 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소장해온 경제 민주화의 약효 미달을 자인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품 들이는 노동 개혁이 야당의 발목 잡기로 지체된다고 맹비난해오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울산 가서 "현대중공업이 구조조정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특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허겁지겁 자살골을 넣었다.
비전도, 정책 방향도 좌충우돌하면서 출범하는 20대 국회에 무슨 기대를 걸까마는,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직면한 이 중차대한 시점에 국회의 힘과 역할은 그전보다 훨씬 세져 유권자들이 정치 냉소주의로 일관할 수만도 없게 됐다.
우선 국회 선진화법으로 정책에 딴죽 거는 국회의 악력은 훨씬 세졌다. 게다가 19대 국회만 봐도 의원 입법이 정부 제출 법안의 15배도 넘는다. 행정부 전체가 1000건 좀 넘는 법안을 제출하는 동안, 달랑 300명 국회의원이 1만6000건도 넘는 법안을 냈다. 법안 발의 숫자로 역대 최대다. 재탕 삼탕에, 온갖 사소한 법안을 중공군의 인해전술 저리 가라 할 수준으로 투하해놓고는 스스로 감당 못해 그중 1만건 넘는 법안이 국회에서 잠잔다.
* 필요한 정책 법안을 발목 잡은 것도 문제였지만, 먹고사느라 바쁜 국민들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정부 부처나 관련 기관을 꼬박 국회에 묶어놓는 '과잉 입법' 또한 그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였다. 가령 지난 2012년 면세점 특허권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관세법 개정안을 1분 만에 뚝딱 통과시킨 의원 입법은 나중 가서 보니 정부의 인허가 권한만 강화시켰지, 안정된 일자리와 투자 창출을 억제하는 개악 법안으로 드러났다.
남북한 안보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고도성장 30년을 구가했던 대한민국은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고령화·저출산·저성장·양극화·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게 겪는 문제지만, 한국 사회가 빠르게 달려온 속도만큼이나 급제동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휘청이는 정도가 유독 심한 건 맞다. 그럼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정부와 세계 석학들조차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절치부심하는 이들 사안을 놓고, 삼류 패거리 정치로 일관해온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다"며 쏟아내는 공약들이 효과 있다고 믿는 것은 허망한 기대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쏟아진 달콤한 공약들은 20대 국회가 개원하는 순간 깡그리 잊는 편이 훨씬 발전적이다. 총선 때 마구 쏟아진 공약을 재활용해 온갖 법안으로 산더미를 쌓는 '의욕 과잉'부터 뜯어 말려야 한다는 얘기다.
오히려 20대 국회가 해야 할 가장 큰 소명은 여야 공히 합심해 '바닥인 줄 알았는데 그 아래 무저갱으로 추락한' 한국 정치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리는 일이다. 속도가 느려졌다 해도 한국 경제는 세계 10~11위는 된다. 뒷심 달리는 경제를 밀어올리고 꽉 막힌 미래를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새 출구를 보여주려면, 한국 정치가 세계 하위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두뇌 역할, 조타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제일 급하다. 법안의 물량 공세 말고, 반대를 위한 반대 말고, 똑똑한 비전 제시와 도덕성과 협업 능력이 배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헛된 기대라는 걸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투표장으로 향하려 한다.
딴죽 :
남북한 안보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고도성장 30년을 구가했던 대한민국은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고령화·저출산·저성장·양극화·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게 겪는 문제지만, 한국 사회가 빠르게 달려온 속도만큼이나 급제동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휘청이는 정도가 유독 심한 건 맞다. 그럼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정부와 세계 석학들조차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절치부심하는 이들 사안을 놓고, 삼류 패거리 정치로 일관해온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다"며 쏟아내는 공약들이 효과 있다고 믿는 것은 허망한 기대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쏟아진 달콤한 공약들은 20대 국회가 개원하는 순간 깡그리 잊는 편이 훨씬 발전적이다. 총선 때 마구 쏟아진 공약을 재활용해 온갖 법안으로 산더미를 쌓는 '의욕 과잉'부터 뜯어 말려야 한다는 얘기다.
오히려 20대 국회가 해야 할 가장 큰 소명은 여야 공히 합심해 '바닥인 줄 알았는데 그 아래 무저갱으로 추락한' 한국 정치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리는 일이다. 속도가 느려졌다 해도 한국 경제는 세계 10~11위는 된다. 뒷심 달리는 경제를 밀어올리고 꽉 막힌
헛된 기대라는 걸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투표장으로 향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