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태평로] 파티는 끝났다 김광일 논설위원

최만섭 2016. 3. 8. 22:21

[태평로] 파티는 끝났다

입력 : 2016.03.08 03:00

김광일 논설위원 사진
김광일 논설위원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정당은 끝났다(Party's over)'고 선언한 적이 있다. '파티는 끝났다'는 말을 패러디해서 정당정치의 쇠락을 꼬집었다. 그게 6년 전이다. 현상은 심화됐다. 유럽 정당은 이제 유권자와 '끈'이 느슨하거나 끊어지고 있다. 두 세대 전 영국에서 선거 개표를 하면 보수·노동 양당 투표자가 97%였다. 지금은 60%쯤이다. 1950년대 당원은 400만명을 넘었다. 이젠 다 합해 45만명이 안 된다. 조류보호협회 회원, 카라반 동호인보다 적다.

프랑스에서는 집권당도 야당도 지난 10년 당원이 절반이 됐다. 작년 연말 독일 베를리너 차이퉁은 당원 수와 기부금이 급감했다고 전했다. 각 당 당원이 한 해 1만~2만명씩 뭉텅이로 줄고 있다. 기민당·사민당에서 떨어져 나온 유권자는 온라인이나 시민단체에 열을 올린다. 유럽 13개 나라에서 1970~90년대 당원 수가 이미 40% 넘게 줄었다. 정치·경제·사회를 통할하는 거대 정당은 매력을 잃었다. 언론은 '역겹다'는 표현도 쓴다. 단일 이슈에 단일 그룹을 별도로 조직해서 요구를 관철하려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공화·민주 양당이 판세를 50:50으로 나눠 가졌다. 지금은 30:30:30이다. 퓨 서베이는 기성 정당과 끈이 없는 독립 무당파 유권자를 37%쯤 친다. 이번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처럼 당이 선두 주자를 끌어내리는 기현상마저 벌어진다.

한국 정당도 유효 기간을 살펴보게 된다. 정당이 '국가의 룰'을 입법 제정하는 데 미욱할 뿐 아니라 '자신의 룰'을 만드는 데까지 무력하기 때문이다. 이념이 아니라 공천 득실에 따라 갈라졌다 다시 모인 계파 규합 단체인 탓에 당헌·당규만 쓸데없이 복잡하거나 모호하다. 총선이 닥치면 후보를 어떻게 뽑느냐를 놓고 몇 달씩 싸우면서도 부끄러움이 없다. 심지어 그걸 정당정치라고 생각한다. 선거 때마다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선거구 획정에도 두 달 넘게 무법적·위헌적 상태를 방치해놓고도 사과하지 않았다.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는커녕 제 앞가림도 못할 때 시스템 폐기를 떠올리게 된다.

한국 정당은 당이 당원을 믿지 않는다. 자당 당원을 '유령 당원'이라고 서슴없이 부른다. 공천이 걸리면 이런 일쯤 눈 하나 깜짝 않고 실토한다. 한때 여야 240만명씩 웃돌았다는 당원 수를 곧이듣는 정치학자는 없다. 아버지·아들 대를 이어 충성한 당원보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외부 영입 인사'가 더 깃발을 날린다. 당이 당원을 못 믿는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했다면 당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야 맞다.

정당은 여론을 모아서 법을 제정하는 게 첫째 임무다. 정당은 그 여론 수집 기능도 상실했다. 사이버 공간에 하루 댓글이 수십만 개씩 달린다. 카카오톡·트위터·페이스북이 훨씬 낫다. 정당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이상적 상향 공천을 약속했지만 실제는 수뇌부 공작 정치를 해 왔다. 프랑스 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현대 정당을 '수뇌부 정당(cadre party)'과 '대중 정당(mass party)'으로 나눴다. 우리 정당은 겉으론 대중 정당을 하는 척 유권자를 속였다.

귀 밝은 사람은 정당정치 균열음을 듣고 있다. 물론 아직 죽지는 않았다. 지금 그 중병(重病)을 고치지 않는다면 틈이 벌어진 곳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