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정당은 끝났다(Party's over)'고 선언한 적이 있다. '파티는 끝났다'는 말을 패러디해서 정당정치의 쇠락을 꼬집었다. 그게 6년 전이다. 현상은 심화됐다. 유럽 정당은 이제 유권자와 '끈'이 느슨하거나 끊어지고 있다.두 세대 전 영국에서 선거 개표를 하면 보수·노동 양당 투표자가 97%였다. 지금은 60%쯤이다. 1950년대 당원은 400만명을 넘었다. 이젠 다 합해 45만명이 안 된다. 조류보호협회 회원, 카라반 동호인보다 적다.
프랑스에서는 집권당도 야당도 지난 10년 당원이 절반이 됐다. 작년 연말 독일 베를리너 차이퉁은 당원 수와 기부금이 급감했다고 전했다. 각 당 당원이 한 해 1만~2만명씩 뭉텅이로 줄고 있다. 기민당·사민당에서 떨어져 나온 유권자는 온라인이나 시민단체에 열을 올린다. 유럽 13개 나라에서 1970~90년대 당원 수가 이미 40% 넘게 줄었다. 정치·경제·사회를 통할하는 거대 정당은 매력을 잃었다. 언론은 '역겹다'는 표현도 쓴다. 단일 이슈에 단일 그룹을 별도로 조직해서 요구를 관철하려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공화·민주 양당이 판세를 50:50으로 나눠 가졌다. 지금은 30:30:30이다. 퓨 서베이는 기성 정당과 끈이 없는 독립 무당파 유권자를 37%쯤 친다. 이번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처럼 당이 선두 주자를 끌어내리는 기현상마저 벌어진다.
한국 정당도 유효 기간을 살펴보게 된다. 정당이 '국가의 룰'을 입법 제정하는 데 미욱할 뿐 아니라 '자신의 룰'을 만드는 데까지 무력하기 때문이다. 이념이 아니라 공천 득실에 따라 갈라졌다 다시 모인 계파 규합 단체인 탓에 당헌·당규만 쓸데없이 복잡하거나 모호하다. 총선이 닥치면 후보를 어떻게 뽑느냐를 놓고 몇 달씩 싸우면서도 부끄러움이 없다. 심지어 그걸 정당정치라고 생각한다. 선거 때마다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선거구 획정에도 두 달 넘게 무법적·위헌적 상태를 방치해놓고도 사과하지 않았다.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는커녕 제 앞가림도 못할 때 시스템 폐기를 떠올리게 된다.
한국 정당은 당이 당원을 믿지 않는다. 자당 당원을 '유령 당원'이라고 서슴없이 부른다. 공천이 걸리면 이런 일쯤 눈 하나 깜짝 않고 실토한다. 한때 여야 240만명씩 웃돌았다는 당원 수를 곧이듣는 정치학자는 없다. 아버지·아들 대를 이어 충성한 당원보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외부 영입 인사'가 더 깃발을 날린다. 당이 당원을 못 믿는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했다면 당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야 맞다.
정당은 여론을 모아서 법을 제정하는 게 첫째 임무다. 정당은 그 여론 수집 기능도 상실했다. 사이버 공간에 하루 댓글이 수십만 개씩 달린다. 카카오톡·트위터·페이스북이 훨씬 낫다. 정당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이상적 상향 공천을 약속했지만 실제는 수뇌부 공작 정치를 해
왔다. 프랑스 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현대 정당을 '수뇌부 정당(cadre party)'과 '대중 정당(mass party)'으로 나눴다. 우리 정당은 겉으론 대중 정당을 하는 척 유권자를 속였다.
귀 밝은 사람은 정당정치 균열음을 듣고 있다. 물론 아직 죽지는 않았다. 지금 그 중병(重病)을 고치지 않는다면 틈이 벌어진 곳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