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가동 중단 2016년 2월 10일

[최보식 칼럼] 한낱 북한 정권으로부터 수모를 받다

최만섭 2016. 2. 12. 10:50

[최보식 칼럼] 한낱 북한 정권으로부터 수모를 받다

입력 : 2016.02.12 03:20

"상대에게 결정타를 날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빗나갔을 수 있다
북한 정권의 首魁(수괴)들 은제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4년 전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가 예고됐을 때다. '국제사회 고립과 경제 제재를 부르는 미친 짓'이라고 일깨워주자, 북한 정권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응수했다.

"망신스럽게 두 차례에 걸쳐 외부의 전적인 도움을 받아가며 위성 발사를 시도하다 실패한 남조선은 그 누구의 위성 발사에 대해 비난할 명분도 체면도 없다. 차라리 그 위성을 동족인 우리더러 쏴달라고 했더라면 좋지 않았겠는가."

팩트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우리가 러시아제 1단 로켓을 사 와서 겨우 발사한 것이 '나로호'다. 북한은 어쨌든 자기들 기술로 로켓을 쏘아 올렸고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켰다. 실력이 없으면 그 수준을 우습게 봐왔던 한낱 북한 정권으로부터 이런 수모를 당한다.

핵 확산을 막자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비핵화' 선언을 했기에 핵무기는 그렇다 쳐도, 첨단 우주 기술이기도 한 로켓 실력이 북한보다 한참 떨어지는 현실은 참담하다. 만약 우리의 로켓 실력이 앞서 있었다면 북한은 '광명성'을 쏠 때 먼저 우리를 의식했을지 모른다. 우리 정부도 훨씬 침착했을 테고 이번처럼 쫓기듯 '한·미 간 사드 배치 협의'를 발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로켓 사업을 상부에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돌아온 답변은 '지금 이런 걸 왜 하느냐?'였다. 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눈치도 봤을 것이다. 그러던 중 1998년 북한이 '대포동 1호'를 실험했다. 지금 광명성 4호의 원조 격이다. 우리는 고체 연료를 쓰는 소형 미사일(로켓)로 충분하다고 여겼을 때였다.

대포동의 충격을 받고서야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느냐'며 난리가 났다. 항공우주연구원에 '5년 안에 장거리 로켓을 만들라'는 임무가 부여됐다. 우리는 액체연료 엔진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 구(舊)소련에서 밀거래되던 탄도미사일의 부품을 고철로 위장해 몰래 들여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살펴봤을 정도였다.

이렇게 '나로호' 개발이 김대중 정부 시절 시작됐다. 하지만 그 뒤 러시아에서 2500억원에 사 온 1단 로켓에 올려놓고 쏜 나로호가 1차 실패했을 때, 당시 대통령은 "왜 이런 걸 시작해서…. 그냥 다른 나라 로켓을 빌려 쓰면 되지"라고 좀 짜증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이나 정책 결정 집단은 말로 선심 쓰거나 금방 효과 나는 걸 좋아한다. 정권의 임기가 지나서까지도 장기 투자가 필요한 실력 축적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북한의 로켓 발사 때마다 우리 정부가 잘하는 것은 규탄 성명을 내고 유엔 안보리에 "실효성 있고 강력한 제재를 해달라"고 촉구하는 일이다. 물론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우리와 국제사회의 대응에 북한 정권이 고분고분해졌는가.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마음을 돌렸는가. 경제 제재 조치를 겪는 동안 "잘못 건드렸다"며 손을 들었는가.

마침내 '개성공단 중단' 카드도 던졌다.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의 총인건비가 연 1억달러쯤 된다. 김정은의 돈줄이 되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 중단 때도 비슷한 계산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멈춰졌는가. 상대에게 결정타를 날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빗나갔을 수 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거기서 일해왔던 북한 주민 5만5000명이 가장 고통받을지 모른다. 경제 제재의 피해자는 그 속에 사는 죄 없는 주민들이다. 북한 정권의 수괴(首魁)들은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현안마다 즉각적 대응에만 익숙하다. 대북 강경론으로 돌아선 대다수 국민의 기분에 동조하는 데 만족하는 것 같다. 장기적인 국가 통일 전략에서 우리는 북한 정권을 다루지 않는다. 광명성 4호가 발사된 당일에 '한·미 간 사드 배치 협의'를 공식발표한 것도 그렇다. 분명히 우리 안보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자랑해온 대중(對中) 외교 성과,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개인적 친분, 천안문 망루에서 한 전승절 사열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현실에서는 한·미·일 대(對) 북·중·러의 냉전 구도로 되돌아가고 있다.

경제 제재나 미국에 손을 내미는 걸로는 북한 정권의 핵과 미사일에 제동을 걸 수 없다
. 우리 자신도 상응한 핵과 로켓 실력을 갖추는 것뿐이다. 갑(匣) 속의 검처럼 평생 꺼낼 일이 없다 해도 그 실력은 보유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이걸 추구해야 한다. 제약과 반대가 많고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이를 돌파해내는 것은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뿐이다.

이제 우리 정부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김정은 정권의 운명에 대해서도 숙고할 때가 됐다. 이런 관계로 계속 갈 것인지, 제거 전략을 준비할 것인지 말이다. 미국과 중국의 한 싱크탱크에서는 김정은이 축출될 경우 북한 내부 혼란상이 어느 정도가 될지 조사한 적이 있었다. 급박한 때일수록 멀리 내다봐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