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대회 -2018년 2월 9

[태평로] '흰 코끼리 경기장'의 재앙을 면하려면

최만섭 2016. 1. 29. 10:30

[태평로] '흰 코끼리 경기장'의 재앙을 면하려면

입력 : 2016.01.29 03:00

김동석 스포츠부장
김동석 스포츠부장
옛날 동남아시아의 왕들은 신하에게 영물인 흰 코끼리(white elephant)를 선물하는 일이 있었다. 진귀한 선물을 받은 신하는 몹시 기뻐하지만 곧 뭔가 잘못됐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코끼리라는 동물이 가축으론 쓸모가 없어서 먹여 살리고 관리하다가 가산만 탕진하는 꼴을 당한다. 그렇다고 왕의 하사품을 함부로 처분할 수도 없어 망하게 되니, 흰 코끼리를 받는 건 불신임의 상징이었다.

요즘은 흰 코끼리가 스포츠계에 자주 등장한다. 유지 관리에 거액을 잡아먹으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기장을 '화이트 엘러펀트 스타디움'이라고 부른다. 사례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바로 2년 전 2014 월드컵 축구 대회를 유치했던 브라질 도시들이 흰 코끼리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FIFA 규정상 월드컵을 유치하는 데는 경기장 8개만 있으면 된다. 브라질은 36억달러(약 4조3000억원)를 들여 경기장 12개를 신축·개조했다. 브라질 중서부 소도시 쿠이아바에 우뚝 선 4만2000석의 경기장도 그때 지어졌다. 이 도시에는 지역 축구팀이 둘 있다. 이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르면 관중이 1000명쯤 온다. 브라질리아의 스타디움엔 9억달러가 들어갔다. 이 경기장이 월드컵 이후 1년간 벌어들인 수입은 50만달러였다. 들어간 돈을 뽑는 데 1800년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축구에 미친 나라 브라질에서조차 흰 코끼리 스타디움은 재앙이었던 것이다.

지난 22일 대한민국 최초로 강원도 정선에 알파인 활강 경기장이 들어섰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의 상징이 될 시설이다. 하지만 이 경기장의 미래는 불투명한 안갯속에 방치돼 있다.

올림픽은 겨우 2주일 계속된다. 이후 긴 세월 정선 코스는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 350여 명에 불과한 국내 알파인 선수만을 위해 코스를 유지하기엔 무리가 있다. 흰 코끼리가 되기 십상인 상황이다. 환경 단체에선 올림픽이 끝난 뒤 코스를 없애고 가리왕산을 원상 복구하자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이런 철거론을 면하면서 흰 코끼리로 전락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이곳을 알파인 스키의 명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 활강 스키 대회도 꾸준히 열어야 하고, 동시에 평범한 주말 스키어들이 즐길 방안도 찾아야 한다. 위험한 코스 일부를 재개발해 초·중급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정선 코스 자체에 대해선 아시아 최고라는 찬사가 나온다. 중국과 일본의 상급자들까지 끌어들이는 국제 명소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름철엔 주변에 트레킹 코스를 만들거나 코스 일부를 잔디 썰매장처럼 활용해서 사계절 내내 활기가 넘치게 해야 한다. 솔트레이크시티는 올림픽 스키 점프대 밑에 수영장을 만들어 여름에도 관광객들이 점프대 에서 미끄러져 수영장에 빠지는 놀이를 즐기게 한다.

이런 고민은 원래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2011년부터 시작됐어야 옳다. 비록 늦었지만 평창올림픽조직위와 스키계, 강원도는 지금이라도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199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일본 나가노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흰 코끼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