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개혁

"FTA혜택 기업 年1500억 내라"는 黨政

최만섭 2015. 11. 28. 13:20

"FTA혜택 기업 年1500억 내라"는 黨政

2015.11.28 03:16 | 수정 : 2015.11.28 05:18

野서 "기업의 이익 환수해 농가 지원" 이득공유제 고집하자
韓·中 FTA 비준 얻어내려 '기금 만들어 지원' 양보안 내놔
이득공유제는 전세계에 유례없어… 4개 국책硏도 "불가능"
美·EU·日은 피해산업 경쟁력 강화 위주로 보상

농업 분야 FTA 보완 예산 집행 실적 그래프
정부와 여당이 한·중 FTA 비준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FTA로 피해를 보는 농어촌을 지원하는 용도로 기업들로부터 매년 1500억원 정도의 기금을 걷자는 제안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재계 측에선 정부·여당의 양보안이 그동안 야당 측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무역이득공유제'의 변형본에 불과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야당 측이 주장해온 무역이득공유제는 FTA로 이득을 보는 산업이 있는 만큼 이윤의 일정 부분을 떼내 국가가 강제로 환수하고, 이를 피해를 보게 되는 농어촌 등에 지원하자는 제도다. 취지는 그럴듯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위헌(違憲) 요소를 안고 있고,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농촌경제연구원 등 4개 국책 연구기관이 산업부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연구용역에서도 연구기관들은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야당이 제도 도입을 고집하자 정부·여당이 실제 내용은 무역이득공유제와 큰 차이가 없는 기금 조성안을 내놓았다.

야당이 내세우는 기본 철학은 '수익자 부담 원칙'이다. 특정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이 있을 경우 이 정책으로 이익을 보는 계층이 그 피해를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환경부담금이나 교통유발부담금 등이 그런 예다. 하지만 FTA는 구체적으로 누가 얼마나 이익을 보고, 누가 얼마나 피해를 보는지 구체적으로 산정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한·EU FTA 발효 이후 관세율이 떨어졌지만 유럽 경기 둔화로 자동차, 기계, 농축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무역수지가 악화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자동차 산업에 대해 수혜 업종이라고 돈을 걷을 명분이 없다. 또 한·미 FTA 발표를 전후해서는 자동차 산업의 무역흑자가 54억달러 늘어났는데, 이 중 정확히 얼마가 FTA 효과로 인한 것인지 계산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한덕수 전 무역협회장은 "무역이득공유제의 철학은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며 "기업들의 이익이 비용 절감 때문인지, FTA 때문인지, 훈련 때문인지, 좋은 마케팅 기회를 잡아서인지 정확하게 산출해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 정책위 관계자는 "정부가 FTA 체결 시 농어업·축산업 분야 피해치를 구체적으로 산출하지 않느냐. 농업 피해액은 산출하면서 산업 쪽의 이익은 산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의 경제적 효과를 대략 '추정'하는 것과 이 방식을 '과세(課稅)'나 부담금 산정에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 혁신 노력을 해서 경쟁력을 높이는 농가(農家)와 그렇지 않은 농가가 있을 텐데 어떻게 보상 기준을 만드느냐의 문제도 생긴다. 박천일 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자칫 농업인들의 기업가 정신과 혁신 노력을 갉아먹는 제도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제도

FTA가 발효된 후 어느 특정 기업의 이익이 늘어난다면 이 기업은 당연히 법인세를 더 내게 된다. 그런데 이 기업에 부담금이나 세금을 별도로 물리는 것은 이중과세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직접 과세 대신 '상생협력기금'에 기업이 매년 1500억원 정도를 기부하고 이 자금을 농업 보호를 위해 쓰도록 하자는 중재안을 내놨고, 야당 측은 수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TA를 이유로 기업들로부터 돈을 걷어 피해를 본 분야에 지원하는 제도는 해외에서는 전례가 없다.

여정석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팀 연구원은 "미국, 일본, EU(유럽연합) 등 주요국들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피해지원제도는 있지만 무역이득공유제를 도입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피해 산업에 대해 교육 및 기술 지원 등을 중심으로 한 무역조정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EU, 일본 등은 별도의 FTA 피해지원제도는 없고 통상적인 농업정책 틀 내에서 피해를 보상하고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